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를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은 마지막에 이르러야 기호記號의 반전을 보여준다. ‘기호’는 우리가 매일 접하면서 해석해야 하는 정보이고 사인(sign)이며 시그널(Signal)이다. 하지만 이런 기호를 잘못 수용하면 ‘망상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윌리엄 수도사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기인 안경까지 휴대하고 다니며 수도원 연쇄살인을 수사한다. 요즘으로 치면 ‘CSI급’ 과학수사다. 윌리엄 수도사는 동시대 실증주의 철학자인 윌리엄 오캄을 상징한다. 윌리엄 오캄은 당시 유럽에서 최초로 안경을 쓰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관찰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윌리엄이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 있었던 사람은 벼랑에서 떨어져 시체로 발견된 삽화가 아델모 한명뿐이었다. 그때 광신적인 수도사 ‘알리나르도’가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윌리엄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속삭인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예언대로 흘러가는 것이오!” 근대적 합리주의와 기호학의 대가라 소개되는 윌리엄은 당연히 이 황당한 ‘요한계시록 프레임’을 비웃는다.
그런데 또다른 수도사 베난티오가 돼지 피 항아리에 처박혀 죽은 시체로 발견되자 윌리엄도 ‘요한계시록 프레임’에 걸려든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첫번째 피살자 아델모는 벼랑 아래로 추락사했고, 폭풍우로 시신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이것을 요한계시록 종말을 알리는 제1의 나팔소리(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떨어짐)로 해석하고 베난티오의 죽음 역시 계시록 제2의 나팔소리(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이 피에 잠겨 죽음)로 해석한다.
며칠 후 보조사서 벨렝가리오가 책에 발라놓은 독에 중독돼 환각을 보다가 수도원 목욕탕 욕조에서 익사한다(요한계시록ㆍ불타는 큰 별이 강에 떨어져 물이 쑥처럼 쓰게 변해 그 물을 마시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윌리엄은 이제 요한계시록 7개의 종말예언에 맞춰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기획자인 호르헤 수도사는 요한계시록에 맞춰 살인을 기획하지도 실행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제야 윌리엄 수도사는 자신이 흔히 ‘동쪽에서 귀인이 나타나…’ 식의 토정비결土亭秘訣이나 ‘난리를 피하려면 팔금산으로 가라’는 식의 정감록鄭鑑錄 같은 요한계시록의 프레임에 맞춰 왔음을 깨닫는다.
4번째, 5번째 살인은 호르헤가 윌리엄을 조롱하기 위해 일부러 요한계시록에 예언에 맞춰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도 알아차리고 참담해지지만 이미 난장판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독일의 신경정신의학자이자 정신분열 연구의 대가인 클라우스 콘라드(Klaus Conradㆍ1905~1961년) 박사는 1958년 아포페니아(Apopheniaㆍ착각ㆍ망상)라는 새로운 정신질환 증상을 발표한다.
그 핵심 개념은 ‘무작위성 속에서 가짜 패턴을 찾아내는 현상’이다. 어원으로 살펴보면 ‘Apo(멀리 떨어진)’와 ‘Phainein(보여주다ㆍ나타나다)’의 합성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실재로부터 멀리 떨어져 엉뚱한 것을 본다는 뜻이다.
콘라드가 새로운 증상에 그리스 단어를 붙인 의미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고 연관성도 없는 무작위ㆍ우연한 데이터 사이에서 억지로 연관성을 찾아내 의미를 부여하는 정신병리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나 ‘척하면 삼천리’쯤에 해당될 수도 있겠다.
아포페니아의 반대말은 ‘아포판시스(Apophansisㆍ통찰)’가 있다. 똑같은 ‘Apo’지만 여기에서는 ‘철저하게’라는 의미가 돼 ‘철저하게 규명하여 본질을 드러낸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무책임한 ‘프레임’으로 넘겨짚지 말고 철저하게 개별적인 팩트를 규명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통찰’과 ‘착각’은 그리스 어원에서도 그 차이가 거의 불분명할 만큼 종이 한장 혹은 한끗 차이로 갈린다. 통찰이라고 믿었던 것이 한순간 삐끗하면 착각이나 망상으로 빠지는 것처럼 그 경계가 아슬아슬하다.
그토록 냉철한 합리주의자 윌리엄 수도사의 통찰도 어느 한순간 자신도 모르게 ‘망상(아포페니아)’의 늪에 빠져버린다. 윌리엄이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에 윌리엄은 그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찾으러 헐레벌떡 뛰어나온 수도사들이 윌리엄에게 “혹시 오는 길에 말을 보았느냐?”고 묻자 대뜸 “당신들이 찾는 말 ‘부르넬로’는 저쪽으로 갔소”라고 길을 가리켜준다.
윌리엄은 오는 길에 도망치는 말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오는 길에 보통 말발자국보다 깊게 박힌 말 발자국에 이어 보통 말의 키 높이보다 높게 부러진 숲속 나뭇가지들을 봤고, 그 정도 체구의 말이라면 수도원장이 애지중지하는 명마 ‘부르넬로’일 것이라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줘 수도사들을 놀라게 한다.
그토록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윌리엄이지만, 아델모ㆍ베난티오 두명의 수도사가 죽은 현장을 보고는 곧바로 엉뚱하게도 요한계시록의 ‘종말론 프레임’이라는 망상(아포페니아)에 빠져버린다.
숲속에서 본 발자국과 부러진 나뭇가지라는 기호(시그널)만 보고도 수도원장의 명마 브루넬로가 도망친 길을 정확하게 통찰했던 윌리엄이 요한계시록의 괴이한 ‘과잉해석’에 빠져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한 통찰(아포판시스)이 한순간에 콘라드가 명명한 정신질환증세(아포페니아)로 추락한다.
점점 복잡다기해지고 그에 따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 돼서 그런지 아포페니아라고 진단명이 나오는 정신질환자도 늘어간다고 한다. 몇 개의 기호(정보와 시그널)들을 자신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씌워놓고 현상을 해석해버리는 현대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얼마 전 끝난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믿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했다. 모두가 놀라고 개탄할 만한 사고임에 분명하다. 진즉에 ‘부정선거’ 프레임을 간직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거리에 모인다.
그토록 명철한 윌리엄 수도사도 두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요한계시록 프레임에 빠져들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부정선거라는 프레임 속에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기호(시그널)를 넣고 보는 건 당연할 수도 있겠다.
다만,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시그널을 부정선거로 해석하는 것이 통찰인지 아니면 망상인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평생을 기호(시그널)의 해석에 바치고 기호(시그널)의 ‘과잉해석(over-interpretation)’을 가장 경계한 에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