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처럼 양용찬 열사의 결기는 제주도특별법 제정의 흐름에 변곡점이 됐다.
16개월간의 특별법 제정반대 도민운동으로 제주도개발특별법 내용은 당초의 시안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졌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으로 나누어 정리를 해보겠다.
제주도 개발특별법의 제정 목적은 제주도를 국제적인 관광휴양지로 조성하기 위한 종합개발계획의 수립과 추진 동력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함이다. 이런 정책 가치와 목표가 제주도민들의 사회적 가치와 크게 괴리됨으로써 도민들의 적극적 제정 반대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보여 진다.
제주도 관광종합개발계획(1973∽1982년)과 제1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85∽1991년)을 중심으로 한 20여 년 동안의 관광주도형 지역개발은 지역 간 또는 산업 부문 간의 불균형 발전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도민들 다수의 부정적 인식이 깊었다. 그러함에도 1990년 8월 공개된 제주도 시안조차도 균형발전의 제도적 장치 설계에 소홀이 했다.
이뿐만 아니다. 개발이익의 불공평한 배분을 완화시키기보다 오히려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까지 생겨났다. 개발사업의 시행으로 종전의 토지이용이 제한되거나 심지어 토지수용으로 생활터전을 빼앗겨 타지로 이주하거나 개발 주변의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아야 하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던 도민들이기에 두 번째의 화살에 찔리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도민들의 반대가 저항적 지역이기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각종 성명이나 홍보물의 내용에 「도민」과 「외지인」, 「도내 기업」과 「외지 대자본」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이 표출되고 있어서 반대운동의 발단이 지역이기주의에 연원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지역이기주의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시각이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 반대가 지역주민의 생존권과 환경권의 보전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반대운동을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편향적 시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입법은 국회의 전유물이고, 또 그 입법의 동기나 배경이 국가 및 지역의 상생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수혜자인 국민이나 도민들의 ‘법 감정’을 무시하면 결과적으로 ‘죽은’ 법(死法)이 되고, ’살아 있는‘ 법(生法)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반대운동은 그 기간이 1년 4개월이고, 반대시위에 참가한 연 인원이 1만 8000여 명이며, 점거와 농성 등의 물리적 투쟁으로 다수의 구속자와 부상자가 함께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비폭력, 평화운동이라 할 수 없겠다.
여기에다 대중매체의 특별법에 대한 높은 관심과 양용찬 열사의 분신사건은 반대 운동의 향방을 제시하였음을 물론, 대중운동의 기반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고 보여 진다.
이 반대운동은 도민여론을 찬·반 양쪽 분열시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역(逆)기능을 낳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당초의 시안과 달리 도민주체 개발방식이나 개발이익의 도민 환원 등의 제도적 장치를 신설함으로써 진일보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3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공과(功過)를 저울질하기가 두렵다. 왜냐하면 필자도 그 시안 작성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그 현장에서 체험한바 그대로 순(順)기능과 역(逆)기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긍정적 측면을 살펴본다. 무조건 반대운동이 아닌 적극적 참여 투쟁은 사회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힘이 됐다고 보여 진다. 지역사회와 의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이나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관(官) 주도형 ‘결정-통보-방어(decide,announce, and defend)’와 같은 프레임이 깨지고 민주주의 훈련이라는 학습 효과를 낳아 그 후에 전개된 전국적 시민운동의 모델케이스가 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둘째, 부정적 측면을 살펴본다. 16개월 동안의 반대운동은 제주도가 추진하는 각종 개발사업과 정책 집행을 지연시킴으로써 행정능률과 정책의 공신력을 추락시켰다고 보여 진다. 특별법 제정 과정에는 가치관의 갈등, 이해관계의 갈등, 구조적 갈등 등의 종류와 원인이 복합적이었음에도 갈등 당사자 사이의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은 뒷전으로 밀리고 1차 산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 측과 상공인과 개발이익의 직·간접적 수혜자들로 구성된 찬성 측의 쌍방 형 감정적 대립으로 인해 지역사회가 균열되는 아픔을 낳았다는 점이 그렇다.
1991년 10월3일 9장 48조 부칙으로 구성된 제주도 개발특별법(정부안)이 공개되었다. 이 시안은 기초협의회(안)을 중앙 관련 각 부처의 협의와 법제처의 심의를 거치고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의 최종 검토를 거쳐 나온 것이다.
정부 시안은 기초협의회(안)에 대비하여 종합계획의 수립에 있어 중앙정부의 통제권이 강화되고 또 개발 지향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구체적으로 기초협의회(안) 내용 중 8개 조항(예컨대, 종합개발계획안에 대한 의견제출, 계획의 폐지·실효에 따른 피해 구제 조항, 사업계획에 대한 이의신청, 보상금 지급 등)을 삭제하고, 4개 조항은 신설하였으며 11개 조항에 대한 하부 법령의 위임을 기초협의회(안)이 ‘도조례’로 정하도록 한 것을 모두 고쳐 ‘대통령령’으로 변개하였다.
나아가 이 정부 시안은 기초협의회(안)에 포함되어 도민들의 반발을 샀던 토지 소유자에 대한 개발 촉구 조항을 삭제하기는 했으나 개발지구내의 용도지역 행위 제한 배제 조항은 그대로 존치하고 도민 주체의 개발을 상징하는 8개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오히려 도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됐다. 그런 까닭에 정부 시안에 약간의 부분 수정을 가미한 민자당 시안이 공개되었으나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1991년 11월5일 정부와 민자당은 당정회의를 열고 특별법을 정기국회에 상정하기로 하고, 대통령령 위임조항 중 4개 조항은 ‘도조례’의 위임으로 변경하고 개발제한구역의 행위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특별법 시안을 확정하였다.
1991년 12월 31일 「제주도개발특별법」이 국회 의결을 통해 제정됐다. 이 법은 우리 헌정사에서 최초로 제주도에만 적용되는 한지법(限地法)이자 한시법(限時法)이다. 부칙 제2조에는 “2001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그 수한(壽限)을 명시하고 있으나, 2002년 1월 26일 법률 제6643호로 전부 개정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부칙에서 경과조치를 둠으로써 명실공이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출범과 동시에 구(舊) 제주도개발특별법은 마치 모태 속에서 10개월을 자란 태아가 옥동자로 태어난 것처럼 동일성을 승계하며 신법에 계승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