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혁신'이냐 '세금 낭비'냐 ... '트램'의 덫에 걸린 제주

  • 등록 2025.06.24 16: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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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수소트램, 트렌디한 이름 뒤에 가려진 물음표

 

지난 20일 오후 2시 제주시 김만덕기념관 만덕홀.

 

'제주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안)' 공청회가 열렸다. 제주도가 추진 중인 수소트램 사업에 대해 전문가와 도민이 마주한 자리였다.

 

단상 위에서는 장밋빛 '미래의 제주'가 펼쳐졌다. 관광객 수요, 탄소중립 교통수단,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익숙한 키워드들이 연이어 쏟아졌고 '제주형 모빌리티 혁신'이라는 수식어도 덧붙여졌다.

 

이날 발표된 핵심 교통수단은 '트램(Tram)'이다. 도로 위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운행되는 노면 전차로 지하철보다 건설비가 저렴하고 정시성이 높아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대중교통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전기를 사용하는 일반 트램과 달리 도가 도입을 검토 중인 수소트램은 수소 연료전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이용상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은 "수소트램 역세권 주변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사업 추진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익 대전광역시 철도정책과장도 "도시철도 건설은 단순한 교통망 확충을 넘어 도로와 교량, 교각 등 기반시설을 함께 개량하고 개선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마이크가 방청석으로 넘어가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수요 예측이 말이 되느냐", "또다시 도민을 상대로 실험하려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한 개인택시기사는 "가뜩이나 막히는 노형오거리에 트램까지 들어서면 여긴 그냥 주차장"이라고 잘라 말했다.

 

제주도의 트램 논의는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우근민 전 지사가 처음 꺼낸 이후, 원희룡 전 지사에 이르기까지 두 차례나 추진됐다. 그러나 모두 경제성 부족, 수요 불확실성, 도민 설득 실패로 무산됐다. 그럼에도 오영훈 제주지사는 다시 이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2022년 5억원을 들여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을 발주했고, 올해는 7억원을 들여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진행 중이다. 제시된 노선은 노형동~제주공항~동문시장~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까지 전체 연장 12.91㎞, 전체 사업비는 5293억원이다. 친환경 수소트램이라는 상징이 덧붙으며 '트렌디한 정책'으로 포장됐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에선 "버스 하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도정이 트램을 논할 자격이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곽성규 용담2동 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은 "6차선, 4차선의 복잡한 도심 구간을 지나는 트램이 과연 정시성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며 "건물 매입에만 수천억원이 드는 상황에서 5000억원 예산으로 사업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예산만이 아니었다. 트램 노선과 겹치는 주요 구간은 이미 버스 노선이 촘촘하다. 그러나 도는 지난해 버스 감차를 단행했고, 이 때문에 예산은 100억 가까이 줄었다. 이용객 역시 감소했다. 기초 대중교통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 교통수단을 논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힘을 얻었다.

 

공청회에서 용역진이 제시한 하루 이용 예상 수치는 5만3000명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곧장 논란이 됐다.

 

홍명환 전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SNS를 통해 "노름판에서 야바위를 치려면 손모가지를 걸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인구 40만의 중소도시가 12㎞ 구간에 5000억짜리 철도사업을 추진하고, 하루 5만명이 탈 거라 주장하는 건 사실상 대중을 상대로 한 사기극에 가깝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정말 그 정도 수요가 가능하다면 제주도는 지금이라도 그 노선에 버스를 2~3배 증차해야 하고, 과거 제주항~제주공항 버스 노선을 왜 없앴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이 같은 우려는 괜한 기우가 아니다. 용인경전철은 하루 13만명 이용을 전제로 시작됐지만 실제로는 3만명 수준에 머물렀고, 연간 수백억원의 적자가 누적됐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2월 "용인시는 수요 예측을 잘못해 손해를 입힌 전직 시장과 용역기관에 214억원을 청구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한민국 첫 수요예측 실패에 법적 책임을 인정한 사례였다.

 

김해·부산경전철도 다르지 않다. 사업 당시 2019년 예상 수요는 28만2000명이다. 그러나 실제 이용객은 5만명 수준, 예측의 17%에도 미치지 못했다. 운영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혈세 투입이 일상이 됐다.

 

 

제주의 현실은 더 복잡하다. 트램 도입이 예정된 관덕로·서문로·용문로는 도로 폭이 좁다. 보행로 확보로 2차선으로 줄어든 산지로,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설치된 노형오거리는 이미 교통체증의 상징이다. 여기에 트램 선로까지 더해진다면 원도심은 '차 없는 도시'가 아니라 '움직일 수 없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수소트램은 분명 매력적인 대중교통 수단이다. 친환경적이며 정시성도 높고, 탄소중립 도시라는 대의명분도 갖췄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도 지역의 구조와 현실을 무시하면 결국 '세금 먹는 하마'가 된다.

 

무엇보다 트램은 기술의 문제 이전에 시민 삶을 바꾸는 수단이 돼야 한다. 소리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 혼잡한 도로를 피해 출근 시간을 앞당기는 도민, 매출 하나에 하루 기분이 달라지는 상인이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대중교통의 정의는 '신기술'이 아니라 '일상'이다.

 

수소트램이 향하는 방향보다 이 도시가 어떤 사람들의 발이 되어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트램'이 아니라 '트랩(덫)'이 될 수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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