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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81) 종교 습속 방면 (7)

이제, 도교에 대하여 알아보자.

고대 무술(巫術), 진한(秦漢)시대 신선방술에서 기원하고 있는 도교는 중국 본토에서 생겨난 고유의 종교다. 재미있는 것은 도교도 수행하고 고행하면서 도를 얻는 방법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탁발과 유사한 구걸을 중히 여긴다.

 

민간문화 중 도교 전설 속 신비로운 인물의 형상은 대부분 청빈하고 걸식하는 거지 형상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거지인 채로 직접 출현하기도 한다.

 

구처기(丘處機)와 증구절(蒸九節)

 

금(金)대의 유명한 도사, 도교 전진교 북칠전(北七傳) 중의 한 명이 구처기(丘處機)이다.

 

19세 때에 영해(寧海) 곤유산(昆崳山, 현재 산동 모평(牟平) 동남쪽)에서 출가해 왕중양을 스승으로 모셨다. 금대 세종 대정(大定) 14년(1174)에 걸식하며 살았고 도롱이 하나만 걸치고 다녀 ‘사의(蓑衣)선생’이라 불렸다. 나중에 농주(隴州) 용문(龍門)산에 은거하며 수도하여 용문파의 창시자가 되었다.

 

원 왕조가 들어선 후 원 태조가 구처기에게 ‘나라를 다스릴 방도’를 묻자 경천애인을 근본으로 삼으라 하였고 ‘장수하는 도리’를 묻자 청심과욕이 요체라고 말했다. 원 태조는 그 말을 깊이 믿어 ‘신선’이라는 호를 내리는 한편 ‘대종사’의 작위를 하사하여 천하의 도교를 관장케 하였다.

 

옛날 북방 민간에 ‘증구절(蒸九節)’ 혹은 ‘연구절(筵九節)’이라는 전통 명절이 전해져 온다. 음력 정월 19일이다.

 

청대 두광내(竇光鼐), 주균(朱筠)이 편찬한 『일하구문고(日下舊聞考)』에는 그날이 구처기가 우화한 날이라고 하였다. 증구절 날에 북경인은 백운관(白雲觀)에 운집해 ‘경마 도박, 잡기하며 즐겼다.’ 그날 구처기가 속세로 내려온다고 전한다. 관신(冠神) 모양이거나 궁녀의 모습이거나 거지의 형태로 내려오기에 ‘군중이 섞여 앉아 한 번 만나기를 원했다.’ 구처기 진인을 한 번 볼 수 있는 행운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청대 장조용(張朝墉)은 『연경세시잡영(燕京歲時雜詠)』에서 증구절 모습을 읊었다.

 

“신령한 도관에서 연구절 연회를 다투어 여니, 여러 제단에 따로 신선을 만나지 못하네. 평사 십리에 소나무 천 척, 성난 말 위에 안장 올리고 소년이 타고 달리네.”

 

도교와 거지의 ‘인연’이 얇지 않고 민간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신선 거지가 사람 거지를 가르치다

 

민간신앙의 도교 신선 중 ‘팔선(八仙)’은 거지의 형상이다.

 

그중 전형이 철괴리(鐵拐李)이다. 철괴리는 ‘이철괴(李鐵拐)’라 부르기도 하는, 팔선 전설 중 원형의 연대가 가장 오래고 이력이 가장 많다. 반면에 찾을 수 있는 문헌의 기록은 비교적 늦다.

 

『고급도서집성·신이전(神異典)』 240권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인용 기록이다.

 

“이철괴, 수(隋)대의 파국 사람으로 이름은 홍수(洪水), 어릴 때 자는 괴아(拐兒), 다른 이름은 철괴(鐵拐)다. 시중에서 걸식하니 사람들이 천하게 대했다. 나중에 지팡이를 하늘에 던지니 용으로 변했다. 용을 타고 하늘에 올랐다.

 

일설에는 이철괴는 헌헌장부로 자주 태상노군을 만나 도를 얻었다고 한다. 나중에 영혼이 빠져나와 노군을 만나러 가면서 그 제자에게 7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육체를 불태우라고 하였다. 6일째에 제자의 어머니가 급한 병을 얻게 되자 황급히 불태우고 떠났다. 이철괴가 돌아와서는 거지 시체에 들어갔다. 그래서 다리는 절게 되었고 용모는 추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이철괴는 본래부터 거지였다고 하고 일설에는 나중에 거지의 시체에 영혼이 들어갔다 하기도 한다.

 

황배묵(黃裵黙)의 『집설전진(集說詮眞)』에서 『사물원회(事物原會)』를 인용한 기록이다.

 

“이원중(李元中)은 당 현종 개원, 대종 대력 연간의 사람이다. 종남산에서 도교를 배우고 40세에 양신(陽神)이 몸을 빠져나왔을 때에 호랑이가 물어가 버리자 절름발이 거지의 죽은 몸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전진칠자(全眞七子), 북칠전(北七傳)이라 하기도 한다. 도교 전진도(全眞道) 창시자 왕중양(王重陽)의 적전제자 7명을 가리킨다. 마옥(馬鈺, 단양자丹陽子), 구처기(丘處機, 장춘자長春子), 담처단(譚處端, 장진자長眞子), 왕처일(王處一, 옥양자玉陽子), 학대통(郝大通, 태고자太古子), 유처현(劉處玄, 장생자長生子), 마옥의 처 손불이(孫不二, 청정산인清静散人)이다. 왕중양 사후에 전진칠자는 북방에서 광범위하게 전진교를 전파하고 각기 지파를 세웠다. 마옥은 우선파(遇仙派), 구처기는 용문파(龍門派), 담처단은 남무파(南無派), 유처현은 수산파(隨山派), 학대통은 화산파(華山派), 왕처일은 전진파(全眞派), 손부이는 청정파(清静派)를 세웠다. 그중 구처기와 그의 용문파의 영향이 가장 컸다. 왕중양의 삼교합일의 사상을 받아들여 각기 한 파를 이루었으나 종교사상과 수련방식은 대체적으로 비슷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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