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육아도 다 하라고?" … '출산율 1위'서 '출산율 추락 1위'로 가는 제주

  • 등록 2025.07.28 16: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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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율 전국 1위, 일·생활 균형은 최하위 … "출산이 아닌 구조를 고민할 때"

 

한때 출산율 1위를 기록했던 제주가 이제 '출산을 가장 먼저 포기한 지역'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출산율 하락의 원인이 단순한 개인 선택이 아닌 일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8일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발표한 '최근 제주지역 저출산 특징, 원인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지역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전국 평균과 동일했지만 2015년 이후 감소 폭은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컸다. 같은 기간 제주의 출산율은 43.8% 줄어 전국 평균(-39.5%)보다 4.3%포인트 더 낮았다.

 

보고서는 이 같은 급격한 출산율 하락의 배경으로 '일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를 지목했다. 2023년 기준 제주의 맞벌이 가구 비율은 60.5%로 전국 1위였지만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일·생활 균형 지수'는 49.1점으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지자체의 정책 관심도'와 '노동환경' 항목 점수가 가장 낮았다.

 

일과 양육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출산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산을 미루는 수준을 넘어 아예 출산을 배제하는 흐름도 통계로 확인된다. 2000년 제주에서 둘째 이상 자녀를 둔 유자녀 가구 비율은 62.9%였지만 2022년에는 36.6%로 급감했다. 기혼 여성 중 무자녀 비율도 전국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고학력화와 만혼 추세 역시 출산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제주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010년 29.5세에서 2023년 31.9세로 상승했고, 같은 기간 대졸 이상 여성의 비율도 45.6%에서 65.8%로 크게 증가했다.

 

보고서는 "고학력 여성일수록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로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또 일하는 여성일수록 자녀 수가 크게 줄었다. 2000년 제주에서 일하지 않는 기혼 여성의 평균 자녀 수는 2.7명이었지만 2020년에는 2.5명으로 완만히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일하는 여성의 평균 자녀 수는 2.8명에서 2.0명으로 1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제약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출산은 인센티브가 아닌 '제도가 허용하는 가능성의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혜정 고용노동부 연구관은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는 단순히 인센티브를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사회 전반에 구축하는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제주지역의 전월세 가격 상승률은 최근 전국 평균을 웃돌고 있다. 청년층의 주거 불안정은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양육비 부담, 사교육비 상승, 돌봄 인프라 부족 등도 둘째 이상 자녀를 꺼리는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25~39세 고용 여건이 악화되고, 출산 주 연령대 여성의 타지역 유출이 증가하면서 출산율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역 내에서 양질의 여성 일자리를 확보하고, 청년 창업을 적극 지원하는 구조적 대응이 시급하다"며 "혼인과 출산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함께 정부, 지자체, 기업, 교육계가 연계한 전방위적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동준 한국은행 제주본부 경제조사팀장은 "지금의 저출산 흐름을 단순한 출산 장려금 지급만으로는 되돌리기 어렵다"며 "주거, 보육, 일자리 등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종합적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과 여성의 삶에 기반한 인구 유입 전략과 함께 지방소멸에 대응할 수 있는 중장기 정책 수립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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