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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석의 『제주특별법 35년史(3)』 제주특별법(안)의 발아(發芽)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제주도가 기초한 ‘제주도 개발특별조치법(試案)’의 주요 골자가 1990년 8월27일자 제민일보의 지면에 공개됐다. 제주도 시안은 7장 42조와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조에는 “이 법은 제주도 일원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한 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보전하면서 도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특별법의 제정목적이 제주도를 세계적 관광지로 만드는 데에 기여하기 위한 것임을 명백히 했다. 이 제주도 시안은 이른바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수태(受胎)의 조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제주도 시안에 대하여 1990년 9월11일 국회의원과 제주도가 공동으로 공청회를 개최하였는데, 거기서 제기된 문제를 요약하면 이렇다. ➀ 도민주체 개발, 도민복지향상에 미흡하고, ➁ 개발이익의 지역 환원에 관한 제도적 장치가 결여되어 있고, ➂ 개발 권한의 도지사 집중으로 인한 권력 남용의 소지가 있고, ➃ 외지인 우대의 개발법이 될 우려가 많고, ➄ 농어민의 생산기반인 토지가 개발 용지로 수용되어 재산권 및 생존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수 있고, ➅ 자연환경의 파괴로 인한 제주의 고유미가 상실되며, ➆ 관광 위주의 개발로 인한 퇴폐문화의 범람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이 없다는 것 등이다.

 

 

제주도 시안이 앞서 본 바와 같이 개발 촉진적이고, 또 도지사의 개발 권한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여론이 빗발치면서 입법절차의 비민주성 내지 입법 내용에 대한 도민의 심한 저항을 받기에 이르렀고,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1991년 12월 31일까지 16개월 동안 특별법 제정 반대 주민운동은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제주도 시안에 도민의 저항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제주 출신 국회의원들은 기존의 시안을 백지화하고 새로운 시안을 만들려는 의도 하에 제주도내 각 직능, 사회단체 또는 종교단체 등을 대표하는 28명으로 이른바 제주도개발특별조치법 기초협의회(이하, ‘기초협의회’라 한다)를 구성하여 1991년 2월12일 제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회의 초반부터 기초협의회가 도민대표성 또는 초안 작성을 위한 수임기구로서의 적합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다수의견이 있어서 회의는 발전적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난파 직전의 기초협의회에서 특별법 시안(초안)까지 마련하지 못할 경우, 기존의 제주도 시안 또는 국회의원 시안이 무수정으로 국회통과의 우려가 있다는 여론이 있는데다, 정부의 행정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될 경우 제주도의 고유 특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인 개발 위주의 정책이 실행되어 도민의, 도민에 의한, 도민을 위한 개발이 실종될 것이라는 여론이 드세게 일어났다.

 

이에 기초협의회는 1991년 4을6일 종전 입장을 번복하고 시안을 작성하기로 결정하여 위 협의회 산하에 ‘운영소위원회’와 ‘법제기초소위원회’를 두고 시안 작성을 위한 여러 차례의 회의를 열게 되었다.

 

도지사의 적극 지원에다가 기초협의회에서 작성한 특별조치법 시안을 국회의원들이 적극 수용하겠다는 변화가 있자, 기초협의회는 1991년 4월6일 시안을 작성하기로 결정하여 위 협의회 산하에 ‘운영소위원회’와 ‘법제기초소위원회’를 두고 시안 작성을 위한 여러 차례의 회의를 열게 되었다.

 

‘법제기초소위원회’는 4월 17일에 교수 6명, 변호사 1명, 공무원 1명 등 8명으로 구성하여 시안 작성에 몰입하였는데, 도민여론을 수렴할 목적으로 5월 9일에 시안 작성의 기본방향을 소개하는 홍보물인 「(가칭) 제주도개발 특별법의 입법방향」이라는 홍보책자를 발간하여 행정기관 시·군의회를 비롯한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에게 배포하여 여론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법제기초소위원회’(위원장 변호사 김승석)는 지방언론에 나타난 여론의 동정과 도내 각 기관·단체의 의견을 토대로 조문 작성에 들어가 1991년 5월 20일 8장 52조 부칙으로 구성된 「제주도개발특별법」 시안을 작성하였다.

 

이 시안은 정부(건설부)의 시안에 비해 목적의 구체화, 도민의 개발사업 참여에 대한 공공지원, 종합개발계획수립에 관한 도의회의 권한 인정 등을 신설함으로써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여전히 인·허가 절차의 간소화, 용도지역의 행위 제한 배제 등의 독소 조항이 그대로 존치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의 도민 반발은 예상했지만 기초협의회는 모조리 경을 쳐야만 했다.

 

마침내 6월 7일 제주도내 재야단체들이 특별법 저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반대운동을 조직화하기로 했고, 6월 8일에는 최초로 특별법 반대시위가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법제기초소위’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을 비롯한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쟁점 조항들에 대한 수정 작업에 착수하여 개인 사업시행자에까지 확대했던 토지수용 조항을 삭제하고 1차 산업의 진흥 내용을 명시하고, 지하수의 보호·관리 및 특별경관지역 조항을 신설하는 한편, 인·허가절차의 간소화에 대한 의제처리의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등으로 보완을 거쳐 6월 13일 8장 52조 부칙으로 구성된 「제주도개발특별법」 수정안을 공개하였다.

 

제주신문은 6월 20일 특별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자 1,035명 중 특별법 제정이 ‘당장 필요하다’는 30%,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37%, ‘당장 필요 없지만 앞으로 필요하다’는 24%, ‘앞으로도 필요 없다’는 8%로 나타나 응답자의 70%가 특별법 제정의 시의성에 반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같은 날 실시된 제주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특별법 제정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무소속 후보들이 9명(도의원 정수는 17명)이나 당선됨으로써 민의의 향방이 제정 반대로 기울자 제주도 출신 민자당 소속 국회의원 3명은 공청회를 다시 개최하여 도민의견을 수렴함과 아울러 도의회와도 협조하여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다음에 추진하겠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1991년 8월 1일 홍영기 도지사의 후임으로 제주도 출신 우근민 도지사가 취임함으로써 특별법 제정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취임 전의 반대운동이 소극적·관망적이었다면 그 후의 반대운동은 차츰 조직화하기 시작하여 적극적 투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8월 5일 특별법 제정 반대 범도민회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제주도의회 무소속의원들이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8월 8일 제주도출신 국회의원들이 주최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 공청회에서 반대집단과 찬성 집단 사이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심각한 갈등 현상이 표출되었다.

 

8월 16일에 집권 여당인 민자당에서 대통령에게 특별법(안)을 정기 국회에 상정하겠다고 보고함으로써 12월까지 법 제정의 로드맵이 가시화되자 제주 출신 선량들은 제정 반대 측을 선무(宣撫)하기 위한 제도 개선책을 내놓았으나 법 제정의 반대 흐름은 더욱 거세져서 특별법 제정 반대 10만인 서명 운동이 시작되었고, 9월 7일엔 그 동안 반대 운동에 참여하여 오던 30여개 단체가 연합하여 제주도 개발특별법 제정 반대 범도민회(이하, ‘범도민회’라고 함)을 결성하였다. 1991년 11월 7일 서귀포시 ‘나라사랑청년회’ 소속 양용찬 열사가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여 분신자살함으로써 특별법 제정에 대한 관심은 전국적 뉴스거리가 됐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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