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 이 빌런 중 빌런은 여행자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여 죽이는 게 ‘일’이다. 공교롭게도 기준은 침대다. 자신의 집에 있는 침대보다 큰 사람은 잘라서, 작은 사람은 늘려서 죽인다. 이처럼 누군가의 ‘엿장수 맘대로’ 식 기준은 불편함을 낳는다. 지금 우리 현실이 그렇게 보여서 안타깝다.
# 장면1 =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의 행정부는 거대혜성이 칠레 앞바다 600㎞ 지점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으며, 도착 예정일이 6개월 후라는 것을 보고받는다. 그러나 자신과 정부의 안전을 위한다는 정치적 이유로 그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봉인해버리는 ‘기준’을 설정한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연구팀은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고 신문사와 방송사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유출한다.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 생각에 정부의 안전보다는 국가의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
천체물리학과 박사과정생이었던 디비아스키는 졸지에 ‘반국가세력’으로 분류돼 미시간대학교 교정에서 무장경찰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연행된다. 올린 대통령은 정부와 국가를 같은 반열에 놓아버리거나 정부를 오히려 국가의 위에 놓는다. 정부는 국가의 일부분이지 국가와 같은 것이 아니다.
# 장면2 = 올린 대통령은 힘 좋고 무지막지한 시골 경찰서장을 난데없이 대법원 판사로 지명한다. 그가 사실은 올린 대통령의 내연남이라는 난감한 사실이 드러난다. 올린 대통령은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봉인했던 ‘혜성 위기’를 아무런 준비 없이 느닷없이 공표한다.
대형 이슈는 대형 이슈로 덮어야 한다. 이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한가하게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불륜 사실을 보도하거나 따지는 자들은 척결해야 할 ‘반국가세력’으로 분류된다. 대통령 자신을 공격하는 것도, ‘영부남’을 공격하는 것도 곧 국가를 공격하는 게 돼버린다.
#장면3 = 이셔웰 회장(마크 라이런스 분)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을 쪼개서 희토류를 추출하겠다고 하자 국가 어젠다 최우선 과제는 ‘혜성 위기 극복’에서 ‘희토류 획득’으로 바뀐다. 절망적인 뉴스가 갑자기 희망에 부푼 뉴스로 돌변한다.
혜성의 희토류를 획득하기만 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무려 500만개가 창출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올린 대통령 나름대로 어떤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그 근거까지 소개해주진 않아서 조금 아쉽다.
그러나 모든 것을 떠나 모두 혜성에 맞아 죽은 다음에 좋은 일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희토류 획득이라는 ‘국가적 목표’에서 벗어나 혜성을 우선 파괴해버리든지 아니면 타격을 가해 진행방향을 바꿔 우선 살고보자는 주장들은 다시 국익을 저해하는 ‘반국가세력’이 된다.
나라는 그렇게 ‘애국 세력(돈 룩 업파)’과 ‘반국가세력(룩 업파)’으로 나뉘어 아수라장이 된다. 이 모든 ‘영화적 상상’들이 우리에게는 낯설어야 하는데 그다지 낯설지 않아서 딱하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수많은 빌런 중에서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라는 흉악한 도적놈의 행적은 만만치 않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피곤한 여행자들을 친절하게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프로크루스테스의 자신의 ‘기준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작으면 무지막지하게 몸을 잡아 늘려 죽여 버린다.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이름이 ‘잡아당겨 늘리는 사람’이라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요행히 그 침대 길이에 맞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사한 것도 아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 침대의 길이를 마음대로 늘이거나 하고 줄여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서 또 죽인다. 한마디로 엿장수 마음대로 기준이다.
영국의 유명한 사적지 런던 타워(Tower of London)를 관광하다 보면 그곳의 악명 높은 고문실도 볼 수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면 신화로만 전해들은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실물이 있다. 악명 높은 ‘엑시터 공작의 딸(Duke of Exeter’s Daughter)’이라는 이름의 고문기구다.
15세기 엑시터 공작이 발명했다는 고문기구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의 실사판이다. 혹시 엑시터 공작이 프로크루스테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리되는 침대에 사람을 묶어 눕혀놓고 침대를 서서히 늘린다.
자백을 거부하면 관절이 빠지고 척추가 분리되다가 종국에는 몸이 끊어져 죽는다고 한다. 용의자를 그 침대 앞에 세워놓고 심문하면 대개는 그 침대를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 거짓자백도 했다는데, 그것이 ‘X’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몇몇은 결국 그 침대에 묶여 요절(腰絶)이 났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그리스로마 신화나 영국의 런던 타워에나 존재하는 중세의 유물만은 아닌 듯하다. 영화 속 올린 대통령이 애지중지했던 것처럼 현재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널려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자기들의 역사관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 김구 주석도 테러리스트가 된다. 실정법상 ‘일본 국적’의 ‘황국신민’이 분명한 김구 선생이 자기 나라 일본의 경관을 때려죽였으니 당연히 테러리스트이고, 국가전복을 도모했으니 ‘반국가사범’이 된다.
봉오동 전투에서 일제에 맞서 그나마 ‘국지적 전투’에서라도 승리를 거뒀던 광복군 홍범도 장군 흉상도 ‘빨갱이’의 혐의를 뒤집어씌워 육사교정에서 치워버려야 한다고 한다.
의료개혁을 위해서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기준이 되다보니 아무래도 한국인 평균 키에 비해 너무 길어 보이는 2m짜리 그 침대에 맞추느라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나는 모양이다.
물론 키가 큰 것이 좋기는 할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왜 내 키가 175㎝나 180㎝도 아닌 꼭 2m가 돼야 하고, 단번에 2m가 되기 위해 이 많은 고통과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지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모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그 기준을 설득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혼란일지 모른다. 설득이 부족하면 당연히 이해하기 어렵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