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확대가 현실화되면서 제주 정치권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단순한 의석 수 조정을 넘어 정당별 공천 전략은 물론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 향후 도의회 권력구조까지 뒤흔들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 17~18일 본회의에서 제주도의회 의원정수를 현행 45명으로 유지하고 비례대표 비율을 25%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제주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제주시 을)과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 등이 발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마련됐다.
핵심은 교육의원 제도 폐지 이후에도 전체 의원 정수를 줄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현재 제주도의회는 지역구 의원 32명, 비례대표 8명, 교육의원 5명 등 모두 45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원 제도가 일몰되면서 제13대 도의회부터는 교육의원을 선출하지 않게 돼 별도 조치가 없을 경우 전체 의원 수가 40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기존 제주특별법은 의원 정수를 45명 이내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관련 조례에는 지역구 32명, 비례대표 8명, 교육의원 5명을 명시하고 있었다. 교육의원이 사라질 경우 자연스럽게 의석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를 두고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교육의원 자리를 비례대표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단순한 숫자 유지가 아니라 여성·청년·장애인·노동계·시민사회 등 기존 지역구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진입이 어려웠던 정치 신인과 소수 정치세력의 진출 통로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결국 이번 개정안 통과로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의석은 기존 7~8석 수준에서 최소 11석, 많게는 13석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22일 법률 공표를 준비하고 있다. 같은 날 제주선거구획정위원회는 제16차 회의를 열어 비례대표 정수 조정 논의에 착수한다.
현재로서는 지역구 32개 선거구를 유지하고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경우 차기 지방선거에서는 전체 도의원 가운데 약 30%가 비례대표로 채워지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변화가 단순한 숫자 조정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도지사 선거가 ‘누가 제주를 이끌 것인가’를 결정하는 싸움이라면 비례대표 선거는 ‘누가 제주 정치를 구성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본선이라는 평가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뿐 아니라 진보당, 녹색당, 기본소득당, 정의당 계열 정치세력, 시민사회 기반 후보들까지 의회 진출 가능성이 커지면서 비례대표 순번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실제로 비례대표 1번과 2번은 정당 지지율에 따라 사실상 당선권으로 분류돼 각 정당 내부에서는 지역구 공천 못지않은 경쟁이 벌어진다.
정가에서는 “누가 도지사가 되느냐 못지않게 누가 비례대표 명단 상위에 오르느냐가 중요해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시민사회와 소수정당들은 이번 개정을 일제히 환영했다.
정치개혁 제주행동은 20일 성명을 통해 “교육의원 제도 일몰로 의원정수가 40명으로 축소될 뻔한 위기를 넘긴 것은 매우 다행”이라며 “비례대표가 최소 11명에서 최대 13명까지 확대되는 것은 크게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공은 제주도의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로 넘어갔다”며 “다양성 확대라는 취지를 무겁게 받아들여 도민의 다원화된 정치적 입장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도록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한 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녹색당 역시 “비례대표 의석이 기존 8석에서 최소 11석 이상, 최대 13석까지 늘어나는 것은 비례성 확보의 진전”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례대표 의석은 늘었지만 지방의회 비례대표 배분 기준인 이른바 ‘5% 봉쇄조항’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190조의2에 따르면 광역의원 비례대표는 유효투표총수의 5%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 한해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다. 이 기준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일정한 지지를 확보해도 의회 진입이 불가능하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국회의원 비례대표 정당 진입 기준인 ‘3% 봉쇄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국회에서는 지방선거 역시 봉쇄조항을 삭제하거나 5%를 3%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로 제주에서는 2006년 기초의회가 폐지되고 광역의회로 통폐합된 이후 양당 중심 정치 구조가 더욱 강화됐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소수정당이 단 한 명의 비례대표도 배출하지 못했고,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4석씩 비례대표를 나눠 가지며 군소정당은 사실상 전멸했다.
지난 선거에서 정의당은 6.11%를 득표해 5% 기준은 넘었지만 의석 배분 과정에서 소수점 계산에 밀려 결국 의회 입성에 실패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봉쇄조항이 유지될 경우 비례대표 확대 효과가 결국 거대 양당의 의석 확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례대표가 13명으로 확정될 경우 민주당이 최대 8석, 국민의힘이 5석 안팎을 가져가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단순히 의석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공천의 투명성과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비례대표가 ‘보은 인사’나 ‘낙하산 공천’의 통로가 아니라, 진정한 정치 다양성 확대의 장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제주도의회 비례대표가 두 자릿수를 넘어서게 됐지만 그 숫자가 실제 정치 다양성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는 ‘비례대표 확대’라는 제도 변화가 제주 정치의 문을 넓히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기존 기득권 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결과로 남을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