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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그리고 잠시](2) 인어공주 ... 할머니의 바다

봄 기운이 완연한 지금, 오늘 하루는 다섯 날을 쉼 없이 산 당신을 위한 시간입니다. 여유로운 주말, 시 한 편의 여유를 선사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위하여. 매주말 허유미 시인이 전하는 '잠시의 여유'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인어공주

허유미

 

 

아무래도

우리 할머니 인어 같아

허리 아파서 종일 누워 있어

다릿심도 없어 걷지도 못하는데

할아버지가 고무옷 입히고 업어서

바다에 퐁당 빠뜨려 주면

아프던 허리는 어디 갔는지

가파도 근처까지 헤엄치더래

며칠 동안 입을 안 열던 할머니가

바다에만 가면

꽃노래도 부르고 열 길 물속 얘기하느라

할아버지보고 먼저 집에 들어가라 한다네

다른 해녀들 밤 되어 다 집에 가도

할머니는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본대

어제는 아빠랑 할머니 데리러 갔는데

할머니 눈에 그 넓은 바다가 다 들어있어

눈망울이 보름달만큼 커져 있었어

별빛 받은 할머니 얼굴이 소녀 같더라니깐

집으로 돌아와 새근새근 주무시는데

숨소리마다 물거품이 피어올랐어

세 살부터 들어가 놀던 바다에서는

돌아가신 부모 형제 얼굴이며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시나 봐

 

 

동화책 속 인어 공주가 아닌, 나는 실제 인어 공주를 보았습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를 아들과 할아버지가 물가로 모시고 가 퐁당 빠뜨려 주면, 물질을 하셨지요.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삶의 시간이 한 사람의 몸과 기억 속에 어떻게 쌓이는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바다는 단순한 생업의 공간이 아니라, 숨 쉬듯 살아온 삶의 자리이자 스스로를 가장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곳입니다. 해녀로 살아온 시간은 단순한 물질의 기술이 아니라, 바다의 흐름을 몸에 새기고 생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삶을 견뎌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다는 할머니에게 기억과 가족, 그리고 지나온 삶 전체가 함께 숨 쉬는 집이 됩니다. 한 인간이 평생을 통해 만들어 온 ‘자기 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본 인어 공주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때 가장 빛나는 한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허유미는?=제주 바닷가 마을 모슬포에서 태어났다. 수평선, 물너울, 등대, 섬은 나의 첫 친구들이었다. 말문이 트였을 때 엄마라는 말보다 바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물질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는 파란 요람, 파란 집, 파란 놀이터였다.

 

청소년 시절 유난히 말수가 적어 엄마 아빠가 걱정했다. 말수가 적은 대신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고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풍경이나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시절부터 시집을 읽는 시간이 많았다. 책꽂이에 시집이 많아지면서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2016년 제주작가 신인상, 2019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한국작가회의 회원, 제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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