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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그리고 잠시](1) 전복 김밥 ... 봄 소풍, 그날을 생각한다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봄 기운이 완연한 지금, 오늘 하루는 다섯 날을 쉼 없이 산 당신을 위한 시간입니다. 여유로운 주말, 시 한 편의 여유를 선사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위하여. 매주말 허유미 시인이 전하는 '잠시의 여유'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전복 김밥

- 허유미

 

 

김밥 재료가 얼마나 한다고

 

어제 만화책 사지 말고

김밥 재료 살 걸

 

이번에 하얀 쌀밥에 오색 구슬처럼

햄, 달걀, 단무지, 시금치, 당근

알알이 들어간 김밥을 싸 준다 해 놓고선

슈퍼 가보니 문 닫을 시간이라 재료가 없었다고

매번 같은 말을 하는 엄마

햄 대신 전복

달걀 대신 문어

단무지 대신 톳

시금치 대신 전복 내장

당근 대신 성게

어제저녁 먹은 반찬 둥글게 말아 놨네

 

봄 소풍에는 소라 김밥

가을 소풍에는 전복 김밥

도시락 뚜껑을 열면

오색 바다 벌레가

바글바글 모여 있다

 

한 개도 안 먹고 다 남기고 올 거라고

소리 빽 지르고 도시락을 챙겼는데

아침밥을 안 먹어서

오름 오르느라 허기가 져서

때늦은 더위로 땀이 많이 나서

한 개만 먹어야지 했는데

다 먹었다

올해는 바다 것들 여물*이 실해서

작년보다 더 맛있을 거라더니

정말이네

 

*‘속’의 제주 방언

 

 

어느덧 4월입니다. 봄 소풍의 계절입니다. 소풍은 대정 알뜨르 비행장과 송악산을 번갈아 갔기 때문에 장소로 설레지는 않았지만, 도시락은 늘 설레었습니다. 돈가스, 고로케, 햄을 가득 넣은 김밥. 그러나 저의 설렘은 전복 김밥으로 언제나 빗나갔습니다. 왜 우리 집만 남들과 같은 빛이 없을까. 그 물음은 곧 성냄으로 바뀌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김밥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바다 냄새가 나는 김밥을 보며 투정을 부렸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전복 김밥은 재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끝까지 쓰는 해녀 엄마의 삶의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몸은 알고 자랐기에, 나는 결국 김밥을 다 먹었습니다. 한 번도 남기고 간 적 없는 도시락입니다. 나는 싫다고 말한 것들로 자랐습니다. 그리고 남들과 다르게 내 몸에는 젖어 있으나 사라지지 않는 푸른 빛과 힘이 있습니다.

 

☞허유미는?=제주 바닷가 마을 모슬포에서 태어났다. 수평선, 물너울, 등대, 섬은 나의 첫 친구들이었다. 말문이 트였을 때 엄마라는 말보다 바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물질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는 파란 요람, 파란 집, 파란 놀이터였다.

 

청소년 시절 유난히 말수가 적어 엄마 아빠가 걱정했다. 말수가 적은 대신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고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풍경이나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시절부터 시집을 읽는 시간이 많았다. 책꽂이에 시집이 많아지면서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2016년 제주작가 신인상, 2019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한국작가회의 회원, 제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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