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를 따라 서귀포로 향하다 보면 도로 왼편으로 옛 제주아일랜드호텔 리조트(구 르네상스호텔)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9/art_17403821952284_87cc7e.jpg)
지난달 24일 오후 2시.
제주시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평화로를 따라가던 중 도로 오른편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하나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애월읍 고성리, 드넓은 들판 사이에 자리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시간이 멈춘 듯 세월에 깎이고 바람에 부서진 이 건물은 '호텔'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완전히 폐허가 돼 있었다.
이곳은 1990년대 초 호텔 300실과 콘도 138실, 워터풀과 메디컬 클리닉까지 갖춘 복합 관광리조트로 조성될 예정이었던 옛 '제주아일랜드호텔 리조트'다.
이후 2000년대 중반 '르네상스제주호텔'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꿨지만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지금껏 '유령 건물'로 방치돼왔다. 전체 연면적은 4만7000㎡에 달한다. 당시 공정률은 약 70%에 이르렀다.
![평화로를 따라 서귀포로 향하다 보면 도로 왼편으로 옛 제주아일랜드호텔 리조트(구 르네상스호텔)가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나무 데크들이 떨어져 나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310/art_17410597696094_c9ee91.png)
건물 가까이 다가서자 첫인상은 '위험'이었다.
외벽은 곳곳이 갈라지고 페인트는 오래전에 벗겨져 그 아래 녹슨 철골이 삐죽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창은 대부분 깨졌고, 바람이 불 때마다 어디선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기분 나쁜 휘파람 같은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주민들의 불안은 당연한 일이다.
인근에 거주하는 고모씨(53)는 "강풍이 불 때마다 외벽 조각이 날아들어 불안해서 창문도 못 연다"며 "지난해 여름엔 베란다 데크 조각이 떨어져 주차된 차를 덮칠 뻔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 건물의 위험한 상황을 수년간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자 방치된 쓰레기 더미와 폐타이어, 버려진 주방기구, 낡은 이불이 뒤엉켜 있었다. 누군가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았던 흔적이 여전히 선명했다. 정면으로 나오자 넓은 공터가 펼쳐졌다. 한때 주차장으로 쓰였을 법한 그곳에는 한 마리 말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근 상인 이모씨(56)는 "밤에는 무서워서 근처도 안 간다. 가끔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노숙자가 출입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한다.
![건물 외벽 나무 데크들이 떨어져 나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9/art_17403821964227_c2e8c8.jpg)
건물 내부도 다르지 않았다. 공사 당시 사용된 자재들이 먼지만 뒤집어쓴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잠깐 멈춘다"며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현장 같았다.
이 건물의 현 소유자는 엠제이아이로 2016년 3월 매매를 통해 소유권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공사는 재개되지 않았고, 2023년 9월 채권자인 씨엘에이치가 제주지방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했다. 최저 매각가는 약 151억원이다. 현재는 국세 체납으로 제주세무서(2024년)와 동화성세무서(2025년)가 각각 압류를 집행한 상태다. 사실상 부동산 재산권 전체가 채권자와 공공기관의 손에 얽혀 있는 셈이다.
제주도는 장기 방치 건축물 관리 조례에 따라 행정조치를 검토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사유재산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여지는 제한적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소유주가 바뀔 때마다 개발 계획은 나오지만 그중 실제 추진된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며 "도 입장에서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고 털어놨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공사 당시 사용됐던 자재들이 그대로 방치된 채 먼지만 쌓여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9/art_17403821945287_516619.jpg)
도심 한복판의 폐건물. 이는 단지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전문가 김모씨(62)는 "30년 넘게 방치된 건물은 도시의 흉물일 뿐 아니라 안전사고의 가능성도 상존하는 위험물"이라며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직접 매입하거나 공공 용도 개발을 전제로 한 법적 강제수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은 제주 관광업계의 전반적인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메종글래드(옛 제주그랜드호텔)와 파르나스제주호텔(옛 하얏트호텔) 등 도내 주요 특급호텔들이 해외 자본이나 국내 투자사에 매각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업계는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악화로 흔들리고, 오래된 시설은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다. 이 와중에 아예 한 번도 문을 열지 못한 건물은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는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있다.
한때 '관광의 섬' 제주의 관문이자 첫 인상으로 자리 잡을 뻔했던 르네상스제주호텔.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한 이곳은 계속해서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불쾌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공사는 멈췄고, 시간은 흘렀다. 이제 제주가 답을 내야 할 때다. 언제까지 이 호텔을 유령처럼 두고 볼 것인가.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건설현장 외부 가벽이 파손돼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9/art_17403821915624_2ba8c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