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가 죽음의 묘지로 전락하고 있다. 온갖 해먕생물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위험천만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폐그물에 걸린 귀상어가 숨진 채 발견됐고, '용왕의 사신'이라 불리는 바다거북은 잇따라 폐어구에 목숨을 잃고 있다. 멸종위기 남방큰돌고래는 수년째 폐어구를 몸에 감은 채 제주 바다를 떠돌고 있다.
귀상어와 바다거북, 남방큰돌고래.
사는 곳도, 생태도 서로 다르지만 이들이 마주한 마지막 적은 같다. 인간이 바다에 버린 폐그물과 폐어구다.
기후변화가 제주 바다의 모습을 바꾸고 있지만 지금 제주 바다를 가장 빠르게 병들게 하는 것은 인간이 남긴 쓰레기다.
◆ 폐그물에 걸린 귀상어 ... 희귀종도 피하지 못한 '유령어업' = 21일 서귀포해양경찰서와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김병엽 교수에 따르면 지난 17일 서귀포 문섬 인근 해상에서 한 선박이 폐그물에 걸린 귀상어 사체를 발견했다.
선박 스크류에 부유물이 감긴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폐그물과 함께 엉켜 있는 귀상어를 발견한 것이다.
길이 약 1.5m로 성체(3~4m)에 비해 어린 개체로 추정되며 사체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다.
귀상어는 망치처럼 넓게 펼쳐진 머리가 특징인 상어로 주로 아열대와 열대 해역에 서식한다. 제주 연안에서 발견되는 사례 자체가 드문 만큼 전문가들도 주목하고 있다.
김병엽 교수는 "수온 변화와 먹이 이동의 영향으로 귀상어가 연안까지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녀들은 상어를 보기만 해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귀상어의 죽음은 희귀종 발견이라는 의미보다 폐어구가 바다 생태계를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 바다거북도, 남방큰돌고래도 같은 덫 = 지난 4일 서귀포시 안덕면 황우치해변에서는 붉은바다거북 성체가 폐사한 채 발견됐다. 하루 전에는 운진항에서 폐그물에 걸린 매부리바다거북이 구조됐다. 지난달 같은 지역에서 어린 푸른바다거북 사체가 발견됐다.
올해 들어 제주 연안에서 좌초하거나 폐사한 바다거북은 모두 23마리다.
연도별 피해 현황을 보면 문제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제주에서 확인된 바다거북 발견(좌초·혼획·방류 포함)은 2021년 37마리, 2022년 39마리, 2023년 43마리, 2024년 39마리, 올해는 현재까지 23마리다.
특히 폐사 개체는 2021년과 2022년 각각 60마리 이상으로 집계됐으며 이후에도 매년 폐사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폐어구와 플라스틱 쓰레기, 선박 충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교수는 "부검을 해보면 비닐이나 해양쓰레기를 먹은 개체들이 나온다"며 "거북은 비닐을 해파리나 해초로 착각해 먹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제주에서는 바다거북 산란도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1998년 중문색달해수욕장에서 붉은바다거북 부화가 확인된 이후 2007년까지 네 차례 산란이 관찰됐지만 이후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폐어구의 피해는 바다거북에만 그치지 않는다.
다큐제주와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에 따르면 현재 제주 바다에서는 최소 5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폐어구를 몸에 감은 채 살아가고 있다.
연도별 조사에서도 폐어구 피해는 반복되고 있다. 제주도와 제주해양경찰서,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2000년 이후 혼획이나 좌초가 확인된 남방큰돌고래는 모두 59마리다. 폐어구가 몸에 감긴 개체는 2019년 이후 매년 3~4마리씩 확인됐다. 올해(1~8월 기준)는 4마리가 확인돼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대표적인 개체인 '행운이'는 2024년 11월 꼬리에 폐어구가 걸린 모습이 처음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도 이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또 다른 돌고래와 어린 돌고래에서도 폐어구와 낚싯줄이 확인됐고, 주둥이에 낚싯바늘이 걸린 개체도 계속 관찰되고 있다.
◆ 기후변화를 말하지만 ... 정작 바다를 죽이는 것은 사람 = 기후변화는 분명 제주 바다를 바꾸고 있다. 귀상어가 제주 연안까지 올라오는 것도 그 변화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귀상어를 죽인 것은 수온 상승이 아니라 폐그물이었고, 바다거북을 죽이는 것은 플라스틱과 폐어구이며, 남방큰돌고래를 수년째 괴롭히는 것도 인간이 버린 낚싯줄이다.
오승목 다큐제주 감독은 "갯바위 가까이 돌고래가 나타나면 낚시객들이 잠시 낚싯줄만 거둬도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며 "끊어진 낚싯줄 회수와 해양 정화 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 긴급구조 전담팀도 구조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피해가 더 빠르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23년 낚싯줄에 걸린 새끼 돌고래 '종달이'도 결국 구조되지 못했고, 전문가들은 지난해 이후 관찰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폐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제주 바다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누구인가 =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주변의 바다에는 폐그물과 낚싯줄, 플라스틱 쓰레기가 끊임없이 버려지고 있다.
귀상어와 바다거북, 남방큰돌고래는 서로 다른 종이지만 같은 이유로 인간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실제 피해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바다거북은 최근 5년 동안 매년 수십 마리가 좌초되거나 폐사했고, 남방큰돌고래는 2000년 이후 폐어구에 몸이 감긴 사례가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희귀종 귀상어까지 폐그물에 걸려 숨진 채 발견되면서 폐어구 문제가 특정 종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 해양생태계 전반을 위협하는 공통의 위험요인이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제주 바다를 위협하는 것은 더 이상 기후변화만이 아니다.
오승목 다큐제주 감독은 "재앙적 수준의 남방큰돌고래 수난은 지금도 진행형"이라며 "어린 개체가 잇따라 죽고, 죽은 새끼를 부패할 때까지 품고 다니는 어미 돌고래의 모습은 물론 폐그물에 걸린 귀상어와 바다거북까지, 제주 바다에서는 인간이 버린 폐어구로 인한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해양생물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과 안전망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