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식정류장 개통 6일차 … 혼란·충돌·불편에도 '안정 중'이라는 제주도

  • 등록 2025.05.15 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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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정류장은 생겼지만 교통은 더 막혔다 … 제주형 BRT, 어디로 가고 있나

 

제주시 서광로를 시작으로 본격 시행된 '제주형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고급화 사업'이 시행 첫 주부터 도민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제주도는 전국 첫 '섬식정류장'과 양문형 버스를 도입해 정시성 향상과 환승 편의, 대중교통 이용률 제고를 이끌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은 여전히 혼란 그 자체다.

 

정류장을 찾지 못해 헤매는 승객, 방향을 혼동한 고령자들의 불편, 중앙차로에서 얽히는 택시와 버스의 정체, 정차 위치를 어긴 버스로 인한 접촉 사고까지.

 

시민 체감은 "기능은 없고 불편만 늘었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제주도는 "조기 안정화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도민 불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정류장 구조, 예산 배분, 정책 일관성 전반에 대한 구조적 질문이 제기되는 지금 제주형 BRT는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정류장, "깔끔하지만 불편하다"는 역설 = 섬식정류장은 도로 중앙에 섬처럼 조성돼 양문형 버스의 양방향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실제 시민이 체감한 것은 "깔끔하긴 한데 타기 불편하다"는 역설적인 평가다.

 

서광로 6개 정류장 중 4곳은 '동광로 방면'과 '노형로 방면'으로 승차 위치가 나뉘어 있어 같은 300번대 버스라도 어느 쪽에서 타야 할지 혼동하기 쉽다. 반대편에서 버스를 놓치는 사례도 잦고, 고령자·관광객 등 정보 접근성이 낮은 이용자층은 특히 취약하다.

 

버스정보안내기(BIT) 고장, 승차 위치 표기 부족, 노선번호 식별 어려움 등도 혼란을 키운다. 도는 해당 문제를 알고 방향 표기와 위치도를 보완 중이지만 이미 '정류장이 헷갈린다'는 인식은 확산된 상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도민은 "정류장은 너무 예쁘게는 해놨는데 어디서 타야 할지 매번 헷갈린다"며 "버스를 자주 타는 사람도 혼동되는데 처음 오는 관광객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도민 오모씨(63·여)는 "출퇴근 시간마다 버스를 놓치고 반대편 정류장으로 뛰어가는 사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본다"며 "안내는 많지만 정작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류장은 공공 교통 인프라다. 낯선 이용자도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섬식정류장은 고급화된 설계가 오히려 이용자 배제를 야기하는 '역기능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화려한 정류장과 불편한 버스, 세금은 어디에 쓰였나? = 서광로 3.1㎞ 구간에 설치된 섬식정류장 6곳에는 모두 87억 원이 투입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류장 1곳당 12억원이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교차로 7곳의 개선공사, 차로 도색, 신호체계 보완 등 부대사업 전체를 포함한 금액이다.

 

제주도 대중교통과에 따르면 정류장 자체 조성 비용은 규모에 따라 한 곳당 약 3억5000만원에서 4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가변형 또는 중앙 상대식 버스정류장은 1억원 안팎, 고급형이라 해도 2억원 전후로 조성 가능하다. 이와 비교하면 섬식정류장은 최소 1.5배에서 2배 가까이 비싼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실제 이용 효율은 오히려 낮다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에 설치된 정류장은 완전 밀폐형 구조다. 외형은 깔끔하지만 버스 승하차 기능에는 오히려 불리한 구조다. 양문형 버스를 고려해 양방향 문을 열 수 있도록 설계했지만 대부분의 도민은 여전히 우측문 중심의 이용에 익숙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승강장 내부도 협소해 300번대와 400번대 노선이 혼재되면서 탑승 동선이 더욱 복잡해졌다.

 

일부 정류장에는 밀폐형 대합실 위에 이중 지붕까지 설치됐고, 내부에는 온열 의자, 냉난방기, 공기청정기, 무선 충전기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졌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고급화 요소들이 실제 이용 편의 향상보다는 외형에 치중한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정류장을 치장하는 데 예산이 집중됐을 뿐 정작 그 결과는 '덜 타게 되는 정류장'이 됐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기존 중앙로에 설치된 반개방식 정류장이 오히려 승하차 동선 측면에서는 더 효율적이었다는 현장 반응도 적지 않다. 이용자 중심이 아닌 정책 홍보용 외형에 방점을 찍은 설계는 결과적으로 정류장 이용성을 떨어뜨리고, 공사 기간과 예산까지 부풀린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더불어 정류장은 설치로 끝나는 시설이 아니다. 냉난방 설비, 전자 장비 유지·보수, 정기 점검 등 지속적인 관리 예산이 매년 투입돼야 하는 구조다. 결국 이번 '섬식정류장 고급화'는 단발성 사업이 아닌 지속적 세금 지출의 시작점이라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도민 김모씨(54)는 "정류장 안에 에어컨도 있고 의자도 좋은데 정작 버스 타기가 더 복잡해졌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예전 정류장이 낫다. 돈을 쓰려면 기능에 써야지 겉모습만 바꿔선 소용없다"고 말했다.

 

 

◇ 정책 일관성은 어디에? 혼재된 노선과 미비한 환승 체계 = 섬식정류장 개통과 함께 양문형 저상버스 22대가 투입됐지만 모든 노선이 중앙차로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300·400번대는 섬식정류장을, 200번대는 기존 가로변 정류장을 이용하는 이원화 체계가 도입 초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정류장은 새로 생겼는데 노선은 제각각이다. 환승 연계가 단절되고 동선이 꼬이는 구조다. 도는 1년 이내 전면 일원화를 목표로 양문형 고상버스를 추가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승인 절차와 도입 일정 등에 따라 변동 여지가 크다.

 

이와 함께 '중앙버스 전용차로'의 명칭과 실제 운영 방식의 간극도 논란이다. 도는 택시의 전용차로 진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일부 택시가 중앙차로 한복판에 정차하며 교통 흐름을 저해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버스 전용차로에서 정차나 승하차는 명백히 금지돼 있으며 앞으로는 자치경찰과 협력해 단속과 계도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주형 BRT는 '전국 최초'와 '고급화'라는 타이틀을 내세웠지만 도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복잡한 정류장, 불안정한 환승, 더 심해진 교통 정체다.

 

도는 "시간이 지나면 적응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교통 체계는 원래 직관적이고 반복 가능해야 한다. 시민 누구나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공공 교통이라 할 수 있다.

 

섬식정류장은 정류장 중심의 보여주기식 계획이 아니라 이용자의 동선과 일상 흐름을 우선한 실용적 설계로 전환돼야 한다. 지금처럼 정류장은 커지고 예산은 늘어나지만 환승은 불편하고 교통 흐름은 느려지는 방식이 지속된다면 이는 정책의 본질을 왜곡하는 길이다.

 

한대희 대전광역시 교통전문연구실장은 "대중교통은 전시용 시설이 아니라 시민의 이동권을 실현하는 기본 인프라다"며 "외형적 고급화보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구조와 실질적인 접근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류장을 치장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그곳에서 누구나 빠르고 쉽게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지금 제주도가 되돌아봐야 할 고민은 바로 지극히 기본적인 원칙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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