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비행장, 평화대공원 아닌 스포츠타운? ... 논란 가열

  • 등록 2024.12.20 11: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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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홀 규모 파크골프장, 4개 야구장, 실내사격장 ... 국방부 "사전 협의 없었다"

 

제주도가 평화와 역사를 기리는 알뜨르비행장에 대규모 스포츠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국가등록문화유산과 조화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지하벙커 인근에 파크골프장과 야구장 등의 체육시설이 포함된 구상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18일 오후 제주웰컴센터에서 열린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계획 변경 용역' 최종보고회에서 알뜨르비행장 일대에 조성될 평화대공원에 대한 구상안을 공개했다.

 

구상안에는 36홀 규모의 파크골프장, 4개의 야구장, 실내사격장 등 대규모 스포츠 시설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평화대공원'이라는 명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가 1930년대에 중국 침략을 위한 군사기지로 조성했다. 인근 송악산 일대 등은 일제가 패망직전 '태평양 결7호 작전'으로 최후 항전지를 삼았던 곳이다.

 

4·3 사건 당시에는 주민들이 학살된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또 한국전쟁 당시에는 육군 제1훈련소와 전쟁 포로 수용소로 활용됐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알뜨르비행장은 제주평화대공원의 핵심 부지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번 구상안에 따르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하벙커가 스포츠타운 부지 안에 포함된 것은 물론, 벙커 바로 옆에는 파크골프장이 계획돼 있다. 이로 인해 골프공이 문화유산 위로 날아다니거나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최종보고회에서는 "평화와 역사를 기리는 장소에 대규모 스포츠타운을 조성하는 계획은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또 "평화대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시설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며 구상 자체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알뜨르비행장 부지의 약 90%는 국방부 소유로 도는 지난해 9월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활주로를 제외한 69만㎡를 무상양여받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스포츠타운 조성과 관련한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국방시설본부는 "제주도가 스포츠타운 계획을 밝히기 전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향후 협의 여부에 따라 계획이 수정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국방부와의 협의를 통해 영구시설물 축조가 승인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송악산과 제주평화대공원 보존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송악산·알뜨르사람들'은 "평화와 생태의 상징적인 공간에 체육시설 건설을 검토한다는 발상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송악산과 알뜨르 일대가 생태와 평화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는 공간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제주 근현대사 연구자는 "알뜨르비행장 일대야말로 제주의 근현대사를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로 거대한 전쟁 박물관이자 평화 지향의 박물관이다. 평화대공원을 건설하겠다며 스포츠타운을 조성하려는 발상 자체가 제주도정의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구상안에 포함된 송악산 인근 전지훈련장과 대규모 체육시설 조성 계획은 마라도해양도립공원 육상부에 위치한 일제 전적지 및 근현대사 유적지와의 부조화 문제를 낳고 있다. 

 

도는 내년에 1억9000만 원을 투입해 '제주평화대공원 조성사업 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

 

강애숙 제주도 기후환경국장은 "이번 최종보고회는 마라해양도립공원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 태평양 결7호 작전= 1944년 7월, 사이판이 함락되자 일본 본토가 적의 공습 가시권에 들어가면서 미군의 본토 상륙에 대한 대응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일제는 미군의 상륙 방향을 두 경로로 예측했다. 하나는 사이판과 괌에서 일본 동남부의 오가사와라 제도를 거쳐 태평양을 거슬러 도쿄를 직접 타격하는 경로였다. 또 하나는 필리핀에서 오키나와 열도를 거쳐 서남부 규슈로 상륙하는 루트였다.

 

규슈 경로가 채택될 경우, 미군은 제주도를 점령한 후 여기에 베이스캠프를 꾸리고 일본 본토를 공격할 가능성이 컸다. 이는 규슈 상륙작전과 일제 최정예 부대인 관동군의 본토 합류를 차단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릴 수 있었다.

 

1945년 2월 9일, 일제의 방위총사령관은 각 방면군 사령관에게 비밀 작전 명령을 내린다. 이른바 암호명 「결호(決號)작전」이었다. 이름에서부터 결연한 의지가 풍기는 이 작전 중 결1호에서 결6호까지는 모두 일본 영토이고, 제주도만 유일하게 일본 영토 외 지역이었다. 제58군 7만4781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결7호'(決七號)라는 작전명으로 제주도 전 지역을 요새화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현재는 유명 관광지가 된 성산일출봉을 비롯해 송악산, 서우봉, 삼매봉, 수월봉, 추자도를 비롯한 주요 해안 거점에 동굴진지를 구축했다. 미군 상륙 함정을 공격할 해군 특공대의 소형 함정과 어뢰 등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일본군은 또 제주도 내륙지역 오름에는 복곽진지, 주저항진지, 전진거점, 위장진지 등으로 전술 용도를 구분해 포병기지, 보병기지, 지원부대와 관측소용 동굴진지, 고사포 진지를 구축했다.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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