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월간 수출이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산업통상부가 집계한 지난 6월 수출액은 1022억5000만 달러. 독일,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월간 수출 1000억 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과 세계 수출 4강 등극도 가능할 전망이다. 이같은 수출 호조세를 반영해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4%로 상향 조정하는 국내외 기관들도 등장했다.
수출 증대와 성장률 상승은 단연 반도체 덕분이다. 6월 반도체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199.5% 증가한 448억2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20대 주력품목 중 컴퓨터, 석유제품, 선박, 화장품 등 18개 품목의 수출도 늘었지만, 반도체 비중은 전체 수출의 43.8%를 차지할 정도로 막중하다.
이런 상황에서 6월 29일 발표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원 규모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프로젝트는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이 반도체 생산 규모 확대를 넘어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로봇공학을 산업 역량 강화와 국가 균형발전 전략으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세계적으로 기업들이 친환경 에너지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호남 지역의 풍부한 재생 에너지가 반도체 업체들에 경쟁 우위를 제공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한국의 AI 및 반도체산업 강화에 대한 야망을 지역격차 해소 및 서울·수도권 외 경제 활성화 공약으로 연계하려는 ‘가장 과감한 행보(boldest push)’로 평가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광주를 비롯한 서남권에 반도체 팹(생산라인)을 2개씩 짓기로 정부 부처와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도 입지와 시기 등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업계는 삼전닉스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망과 정부 지원책 등을 저울질하며 실행 계획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본다.
한편에선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꺾이면 이를 이유로 투자 계획을 보류·철회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한다. 당장 시급한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필요한 인프라 지원과 규제 완화 보장을 받은 만큼 서남권 투자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전닉스가 반도체 투자를 발표하면서 낸 공시에 이런 기류가 감지된다. 두 기업은 ‘해당 규모 및 일정은 추후 변경될 수 있음’이라고 적었다가 ‘투자 계획은 현재 시황에 근거한 가이드라인으로 향후 시장 상황 및 당사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을 포함시켰다.
관건은 투자 발표보다 실행이다. 정부와 두 기업 모두 ‘제2 반도체 클러스터’의 필요성과 속도전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입지·시기 등 투자 계획을 조기에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국가 대도약을 위한 한국 대표 기업들의 청사진인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언한 전력·용수·교통망 등 인프라 지원과 인재 양성, 규제 혁신에도 차질이 없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용인과 호남 투자를 동시에 추진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청와대에 전담팀을 두고 전 과정을 책임 있게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산업통상부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시설 조성을 5년 안에 마치겠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의욕적으로 내놓은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제때 제대로 실행되도록 걸림돌이 되는 규제에 대한 혁파와 관련 입법 등으로 적극 지원해야 마땅하다. 과거 정부에서도 정권 초기 정부와 대기업들이 함께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가 시간이 지나며 흐지부지된 사례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10대 그룹이 1000조원 넘는 투자와 40만명 이상 신규 채용 계획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반도체 산업이 초호황을 구가하는 한편 많은 다른 분야는 어려운 ‘K자형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수출이 사상 최대인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경영난에 허덕인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인한 막대한 이익이 경제 전반의 온기와 내수의 활기로 연결되지 않고 부동산으로 쏠리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반도체에 기댄 ‘반짝 성장’이냐 ‘지속가능한 성장’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대기업과 반도체 기업의 수출 성과가 중소·중견기업,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에까지 이어지도록 산업 생태계를 더욱 유기적으로 밀도있게 고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충청권 AI 인프라, 영남권 피지컬AI와 로봇·모빌리티 거점을 잇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성공이 절실하다.
정부와 기업들은 AI 인프라 투자의 ‘피크 아웃(정점 후 하락)’에도 대비하면서 긴밀히 협조하며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청사진도 구체적 실행이 따르지 않으면 말잔치나 희망 고문에 그칠 수 있다. [본사제휴 the scoop=야재찬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