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 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3/art_17490261600399_cfc6d5.jpg)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관광수도 제주' 구상이 이제 현실화의 갈림길에 놓였다. 워케이션과 의료관광, 4·3 기록관, 탄소중립, 농업 혁신, 자치분권 등 분야별로 굵직한 약속이 제시됐지만 정작 그 앞에는 여전히 높은 벽이 버티고 있다.
장기 침체에 빠진 관광산업,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의료 현실, 치유로 이어지지 못한 4·3 문제 해결,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에너지 전환 정책, 구조적 개선이 어려운 1차 산업, 그리고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한 자치분권 과제.
이재명 정부가 제주를 향해 내놓은 비전은 누구보다 풍부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실행 조치나 신속한 정책 전개는 임기 초반인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물론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모든 과제가 일시에 해결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유권자들이 기대는 다만 신호탄이다. 선언과 약속은 충분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겠다'는 첫걸음에 대한 기대다.
![ 제21대 대통령선거일이자 공휴일인 지난 3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카페 마노르블랑의 정원이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3/art_17490262170358_18ad75.jpg)
◆'한국관광 1번지 제주'는 어디로? =제주 경제의 중심축인 관광산업은 2020년대 들어 장기 침체 국면에 빠져 있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 수는 1187만명이다. 2023년 1268만명에서 80만명 가까이 줄었다. 회복을 기대했던 올해 상반기에도 뚜렷한 반등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항공좌석 공급 부족, 고공행진 중인 숙박비, 지역 간 서비스 불균형이 누적되며 관광객 체류 일수와 소비 규모 모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많이 오는 관광'에서 '오래 머무는 관광'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담론은 오래됐지만 실현을 위한 구조는 여전히 조립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주를 "일과 쉼이 공존하는 글로벌 관광 허브"로 만들겠다며 워케이션과 런케이션 중심의 체류형 관광 전략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교통, 숙박, 디지털 인프라, 관광 콘텐츠 간 연계는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제주관광협회 관계자는 "단편적 서비스 개선만으로는 어려운 구조이며 중장기 전략과 투자 기반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이탈 열흘째이자 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인 지난달 29일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구름다리를 통해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3/art_17490263103654_635afb.jpg)
◆상급병원 지정, 가능할까? =의료서비스도 문제다. 제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광역자치단체다. 이런 문제로 중증 질환자 상당수가 매년 뭍지방(육지)으로 '의료 이주'를 감수하고 있다. 실제 2021년 기준 도민의 16.5%가 중증 진료를 위해 타 지역 병원을 찾았다. 항공료와 체류비 등 부대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주대병원을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하고, 헬스케어와 바이오 산업을 병행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정작 복지부와의 협의 체계, 의료 인력 수급, 시설 인프라 확대, 예산 배정 등 제반 요건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가장 뚜렷한 문제는 인력이다. 제주대병원의 전공의 정원은 136명이지만 실제 근무 인원은 20명에 그친다. 전공의 충원이 10% 초반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상급병원 지정을 논하는 것 자체가 공허하다는 내부 목소리도 있다. 공약 이행의 첫 단추가 바로 이 '인력 확보'지만 정부 차원의 대응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제주4·3평화기념관 외벽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 [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3/art_17490263796988_83e028.jpg)
◆아직도 아프기만한 제주4·3=이재명 대통령은 제주4·3을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제주4·3 아카이브 기록관' 건립을 약속했다. 이 약속은 진정성과 역사 인식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현장의 시선은 다르다.
유족과 도민들이 요구한 것은 공간보다 실질적인 진상 규명과 배보상, 트라우마 회복 지원이었다. 그러나 유해 발굴, 생존 수형인 재심 확대, 치유센터 운영 등 핵심 조치들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록관 하나로 치유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제주4·3평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진정한 치유는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감정을 어떻게 국가가 품고 기록하고 회복시킬 것인가에 달렸다"며 "물리적 시설이 아니라 정책적 공감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제주 탐라 해상풍력발전단지의 전경이다. [연합뉴스·차대운]](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3/art_17490264429209_ae0a17.jpg)
◆제주, 청정에너지 선도의 길은? =이재명 정부는 제주를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청정에너지 선도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해상풍력과 태양광을 기반으로 한 전력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그린수소 산업, 전기차 인프라 확대 등을 연결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청사진은 현실의 갈등과 충돌하고 있다. 해상풍력 단지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발, 송전선로 건설에 따른 환경단체의 저항, 그리고 수익 배분 구조를 둘러싼 불신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제주도가 행정예고한 풍력발전 고시 개정안을 두고 '공공주도 원칙'을 훼손하고 해외자본에 유리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과 재정 문제보다도 '사회적 합의'라는 가장 큰 인프라가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주민을 단순히 설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익과 책임을 공유하는 파트너로 존중해야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며 "정부가 얼마나 귀를 기울일지는 여전히 의문이다"고 밝혔다.
![농협 제주본부, 감귤류 생산자단체 스마트팜 사업단지 내부다. [행정안전부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3/art_17490265185444_beb108.jpg)
◆구원의 손길 기다리는 제주농업=제주의 농업은 고령화, 기후변화, 물류비 증가 등 복합적 위기 속에 놓여 있다. 이 대통령은 스마트팜 도입, 농산물 가공센터 구축, 해상운송비 지원 등 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농업 현장에서는 제도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비 중심의 접근은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스마트농업 확산은 기술 이전보다도 교육·인력 양성, 농지 정비, 판로 개척 등 종합적 전략이 요구되는 분야다.
게다가 제주산 농산물의 유통은 해상 운송 의존도가 높은 구조인데도 국비 차원의 해상운송비 지원은 여전히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돈보다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말이 현장의 솔직한 반응이다.
![지난해 제주도청 본관 1층 로비에 설치된 제주도 기초단체 구성 홍보물이다. [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3/art_17490265763243_f31288.jpg)
◆제주의 기초자치 복원, 언제쯤? =이 대통령은 동제주시, 서제주시, 서귀포시로 나누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모델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도는 오는 8월 주민투표를 목표로 절차를 밟고 있지만 법령 개정, 조직 설계, 재정 분권 구조 등 핵심 기반은 여전히 설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자치단체 출범이 단순히 명칭 변경이나 지역 분할이 아니라 실제로 주민자치 기능과 재정 자율성을 갖춘 '실체'로 출범하려면 중앙정부의 입법과 재정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 내 관련 논의는 아직 구체적인 진척이 없다. 행정안전부나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미온적이다. 주민투표로 동력을 확보한다 해도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현실화는 요원하다.
여기에 새 정부의 장관 인사가 지연될 경우, 도가 목표로 잡은 8월 주민투표 일정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만약 주민투표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한다면 2026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이라는 공약 자체가 현실화되기 어렵다.
![제주시 동문로터리 집중 유세 현장에서 제주 공약을 발표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3/art_17490266828287_79ef69.jpg)
이재명 정부는 제주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공약과 약속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금 제주는 방향보다 '출발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말은 넘쳤지만 실제로 정책이 현장에서 체감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작고 구체적인 첫 행동이다.
관광산업의 재구조화, 의료 접근성 개선, 4·3 해결의 실질적 진전, 에너지 정책의 사회적 조정, 농업의 유통망 개선, 자치분권의 제도적 설계까지.
이 모두는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통령이 신호를 보내야 가능한 일이다. 구호는 이제 충분하다. '관광수도 제주'라는 이름이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정부의 첫 번째 조치'다.
정부의 실행력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드러난다. 제주가 그 첫 시험대에 올라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