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2026년 7월 1일은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그 법적 근거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법률 제7849호로 2006. 2. 11. 제정, 이하 ‘제주특별법’이라 약칭함)이다.
제주특별법은 제주사람들의 일상을 떠받쳐주는 무형·유형의 제주에 특유한 기본 틀로서 자율과 책임,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국제적 기준의 적용 및 환경자원의 관리 등을 통하여 환경 친화적인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함으로써 도민의 복리증진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목적).
이 특별법은 제정 후 20년이 경과하는 동안에 299 차례의 개정(타법 개정 포함)을 통해 개별 법조문이 수정, 보완됐다. 최근 2026. 4. 22.자 법률 제21576호로 개정된 주요 내용은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교육의원 및 교육위원회 제도가 2026년 6월 30일자로 일몰(日沒)되고, 그 대신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비례대표의원 정수를 현행 의원정수의 100분의 20에서 100분의 25로 확대하여 일몰되는 교육의원 의석을 일부 비례대표 의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시간여행자가 되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되돌아본다. 제주특별법의 모태(母胎)는 「제주도개발특별법」(법률 제4485호로 제정돼 1991. 12. 31. 시행된 법)이다. 이 법은 태생적으로 2001. 12. 31.까지 한시적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부칙 제2조). 그 수한(壽限)이 다할 무렵 새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에게 출현한 법률이 2001. 12. 27. 제정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다.
1997년 구제금융(IMF)를 겪으면서 제주의 발전 모델은 정부 주도와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혼재한 방향으로 전환됐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IMF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1998년 제주의 개방화를 통한 외자유치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제주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획기적 조치로써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 방침을 천명했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은 탄생한 것으로 보여 진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2003년12월 제주도 방문 시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된 제주특별자치도 추진에 대한 정책 의지를 천명했다. 마치 혹등고래를 포획할 수 있는 제주국제자유도시 발전의 법망(法網)을 법제화하겠다는 뜻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을 계기로 2006년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고, 제주도는 이러한 고도의 자치역량을 바탕으로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육성에 필요불가결한 법제도의 개선에 열정을 쏟게 됐다.
눈 밝은 역대 대통령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제주발전은 멈추지 않고 도약할 수 있었다고 보여 진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주행했다고 볼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정해군기지 건설’을 선언한 뒤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 건설은 ‘웬 말입니까?’라는 아우성이 커지면서 10여 년 간 극렬한 반대운동이 도 전역에 퍼져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13년 11월 관광객 1000만 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제주공항의 수용능력 한계를 직시하고 ‘성산 제2공항 건설 계획’을 띄우자 찬반의 대립과 갈등이 극렬해지면서 제주도는 ‘갈등의 섬’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또한 크게 증가하는 역(逆) 기능이 발생했다.
인간이 만든 조직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각종 사회 및 종교단체 등도 유기체처럼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역사적 발전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위기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적인 것이었다.
2002년 4월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시행되자 대규모 외국자본투자는 가능해졌고, 2002년 제1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2002~2011년)에 근거하여 2016년 외자유치가 9억 700만$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였으나 ‘예래휴양형주거단지’와 ‘제주헬스케어타운’ 등 핵심 전략산업 등에 대한 투자가 중단되거나 차질을 빚으면서 2017년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 왔다. 게다가 한반도 사드(THAAD) 배치 후 중국인의 투자심리는 더욱 위축된 듯하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타격을 입으면서 국내외 경제질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했다. 제주경제는 외부자본의 지속적 유입, 관광객 및 인구증가에 힘입어 지난 7년간(2015∼2022) GRDP가 연평균 4.3% 성장을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후에는 그 성장률이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는 2024년 재선에 성공한 뒤, 주요 정책기조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의 글로벌 경제와 외교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 간의 기술패권 경쟁심화, 그리고 NATO·한국·일본 등 동맹국과의 긴장 증가 등을 유발하고 있어서 제주국제자유도시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대외적 변화까지 맞물리면서 도민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일상의 삶에서 불확실성(uncertainty) 자체를 제거할 수 없듯이 손님처럼 찾아오는 대내외적 위기 자체를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25년 9월30일 대통령 직속의 지방시대위원회(지방분권균형발전법 제62조)가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권역별 메가시티 추진을 위한 국가균형성장 전략 설계도를 확정하고 공표했다. 이러한 국가적 설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특별성과 국제자유도시추진 전략에 직, 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다.
그 설계도의 요지는 이렇다. 전국을 5개의 권역과 3개(제주·강원·전북)의 특별자치도로 확장하고 연결해 성장 엔진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권 구축, 대중교통망을 핵심으로 하는 생활권 구축, 이를 뒷받침할 행정과 재정 기반 구축 등 3개의 축을 중심으로 수도권 1극에서 5극 3특 권역별 메가시티라는 새로운 국토 공간 설계를 통해 대한민국의 성장 지도를 바꾸자는 계획이다.
지방정부의 사업 선택 및 재정 자율성 확대를 위해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포괄 보조금을 3.8조 원에서 10.6조 원으로 7조 원가량 대폭 확대하고, 정부 주도 국민성장펀드의 비수도권 40% 투자 지원과 함께 재정·세제·금융·규제 등 정부 정책 전반에 지방을 차등적으로 우대하는 지방 우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부로부터 보조금 및 투자지원을 받기 위하여 제주특별자치도에 특유한 전략산업과 연계된 앵커기업들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지의 성패는 2026년 7월 1일 출범하는 민선 9기도정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보여 진다. 어느 언론인은 “제주의 억새는 바람을 피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제주인의 불굴의 의지를 표현했다.
지난 반(半)세기 제주의 성장과 발전은 마치 비바람에 굽히지 않은 억새, 경초(勁草)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반(半)세기의 제주 발전상을 되새겨봄도 의미가 있을 법하다.
제주 4·3의 폐허 위에 제주개발의 씨앗을 뿌린 자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1970년대 초기의 신생아와 같은 걸음마 단계에서 朴대통령께서 제주도를 국제 수준의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거점 개발 방식을 선택했다. 서귀포 중문 관광단지 지정되고 고급숙박시설, 골프장 등이 들어서고 제주공항의 활주로 2000미터 확장 등으로 관광객 수용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중문단지와 같이 단지조성식의 집중개발방식은 광역적인 지역관광자원의 잠재력 개발에 기여하지 못하고 지역 내 불균형 성장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드셌다. 중앙정부 주도의 제주개발에 대한 중간평가가 필요한 시점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89년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의 재검토”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제주도개발특별법(또는 임시조치법)의 제정 필요성을 제시했다.
노태우 대통령께서 데탕트(Détente) 이후, 세계화·개방화의 흐름을 직시하고 1990. 3. 제주도개발의 기본방향은 무한한 관광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여 국제적 관광지를 조성하는 것이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의 제정 필요성을 선언한다. 이를 계기로 정부, 국회, 제주도 3자 사이의 특별법 시안의 제정 작업에 돌입하였고 그 과정에 극렬한 도민반대운동에 직면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1년 12월 탄생한 제주도개발특별법은 도민여론을 반영하여 “주민주체개발·자연환경보전·향토문화의 계승발전”이라는 제주개발의 3대 원칙을 목적(제1조)에 명시하게 됐다. 민선1기 신구범 도정은 이런 기조를 수렴하여 제1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94)을 수립하면서 선(先)환경보전 · 후(後)개발의 원칙, 관광과 1차 산업의 균형발전의 원칙을 종합개발계획에 반영했다.
그러함에도 1997년 IMF 위기 전까지 추진된 제주 관광개발은 골프장건설 등 대부분 관광시설에 편중됨으로써 자연환경의 훼손 및 토양오염의 환경문제를 초래하였다. 관광단지·지구개발사업의 경우는 중문관광단지, 표선관광단지, 미천굴지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광지의 개발·조성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민자(民資) 유치 부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35년(1991∼2026)의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따라 제주지역에 특유한 특별법의 내용도 변천을 거듭해왔다. 크게 그 시기를 4분하면, 1기 태동기, 2기 육아기, 3기 성장기, 4기 성숙기로 분류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러한 법제사(法制史)를 기록하는 일은 국제자유도시건설의 설계도가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따라 시기별로 어떻게 변천되면서 열매를 맺었는지를 확증하는 것이다.
또한 법제사적 고찰을 통해 제주특별법의 규범적 의미를 널리 알리는 일은 도민통합과 자유민주주의 및 법치행정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아가 자치분권의 기초가 되는 정책을 법제화하거나 자치조례를 입안·해석·집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을 뒤돌아보고 향후 10년의 과제를 성찰하고 발굴해야 할 때다. 그런 취지에서 필자는 앞으로 20여 차례의 연재를 통해서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의 제정 배경 및 정신, 2001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의 탄생 배경 및 국제자유도시의 핵심전략, 투자유치의 성과, 2006년 제주특별법의 제정 과정,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20년 동안 ‘특별성’ 강화와 관련된 법 개정의 주요 골자 등을 중심으로 제주에 특유한 특별법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한다.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