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코로나19, 유독 혹독했던 제주 ... 제주관광진흥기금의 역설

  • 등록 2025.09.24 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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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인가, 족쇄인가 ... 중앙은 안전망, 제주는 고립망, 수치로 확인된 이중 타격

 

코로나19는 한국 관광산업 전반을 멈춰 세웠습니다. 서울의 특급호텔 객실은 불이 꺼지고, 강원의 스키장은 시즌 내내 슬로프가 텅 비었으며 부산의 국제회의 산업도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중앙정부 관광진흥개발기금이라는 안전망 덕분에 최소한의 숨통을 틀 수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한 중소 호텔 대표는 "문체부 융자 덕분에 직원 월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의 컨벤션 업체들은 임대료와 전기세 같은 고정비를 충당하며 연명을 이어갔고, 전남의 여행사·숙박업체도 중앙 기금 덕에 폐업 직전에서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상황이 정반대였습니다. 출국납부금과 카지노 납부금이 전액 제주관광진흥기금으로만 귀속되는 구조 때문에 문체부 융자 공고에는 늘 '제주도 소재 업체 제외'라는 문구가 붙었습니다. 평소에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점이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곧바로 중앙 지원에서 고립되는 '제도의 덫'으로 작용했습니다. 

 

수치를 보면 그 심각성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2019년 제주공항을 통해 해외로 출국한 내국인은 약 144만명에 달했습니다. 출국자 한 명당 1만원씩만 계산해도 140억원 이상이 제주관광진흥기금에 유입됐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에는 상황이 정반대로 전개됐습니다. 국제선이 끊기며 출국객이 3만명 수준으로 추락했고, 기금 유입액도 불과 3억원 수준에 그쳤습니다. 불과 1년 새 98% 이상 감소한 겁니다. 여기에 카지노 납부금도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사실상 제로에 수렴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중앙정부 관광진흥개발기금은 2020년에도 관광업계를 살리기 위한 긴급 융자 사업을 잇달아 공고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0년도 상반기 관광진흥개발기금 융자지원지침'에서는 운영자금 및 시설자금 지원을 위해 약 250억원 규모의 융자공고가 제시됐고, 한 지자체 공고에서는 500억원 규모의 특별융자 사업이 별도로 공지된 바 있습니다.

 

중앙 기금은 전국의 호텔, 여행사, 컨벤션 업체 등 중소 관광사업체들이 임대료·인건비·운영비 등을 견딜 수 있도록 최소한의 '숨통'을 틔워주는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공고문의 하단에는 '제주도 사업체 제외'라는 단서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전국이 중앙의 안전망을 통해 버팀목을 마련한 반면, 제주는 제도적 배제로 사실상 '빈손'이었던 것입니다.

 

 

이 차이는 현장에서 곧바로 체감됐습니다.

 

코로나19 당시 제주에서 호텔을 운영했던 김모씨(62)는 "사드 사태 이후 제주관광진흥기금 융자를 받아 버텨왔지만 마침 만기가 도래한 시점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재연장이 어려워 호텔이 공매 위기까지 내몰렸다"며 "도와 여러 기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없었다. 결국 지원받을 길이 전혀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도내 호텔과 인천 송도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오모씨는 "서울이나 부산은 문체부 기금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제주소재 호텔은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며 "결국 은행 대출에 의존하고 개인 출자금까지 끌어다 쓰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호텔업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렌터카 업계는 수백 대의 차량이 금융사에 회수되거나 폐차되며 줄도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관광객이 끊기자 차량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사, 게스트하우스, 식당 등 관광 연관 산업도 줄줄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반면 강원이나 전남 업체들은 중앙 기금 덕분에 최소한의 버팀목을 마련했습니다. 제주의 고통은 단순한 시장 충격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제주관광진흥기금은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설치된 법정 의무기금입니다. 출국납부금과 카지노 납부금, 보세판매장 특허수수료가 주요 재원입니다. 평소에는 호텔 개보수, 관광지 기반시설 조성, 국제회의 지원 등 다양한 사업에 쓰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 기금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2020년 조성액은 28억원까지 줄며 사실상 '고갈 상태'에 직면했습니다. 당시 도의회는 '엉터리 운용'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실제로 웰컴센터 시설관리비 8억8000만원, 제주관광공사 운영지원 50억원 등 운영비 항목까지 기금에서 빠져나가면서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 집행이 이어졌습니다.

 

2022년 기금 조성액은 549억원이었지만 2023년 말 379억원으로 감소하며 170억원이 잠식됐습니다.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통합재정안정화기금에서 160억원을 빌렸고, 연간 이자만 5억원 이상이 빠져나갔습니다.

 

도의회는 "중소기업진흥기금이나 농어촌진흥기금은 단돈 10만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데 관광진흥기금은 방만하다"며 질타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7월부터 출국납부금이 1만원에서 7000원으로 인하됐습니다. 면제 대상도 만 2세 이하에서 12세 이하로 확대됐습니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부담이 줄었지만 제주관광진흥기금 세입은 크게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제주도의 당초 추산은 카지노 168억원, 출국납부금 75억원, 보세판매장 수수료 7억원 등 모두 358억원이었지만 제도 개편 변수로 실제 수입은 크게 줄었습니다. 정부가 한때 출국납부금 제도 자체를 폐지하려 했던 점까지 고려하면 기금 기반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신규 재원 발굴을 위해 관광복권 도입을 검토했지만 정부가 난색을 표했고, 복권기금 활용이나 일반회계 전출 같은 임시방편만 논의되는 실정입니다. 특례로 만든 기금이 위기 앞에서는 '모래 위의 성'이었음을 보여준 대목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기금 축소가 아닙니다. 출국납부금과 카지노납부금, 보세판매장 수수료라는 특정 재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 때문에 국제선이 끊기거나 외국인 관광객이 줄면 기금수입은 즉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당시 불과 1년 만에 출국납부금이 98% 가까이 줄어든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여기에 더해 중앙정부 관광진흥개발기금과의 이원적 구조는 제도의 모순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냈습니다. 같은 위기 상황에서 강원·부산·전남은 중앙 기금을 통해 임대료와 인건비를 충당하며 버텼지만 제주는 '제외 조항' 탓에 지원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자율성을 상징하던 특례가 위기 앞에서는 곧바로 고립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결국 코로나19 당시 제주의 관광위기는 단순한 시장 충격이 아니라 제도 설계 자체가 안고 있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특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율성이 위기 때는 되레 발목을 잡는 족쇄로 변한 아이러니, 그것이 바로 제주관광진흥기금이 드러낸 역설이었습니다.

 

'한국관광 1번지'라는 영광의 이름 뒤에 숨겨져 있던 제도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입니다. 이제는 특례라는 이름을 다시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잠깐만요!! 특례가 제주의 자율과 힘을 보장하는 장치로 남을지, 또 다른 위기에서 족쇄로 작동할지, 우리는 답을 내야 하지 않을까요?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 <잠깐만요!!>는 <제이누리>만이 아닌 여러분의 생각도 전하는 코너입니다. 한 컷 또는 여러 컷의 사진에 담긴 스토리와 생각해볼 여지를 사연으로 담아 보내주십시오. 저희가 공유의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보낼 곳은 제이누리 대표메일(jnuri@jnuri.net)입니다.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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