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전국은 창단·이전 붐 … 전국체전 앞둔 제주는 '스포츠 변방'?

  • 등록 2025.08.27 13: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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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끝난 뒤에도 이어질 스포츠 문화와 인프라 과제 ... "전국체전 이후,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전국체전이 내년 제주에서 열린다고요? 근데 전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어요."

 

내년 가을, 제주는 한 달간 '스포츠 섬'이 됩니다. 9월에는 31개 종목·1만여 명이 참가하는 제4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10월에는 50개 종목·3만여 명이 모이는 제107회 전국체육대회가 잇따라 열립니다. 155명 규모의 조직위원회가 출범했고, 도청·교육청·체육회·경찰까지 총동원해 경기장 보수와 운영 준비에 한창입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전국체전' 이야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도민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아, 선수들이 하는 거잖아요", "우리랑 상관없다"는 말이 심심찮습니다. 대회가 눈앞인데 체전이 지역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기운은 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주는 K리그1 제주SK FC(전 제주 유나이티드)가 있는 '축구의 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스포츠 다양성이나 관심 확산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전국은 지금 창단과 이전으로 들썩입니다. K리그2는 내년 김해·용인·파주가 합류하고, KBL 농구는 전주 KCC가 부산으로, 고양에는 새 구단이 들어섰습니다. 배구도 안산 OK금융그룹이 부산으로 이전했습니다.

 

이 '확장과 재편'의 지도 속에서 제주는 비어 있습니다. KBO 규격 야구장도, KBL·V리그 기준을 충족하는 실내 아레나도 없습니다.

 

과거에도 시도는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민간 주도로 '제주 프로야구단' 창단이 논의됐으나 항공 이동·원정 숙박 비용이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2010년대에도 실내 프로구단(농구·배구) 유치를 위한 타당성 검토가 있었지만 관중 기반 부족과 기업 스폰서 풀의 한계로 무산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제주에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발목을 잡았던 구조적 부담은 기술과 시장 변화로 상당 부분 완화됐습니다.

 

항공 운임은 대형 단체 계약과 저비용항공사(LCC) 노선 확대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낮아졌고, 원정 숙박도 성수기를 피해 비수기 관광 인프라를 활용하면 합리적인 가격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경기 일정과 관광 일정을 결합한 패키지 상품을 만들면 외부 관중을 유치하는 동시에 지역 관광 소비도 촉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온라인 예매·모바일 티켓, 방송·스트리밍 기술 발달로 '현장 관중 수익'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습니다. 예전에는 '돈이 너무 든다'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경기할 시설조차 없다'는 인프라 부재가 가장 큰 걸림돌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국체전처럼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대규모 이벤트가 열려도 그 열기가 지역 스포츠 문화나 상시적인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체전 기간에는 경기장마다 함성이 울리고, 미디어가 연일 메달 소식을 전하지만 막을 내리는 순간부터 스포츠 뉴스는 자취를 감춥니다. 남는 건 '축구의 섬'이라는 이미지와 K리그 한 종목에 쏠린 관심뿐입니다.

 

 

제주SK FC의 관중 동원은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23시즌 평균 8155명으로 인구 10만명당 관중 수 전국 1위를 기록했고, 1만명을 넘긴 홈경기도 나왔습니다. 올 시즌에도 평균 6000명대 후반을 유지하며 K리그1 중위권 수준을 보였습니다.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입니다. 특히 접근성이 제한적인 섬 지역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대형 프로스포츠가 없는 환경을 고려하면 '축구의 섬'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충성도 높은 팬층이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홈경기 때마다 도민뿐 아니라 관광객까지 관중석에 앉는 독특한 관람 구조도 제주만의 강점입니다.

 

그러나 절대 관중 규모로 보면 여전히 상위권 구단과 격차가 큽니다. FC서울·전북현대·울산현대 등은 평균 1만명 이상을 꾸준히 모으고 있고, 대구FC도 1만명대에 근접한 관중을 유지합니다.

 

제주는 축구에서만 비교적 존재감을 보일 뿐 농구·배구·야구 등 다른 종목에서는 이렇다 할 프로스포츠 관중 문화나 팬덤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스포츠 소비와 관심이 특정 종목에만 쏠리는 현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지역은 전국체전을 계기로 종목 저변을 넓히고, 생활체육 참여를 늘립니다. 프로 구단 유치 논의까지 연결해 스포츠 생태계를 확장합니다.

 

충남 보령시는 전국체전 이후 머드광장을 활용한 해변 스포츠 대회를 상설화했고, 강원도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을 리그·국제대회 유치 거점으로 전환했습니다. 일부 도시는 체전 이후 경기장을 리그 홈구장으로 개조하거나 청소년·여성·장애인 스포츠 프로그램을 상설 운영하며 지역의 일상 속에 스포츠를 심습니다.

 

김해시는 제105회 전국체전 주 개최지로서 성공적인 대회 이후에도 전국 단위 스포츠대회를 연이어 개최하며 스포츠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전국체전 개·폐막식이 열린 김해종합운동장은 시민친화형 복합문화스포츠 공간으로 조성돼 체육대회는 물론 K-pop 공연, e스포츠 대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유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습니다.

 

김해시는 설계 단계부터 수익시설과 생활체육시설을 이원화해 대회가 없는 시기에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또 김해는 프로축구 K리그3 소속 시민구단인 김해 FC의 K리그2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전국체전에서 형성된 스포츠 열기를 프로스포츠 확장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홍태용 김해시장은 "김해 FC가 지역사회의 새 구심점이 돼 시민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고, 지역 성장을 견인하는 한 축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김해시는 전국체전을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닌 장기적인 스포츠 인프라 확충과 프로 구단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지속 가능한 스포츠 도시' 전략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반면 제주는 그 거대한 파도가 지나간 뒤 다시 고요해지는 '한 시즌짜리 스포츠 축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나마 시즌이 끝난 각 종목의 프로구단들이 전지훈련지로 제주를 찾으며 경기장이 먼지 쌓이는 일은 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해외 전지훈련이 재개되고 일본 등으로 구단들의 발길이 옮겨가면서 이마저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경기장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야기가 오가고, 팬 문화와 지역 정체성이 스며들어야 뿌리내립니다.

 

이도현 전북현대 단장은 "스포츠 이벤트는 단발성 흥행으로 끝나선 안 된다. 지역과 팬이 상시적으로 교류하며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가 다시 팀과 대회를 지탱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 "경기와 대회가 끝난 뒤에도 팬들의 관심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구단과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과 지속적인 시설 활용 전략이 필수다. 이런 기반이 있어야 스포츠가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전국은 창단과 이전으로 스포츠 지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내년 전국체전을 치르고도 여전히 '스포츠 변방'으로 남을 건가요? 잠깐만요!! 전국체전이 끝나도 이어질 스포츠 이야기, 준비돼 있습니까?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 <잠깐만요!!>는 <제이누리>만이 아닌 여러분의 생각도 전하는 코너입니다. 한 컷 또는 여러 컷의 사진에 담긴 스토리와 생각해볼 여지를 사연으로 담아 보내주십시오. 저희가 공유의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보낼 곳은 제이누리 대표메일(jnuri@jnuri.net)입니다.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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