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인정해줘!” 배신자 된 일등공신과 인정욕구

  • 등록 2025.09.05 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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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왝 더 독(Wag the Dog) (10) 태평성대 이룬 중국 요임금
배만 불러도 만족했던 백성들 ...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구에 좌절

정치해결사 브린(로버트 드 니로 분)과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모츠(더스틴 호프먼 분)의 신출귀몰한 ‘조작극’에 힘입어 ‘소녀 추행범’인 현직 대통령은 8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마침내 재선에 성공하는 기적을 일궈낸다.

 

 

음침한 승리는 정정당당한 승리에는 필요 없는 ‘입막음’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전리품’ 배분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공익제보자’나 ‘내부고발자’로 나서면 모든 게 허사로 끝난다. ‘알바니아와의 조작된 전쟁’이라는 사기극의 수괴는 분명 대통령이지만 실무 총책은 브린이다.

당연히 ‘입막음’도 브린의 몫이다. 브린은 ‘알바니아 전쟁 조작극’에 참여한 모든 사기단원에게 적절한 논공행상을 한 듯 모든 것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듯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진다.

브린은 사기극의 ‘일등 공신’인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모츠에게 외국 대사 자리를 제안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정권 창출의 크고 작은 공신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크고 작은 기관장 자리가 340여개라고 하는데, 그 면면에 ‘어둠의 공신’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미국 대통령은 ‘대국’답게 그 자리가 30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대사 자리는 꽤 ‘노른자위’ 자리다. 웬만한 나라에서 미국 대사라는 직함은 주재국 대통령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리다. 객관적으로 모츠에게 과분해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모츠는 할리우드의 재능 있는 영화제작자였지만 사실 연이은 실패로 영화제작자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인물이다. 모츠로서는 감지덕지할 만한 ‘보상’이다.

그런데 모츠는 뜻밖에도 대사 자리에 불만 정도가 아니라 분노를 터뜨린다. 브린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모츠가 원하는 것을 묻는다. 모츠의 ‘요구 사항’이 브린의 할 말을 잊게 한다. 모츠는 대사 자리 같은 것은 필요 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오직 백악관이 ‘이번 대선 승리에 스탠리 모츠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음지에서 군번도 없이 암약해야 하는 비밀공작원이 양지에서 공로를 인정받겠다고 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 사항이다. 어이없어 하는 브린에게 모츠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만약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언론에 그 사기극의 전말을 터트려 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그야말로 백악관의 ‘인정’에 목숨을 건다. 자폭해서라도 모든 국민들로부터 모츠가 제작한 영상들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인정받기를 원한다.

결국 브린은 살인청부업자를 부른다. 얼마 뒤 모츠는 ‘자살당한’ 변사체로 발견된다. 해결사 브린에게 그렇게 해결당하고 만다. 모츠 또한 자신의 요구가 죽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도 각오하고 있었던 듯하다.

배리 레빈슨(Barry Levinson) 감독이 ‘모츠(Motss)’라는 특별한 이름을 이 독특한 캐릭터에게 부여한 덴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MOTSS(Member Of The Same Sex)는 본래 미국 인구조사에서 사용되는 분류 코드인데,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은어로 사용되는 용어다. 인명으로선 적절치 않다. 

그렇다고 극 중에서 스탠리 모츠가 동성애자도 아니다. 아마도 감독은 성 소수자의 성적 욕구가 특별한 것처럼, 모츠의 욕구가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다른 ‘욕구 소수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해괴한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사기 프로젝트에 힘을 보탠 일반인들은 대개는 적당한 자리나 금전으로 충분히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 있다. 그런데 ‘알바니아 사기극’에서 맹활약한 모츠는 당황스럽게도 돈이나 명예보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에 목숨을 건다. 해결사 브린이 경험해 본 적도 없는 당황스러운 인물이다.

금전이나 자리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겠지만, 인정욕구는 불세출의 해결사 브린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고차원적인 욕구다. 결국 돈이나 자리로도 틀어막을 수 없는 모츠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그를 죽일 수밖에 없다.

인정(esteem recognition)욕구는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ㆍ1907~1970년)의 유명한 ‘욕구 5단계설(1단계 생리적 욕구ㆍ2단계 안전욕구ㆍ3단계 소속감과 사랑욕구ㆍ4단계 인정욕구ㆍ5단계 자아실현 욕구)’에서 자아실현 욕구와 함께 피라미드 구조 최상단에 속한다.

생리적 욕구나 안전욕구,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는 비교적 만족시키기 용이한 욕구들이다. 어쩌면 ‘개돼지의 욕구’에 가깝다. 그러나 4단계인 인정욕구부터는 누구도 해결해 주기 어렵다.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聖君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5000년 전 고대 중국 요堯임금의 성취는 어쩌면 백성들의 1~2단계 욕구를 해결해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임금이 변복을 하고 민정시찰을 나갔는데 한 노인이 그늘에 누워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배부르고 좋네”라고 잔뜩 부른 배를 북처럼 두드리며(함포고복含哺鼓腹) 노래하고 있었다고 한다. 

몸 성하고 배부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기준으로 보면 거의 모든 국민이 함포고복하고 있는 우리는 태평성대에 살고 있고, 지금 우리의 통치자들도 모두 ‘요임금급’의 성군이니 만족하라고 한다면 모두들 당장 ‘우리가 개돼지냐!?’고 분노할 듯하다. 모츠의 인정욕구도 따지고 보면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모츠도 개돼지가 아니었을 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이 3만6000달러로 집계됐다고 한다. 통계수치라는 것이 공허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면 불룩한 배를 북처럼 두드리며 행복해하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할 텐데 아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모츠처럼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구와 자아실현 욕구에 좌절하고 곳간에 3만6000달러를 쌓아두고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인정욕구에 목마른 모츠에게 대사 자리나 금전적 보상은 아무 의미 없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3만6000달러는 아무 의미 없다.

미국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1775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연설로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질렀다고 하는데, 영화 속 모츠나 우리는 ‘인정(recognition)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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