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6월 2일 대통령 박정희는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항파두리에서 열린 항몽유적지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당시는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제주도 방문이 됐다. 그날 제주도민과 학생 등 2만여 명이 행사장에 모였다. 항몽유적지는 고려 시대 몽골에 항쟁한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였던 곳으로, 1997년 4월 18일 사적 제396호로 지정됐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던 나도 그날 행사장에 일찍 가서 대통령 일행을 기다렸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약 30m 앞에 승용차가 멈추더니 대통령이 내렸다. 대통령은 기다리던 도민들과 악수하면서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셨다.
TV에서 보던 대로 작은 키에 얼굴이 까무잡잡했다. 당시 60세였던 대통령은 특유의 옅은 미소를 띤 채 나랑도 스치듯 악수하며 지나갔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작아 행사장 맨 앞에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과 악수할 기회가 있었던 거다.
나는 얼른 대통령님 손을 꽉 잡으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사실 그날 난, 그에게 하고픈 말이 있어서였다. 4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때서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영부인님 일은 참! 안 되셨습니다. 힘내십시오!” 한 마디 위로라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인파 속에 묻힌 채 행사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운동장에서 공 차며 놀다가 갑자기 교무실 쪽에서 하늘이 무너진 듯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 뛰어 가봤다. 몇몇 여선생님들은 울고 계셨고 교감 선생님은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못 차리신 듯 보였다. 화면에선 하얀 한복을 입은 육영수 여사가 피 흘리며 들려 나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박정희 대통령 얘기를 엄청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귀 생김새가 나와 비슷하고, 키가 나보다 작아 그에 대한 인상은 친근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후, 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가혹하게 찢겨 극단적으로 갈라지면서 내 생각이 널뛰듯 흔들리기도 했다.
미악산 아래까지 다 감귤나무 심어라!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주로 감귤과 관광단지 개발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동네 어른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서귀포 정방폭포부터 대포 주상절리, 색달해수욕장 등을 보고 그 해안 경관에 감탄한 나머지, 당장 중문관광단지 건설을 지시했다.”더라, “서귀포시 동홍동 미악산 아래까지 감귤나무를 심을 수 있을 수 있는 땅이면 다 감귤나무를 심어라, 제주도는 온난한 지역인 만큼 식량 증산보다 감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라.”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더라, 같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던 시절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박정희 모델은 정부가 시장을 대신해 투자와 경제발전을 주도 하는 방식이다. 개발 정책의 형성·집행·점검 조정 모든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정부가 주도했다. 당시 경제정책은 빈곤 탈출, 개발과 성장, 산업화, 수출주도형으로 축약된다. 이 같은 경제정책으로 한국경제의 양적 팽창, 산업화 기반 조성, 절대적 빈곤 탈출 같은 성과가 나타났다. 박정희=산업화라는 등식이 성립됐던 지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부터 이상할 정도로 제주도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오늘날 제주 경제 기반을 닦아놓았다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명백하다. 하지만 그가 왜? 하필 제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흐릿하다.
다만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18년 동안 총 25회 제주도 방문을 돌이켜보면 제주에 와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연두순시와 방문이 제일 많고 선일 포도당 준공식, 화순 화력발전소 준공식, 항몽순의비 제막식 같은 행사 참여와 연휴 때 휴양차 가족들과 방문도 꽤 있다.
연초 연두순시 때 내린 지시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불시에 혹은 수시로 점검하기 위해서거나, 혹은 그 과정에서 생긴 민원이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기 위해 제주도청이나 도민이 볼 때 불쑥, 혹은 돌연 제주를 다녀가기도 했다. 1970년에는 한 해 네 번이나 제주를 방문했었다.
1970년 1월 2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차 제주를 방문했다. 다음날 서귀포에서 하룻밤을 묵은 육영수 여사는 당시 제주도 지사인 권용식 지사 부인과 함께 제주시로 오면서 권 지사 부인으로부터 우회도로 도로포장을 대통령께 건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로부터 25일 후 내무, 건설, 문교, 농림 장관 등을 대동한 박 전 대통령은 제주에 내려와 우회도로 포장 공사를 내년(1971년)까지 매듭지으라고 특별지시하고 올라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