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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곤, 그는 누구?] 동홍동 도의원→3선 국회의원→도지사 ... 제주 정치사 새 페이지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부 아버지와 생선장수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소년이 있었다. 가난했지만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밑바닥에서 배운 성실함과 공동체 의식을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소년은 도의회와 국회를 거쳐 결국 제주도정의 최고 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

 

6월 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로 당선된 위성곤 당선인(58).

 

위 당선인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8살 때 부모를 따라 제주로 이주했다. 외가는 서귀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제주에서 성장하며 삶과 정치 기반을 모두 제주에서 다져온 그는 민선 사상 '제주에서 태어나지 않은' 첫 도지사가 됐다.

 

뭍에서 태어났지만 제주에서 자라 삶을 배우고 정치 인생을 완성한 셈이다.

 

위 당선인은 1987년 제주대 원예학과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91년 제주대 총학생회장과 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 상임의장을 맡으며 4·3 진상규명 운동과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 운동 등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수감생활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93년 특별사면됐고 2007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지역 언론운동에도 참여했다. 서귀포남제주군신문 창간 과정에 참여하며 ‘지역언론을 통한 사회 변화’를 꿈꿨다.

 

정치 입문은 2006년이었다. 당시 38세였던 그는 동홍동 선거구에 출마하며 제주도의회에 입성했다. 이후 제8·9·10대 도의원 선거에서 내리 당선되며 3선 도의원을 지냈다.

 

당시 그는 출마 선언에서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이웃이 없는 제주,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제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정치적 존재감을 전국적으로 알린 계기는 원희룡 도정 시절 ‘행정시장 인사청문’ 도입 논쟁이었다.

 

위 당선인은 제주도 행정시장 인사청문회 조례안을 대표 발의하며 강하게 도정을 압박했고, 결국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간 합의를 이끌어냈다.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는 “위성곤이 꺼져가던 인사청문 논의를 되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도의원 시절 그는 ‘강한 야당 정치인’ 이미지도 구축했다. 도정질문에서 원희룡 당시 지사와 정면 충돌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제주 86세대 정치의 상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내친 김에 총선에 몸을 던졌다. 김재윤 의원의 낙마로 자리가 빈 서귀포선거구에서 2016년 총선에 당선, 몸집을 키운 그는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기후위기 관련 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제주 현안 해결과 탄소중립, 농어업 정책 등에 목소리를 냈다.

 

 

특히 제2공항 문제와 제주형 분산에너지 정책, 제주특별법 개정, 기후위기 대응 등 굵직한 현안마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며 존재감을 키웠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는 지난 4월29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도지사 선거에 뛰어들었다. “제주의 미래 30년을 바꾸겠다”는 것이 그의 출마 명분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제주도민의 선택을 받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위 당선인의 승리를 두고 “학생운동과 지역언론, 도의회와 국회를 거친 제주형 정치인의 완성”이라는 평가와 함께 “출생지가 아닌 삶과 헌신으로 제주인이 된 정치인의 시대”라는 해석도 나온다.

 

서귀포시 동홍동 도의원에서 시작해 3선 국회의원, 그리고 제주도지사까지 위 당선인의 정치 인생은 제주 현대 정치사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번 선거에서 위 당선인은 국민의힘 문성유 후보와 무소속 양윤녕 후보 등을 제치고 제주도정의 새 수장으로 선택받았다.

 

특히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치열한 내부 충돌과 갈등을 겪은 뒤 치러진 본선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은 사실상 본선보다 더 뜨거운 승부였다. 위 당선인은 경선 초반부터 오영훈 제주도지사, 문대림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과 맞붙으며 치열한 세 대결을 벌였다.

 

정치권에서는 당시 경선을 두고 “오영훈 도정의 계승이냐, 새로운 주도권 재편이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문 의원과 오 지사가 친문·친이재명계 조직 기반을 중심으로 세를 모았다면 위 당선인은 현역 3선 국회의원 프리미엄과 대중 인지도, 조직 장악력을 앞세워 맞섰다.

 

경선 과정에서는 ‘1인 2투표’ 논란과 ‘유령당원’ 의혹, 문자 동원 논란, 오라동 재투표 파동까지 겹치며 한때 ‘민주당 제주판 내전’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실제로 오라동 경선 결과를 둘러싸고 재투표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당 지도부까지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제주 정치권 전체가 경선 후폭풍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 당선인은 지난 4월18일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문대림 전 의원을 제치고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그 승리는 단순한 경선 승리를 넘어선 ‘리턴매치 완승’이라는 점에서도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위 당선인과 문대림 전 의원의 인연은 2016년 제20대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귀포시 국회의원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맞붙었다. 당시 문 전 의원은 제주도의회 의장과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을 지낸 제주 정치권의 중량급 인사였고, 위성곤 후보는 3선 도의원 출신으로 상대적으로 전국 인지도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위 당선인은 당내 경선에서 문 의원을 꺾고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후 새누리당 강지용 후보를 제치고 국회에 입성하며 정치적 도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10년 만인 2026년, 두 사람은 다시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재회했다. 사실상 제주 민주당의 차기 권력 구도를 가르는 승부였다. 오영훈 도정과 가까운 정치세력, 친문·친이재명계 조직, 원외 정치권 인사들까지 가세하며 제주 민주당 내부의 총력전 양상으로 번졌다.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위성곤이었다.

 

위 당선인은 결선투표에서 문 의원을 다시 꺾으며 2016년에 이어 두 번째 승리를 기록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위성곤이 제주 민주당의 차세대 주도권 경쟁에서도 우위를 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본선에서 위 당선인은 ‘통합’과 ‘민생’을 전면에 내세우며 세 결집에 성공했다.

 

위 당선인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내 “도민이 주인인 제주”, “불평등과 격차를 줄이는 포용적 제주”를 핵심 메시지로 내세웠다.

 

 

그가 강조한 대표 공약은 AI와 디지털 기반 산업구조 전환이었다. 위 당선인은 제주형 AX(AI 전환) 전략을 통해 40MW급 국가 AI 데이터센터 유치와 제주과학기술원(JIST) 설립, AI 기반 스마트 물류체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또 ‘333 민생 추경’ 공약을 통해 소상공인·청년·취약계층 지원을 약속했고, 풍력과 태양광 이익을 도민에게 돌려주는 ‘바람연금·햇빛연금’ 구상도 핵심 정책으로 제시했다.

 

그의 정치 출발점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에 맞닿아 있다.

 

위 당선인은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위성곤, 낮은 곳에서 시작했던 초심을 끝까지 잃지 않겠습니다. 도민의 삶을 바꾸는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청소부 아버지와 생선장수 어머니의 아들은 그렇게 다시 한 번 제주 정치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됐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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