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제주도와 관련된 최초의 개발구상은 5·16 직후인 1963년 6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국무총리 하의 유관부처 소속 기획관리실장으로 구성된 「제주도 건설 개발 연구위원회」에서 검토한 제주도 전역에 걸친 자유지역 설정 및 제주항과 제주시에 한정된 자유지역(항) 설정(안)이다.
그러나 홍콩과 비교 열위에 있다는 점, 전 세계 자유항이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한다는 점, 출입국, 통관, 영주권 등에서의 광범위한 자유는 국가안보에 저해된다는 점 등에 비추어 국민경제 기여도가 낮으나 관광의 자유화만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1966년 정부는 제주도를 국토건설종합계획법에 근거하여 특정지역으로 지정하여 국제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청와대 관광계획단이 주축이 되어 1973년 ‘제주도 관광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중문지구(고급호텔, 카지노, 면세점, 골프장 등)의 개발이 본격화되고 제주공항 활주로 확장(2,000m x 45m), 제주항만 확장, 간선도로망 2차선 이상 확장, 지하수 개발 등으로 관광인프라 확충에 나섰다. 이 시기의 제주개발 기본방향은 크게 세 가지, 즉 국제수준의 관광지 조성, 거점 개발방식의 채택, 단계적 개발이었다.
그런데 중동전쟁의 여파로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정부는 그 대책으로 제주도를 특정자유지역으로 지정하여 중계무역기지, 물자비축 저장지역, 가공·수출지역으로 개발하는 구상을 1975년 건설부의 대외비로 수립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여러 가지 역(逆) 기능을 염려했다. 이 사실에 대한 구체적 사료는 ≪제주개발 100년사(김한욱) 2022. 5.≫ 제1권 237∼258쪽에 실려 있다.
1985년 전두환 정부는 개방화, 세계화의 흐름에 맞춰 제주도를 홍콩, 싱가포르 유형에 한국의 특성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국제자유지역(입지예정지 제주시 / 화순)을 조성하는 계획을 대외비로 수립하였으나 경제적 및 안보적 측면이나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관한 타당성 검토 결과 시기상조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이 사업을 보류하였다.
그 대신 정부는 국민관광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 요지는 기존의 중문 관광단지는 확장하고, 표선 민속단지와 성산포 해양관광단지는 새로 개발하며 그 밖의 관광지(서귀포, 용연, 송당, 송악산, 성판악 등 23지구)를 추가 지정하여 각각의 특성에 적합한 기능과 시설을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981년에 수립된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82∼1991년)의 지침에 따라 제주도는 1985년 제1차 특정지역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85∼1991년)을 수립한다. 이 계획은 개발의 기조를 부존자원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도민소득 증대와 지역성장을 촉진하며, 국가차원의 경제·사회적 변화를 적절히 수용함으로써 대외 지향적인 국가전략의 새로운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두었다.
이 계획의 기본방향은 국제적 관광지 조성에 두어 성산, 중문, 표선 등 3개 관광단지와 14개 관광 지구에 대한 개발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시설 수요의 과다 설정, 관광지별 특성화 미흡, 도민 자본의 참여의 저조, 개발이익의 도외 유출과 1차 산업의 의존도가 50%이상인 제주지역에서 1·3차 산업 간의 불균형성장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나아가 개발계획의 수립도 국토건설종합계획법에 근거하여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의 지휘·통제를 받고 있어서 종전의 제주도건설종합계획은 자율성과 효율성을 잃고, 또 사회개발 및 자연환경보전계획 등은 뒷전으로 밀려나 거시적으로 볼 때 종합계획의 얼개가 균형을 갖추지 못했다.
이에 더하여 그때까지의 관광개발은 중문단지와 같이 단지조성식의 집중개발방식을 채택하여 광역적인 지역관광자원의 잠재력 개발에 기여하지 못하여 지역 내 불균형 성장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드셌다.
나라 밖에서는 미·소를 중심으로 한 ‘양극 체제’가 무너지고 유로(EURO)의 태동, 북미 자유무역 지대의 창설, 일본의 급격한 부상 등으로 다극 체제가 형성되고, 독일의 재통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세력 관계가 날로 변화하고 있었다. 제주 토박이들도 이제 ‘세계는 하나’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살아야 했다.
중앙정부 주도의 제주개발에 대한 중간평가가 필요한 시점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의 재검토”라는 연구보고서(1989년)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에 처음으로 특별법(또는 임시조치법) 이야기가 나온다.
그 요지는 “제주도의 지역경제가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관광산업의 육성과 아울러 제주지역의 생태 환경 관점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기하는 장기적, 종합적인 개발과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특정지역계획과 제주도개발계획을 통합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나아가 제주도개발에 있어서 「특정지역 종합개발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그 수립과 효율적 추진을 법적으로 보장할 특별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제주도 입장에서도 KDI의 용역결과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관광개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관련 개별 법령의 인·허가, 면허 등 엄격한 규제를 간소화할 필요가 그 하나이고, 자립적 개발투자재원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둘이고, 건설부장관이 갖고 있는 개발계획에 관한 권한을 도지사가 수권 받아 종합 및 실시계획의 수립과 집행을 독자적으로 행하겠다는 것이 그 셋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3월5일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으로부터 KDI의 용역 내용과 제주도지사의 건의사항을 보고 받고 ‘특별법을 제정하고 또 제주도개발의 기본방향은 무한한 관광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여 국제적 관광지를 조성하는데 두어져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행정조정실장은 3월 8일 「대통령의 지시사항과 제주도종합개발의 기본방향」이라는 문서를 관련 부처와 제주도에 송부하였다.
4월 23일 제주도의 순시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제주도 개발은 도민이 주체가 되어 자연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도지사가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고 도민의견을 수렴하여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라.’고 정부관계자에게 재차 지시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 지시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제주도민들은 특별법에 대해 큰 관심을 드러냈다. 1960년대 이후 외지 대자본 중심의 제주도개발에 대한 소외감과 불만을 갖고 있던 도민들은 특별법 제정이야말로 도민의, 도민에 의한, 도민을 위한 개발이 이뤄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저 유명한 “빠-빠-빠-빰!” 모티브로 시작되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처럼 제주특별법 출현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