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6년 9월 일본 나가사키에 주재하고 있던 동인도회사 무역관장 앞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상한 복장(조선 옷)을 한 이들이 13년 전 사라진 스페르베르호 선원이라 주장하고 나타났다. 하멜 일행은 실종으로 처리된 상태였다.
스페르베르호는 1653년 9월에 동인도회사 무역관이 있는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해 일본으로 가던 중 스페르베르호가 제주에 표류했던 사실을 조선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동인도회사 간부들은 1년 뒤인 1654년 10월 스페르베르호와 그 배에 실린 화물을 장부에서 삭제하고, 선원 64명의 실종을 발표했다.
1666년 9월 4일 하멜 이하 8명은 달이 지고 썰물이 시작되는 시간을 기다려 해변에 있는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 나가사키에서 조사를 받고 1년 후 동인도회사 본부가 있던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자카르타)에 도착했다. 하멜 일행 중 전라 병영을 탈출 못 한 나머지 7명이 있었는데, 이들도 일본과 조선 간의 협상을 통해 1668년 9월에 나가사키로 떠났다. 이들도 바타비아를 통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나가사키에 도착한 하멜은 밀린 월급 상환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자, 네덜란드로 돌아가 암스테르담의 담당자에게 다시 월급을 청구하고 조선에서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바로『하멜 표류기』다.
하멜은 회계사 겸 서기였다. 선원 중에 유일하게 문자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이 때문에 하멜이 조선에 표류했을 때 조선에 관한 모든 사항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멜은 ‘동인도회사 직원을 위한 보고서 작성 지침서’에 따라 표류기를 작성했다.
하멜의 이러한 전략은 성공했다. 처음 신청한 선원들은 배가 침몰하면 일 안 했다고 간주한다면서 2년 치 봉급만 인도적 차원에서 주고, 하멜 등 7명 선원에게는 13년 치 봉급을 지급했다. 이에는『하멜 표류기』로 동인도회사가 유명해진 점이 작용했다.
『하멜 표류기』는 ‘표류기(漂流記)’와 ‘조선 왕국기(朝鮮王國記)’로 구성되었다. ‘표류기’는 네덜란드를 떠난 이후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을 거쳐 다시 귀국할 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지이며, 난파 경위, 조선에 표박(漂迫) 이후 하멜 일행이 겪은 체험과 감상이 연대순으로 기록했다. ‘조선 왕국기’는 조선의 지리, 풍토, 산물, 정치, 군사, 형법 제도, 종교, 교육, 교역 등 하멜이 조선에서 체류하면서 보고 들은 조선에 대한 모든 사항을 기록했다.
하멜과 함께 탈출한 다른 선원이나 지인들이 기록하거나 문답한 내용에는 그들이 조선에서 처와 자식들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멜 역시 조선에 처와 자식이 있었지만, "조선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생겼다."라는 점은 자신에게 불리하게 적용됨을 우려, 『하멜 표류기』에서 뺐으리라, 추측만 하고 있다. 이와 관련이 있어선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하멜은 귀국 이후 동인도회사에서 계속해 회계사로 일하며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