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과 산업 변화를 체감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세계적 박람회와 토론회는 새해를 맞는 기대가 큰 1월에 집중된다. 올해도 둘째주부터 이어졌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7~10일)를 필두로 117년 전통의 자동차 박람회인 디트로이트 오토쇼(10~20일), 주요국 정계·관계·재계 인사들이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20~24일·다보스포럼)이 그것이다.
하지만 올해 이들 이벤트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기업인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거나 경쟁국에 밀리는 모습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소용돌이 속 정치인과 정부인사 참석도 예년보다 적어 경제외교에서도 소외될 판이다.
166개국 4800여 기업이 참여한 CES 2025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고도화해 산업과 일상생활에 파고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가전과 IT, 모빌리티, 로봇, 헬스케어 등 여러 분야에서 AI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졌다.
특히 AI, 모빌리티 등 첨단기술로 무장한 중국의 공세가 매서웠다. 가전업체 하이센스와 TCL은 삼성전자 주변에 대규모 부스를 차리고 스마트 키친, 가정용 로봇 등 AI를 적용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중국 기업들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 웨어러블 로봇, AI 홈 등을 통해 저가 제품은 물론 중·고가 제품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CES는 사실상 미국, 중국, 한국, 일본 기업의 기술혁신 각축장이다. 참여 기업도 미국(1509개), 중국(1339), 한국(1031개) 순서로 3개국이 87.0%를 차지한다. 한국 대표기업 삼성전자와 LG전자, 중견·중소 벤처기업들이 참여했지만 기세는 예전 같지 않았다.
AI혁명 선두주자인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연설을 듣기 위해 1만2000여명이 몰렸다. 황 CEO는 AI의 미래를 로봇공학, 자율주행차 등 ‘물리적 AI’로 확장하고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개방형 AI 플랫폼 ‘코스모스’도 공개했다. 코스모스는 로봇 등이 현실 데이터를 학습하도록 지원한다. 로봇을 가르치는 챗GPT 격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2021년 후지산 기슭에서 첫 삽을 뜬 스마트도시 ‘우븐시티(Woven City·그물망 도시)’ 1단계 준공을 선언했다. 100억 달러(약 14조원)가 투입된 우븐시티는 자율주행차, 애완견 등 펫 로봇, 스마트홈 기술을 테스트하는 실험실이다. 가을에 도요타 자회사 직원 100명을 시작으로 2000명이 거주한다. 도요타는 이곳에서 차세대 전기차 운영 시스템을 개발한다.
세계적으로 AI를 필두로 첨단산업 혁신에 분주한데 한국은 굼뜨기 짝이 없다. AI기본법이 몇 년 동안 공전하다가 지난해 말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정부 예산에서 AI 컴퓨팅 지원 예산 3217억원 증액이 무산될 정도로 정치권은 기술 경쟁력 확보에 관심이 없다.
‘경제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 2025 회의에 한국 정부 고위급 인사가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탄핵정국 와중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과 겹치기도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앙정부 인사가 참여하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해에 이어 이태 연속 참여한다.
내란 사태 여파로 지난해 말 공표되지 못한 정부의 새해 경제정책방향이 2일 발표됐다. 노동·교육·연금·의료 등 4대 개혁은 추진 동력을 잃었고,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산업구조 개혁도 어려워졌다. 예산을 조기집행하고 추가 소비에 대한 소득공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관광쿠폰 지급 등 그전부터 해온 내수 진작책을 긁어모았다.
정부 여당은 설을 불과 스무 날 앞둔 8일 당정협의에서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설 연휴는 25~30일 엿새로 늘고, 31일 연차휴가를 내면 최장 9일을 쉴 수 있다.
당정은 소비 진작과 교통량 분산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한다. 하지만 해외여행객을 늘려 씀씀이가 해외에서 늘고 국내 소비는 위축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된 최근 몇 년 사이 임시공휴일에 관광지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자영업 매출이 줄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0원으로 1만원을 넘어섰다. 평일의 1.5배인 휴일 근로수당을 직원에게 지급하면서 매출을 늘리기 어렵다고 자영업자들이 호소한다. 일손이 부족한 중소기업도 계획에 없던 휴일이 늘면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임시공휴일 지정은 27일보다 31일이 나아 보인다. 설 연휴 전 월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면 며느리가 시댁에서 보내는 날이 길어지는 등 기혼여성들에게 명절 가사노동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명절이 지난 금요일이 공휴일이어야 주말까지 휴식을 취하며 가족끼리 가까운 곳에 다녀오거나 외식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내란 사태 및 탄핵 정국 와중에도 정부 경제팀은 중심을 잡고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