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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58) 마라도 삶의 흑백

-김영갑의 사진미학 '섬에 온 이방인의 시선, 사유하는 영혼'

 

제주국립박물관에서는 고 김영갑의 기증 사진전이 ‘찰나와 영원, 제주를 담다’라는 제하로 2026년 6월16일부터 2027년 3월1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 글은 고 김영갑 사진가를 기리는 글임을 밝힌다(편집자).

 

 

메를로 퐁티의 말대로 “보는 이는 자기 몸으로 인해 보이는 세계 속에 잠긴다. 그러면 그의 몸 자체가 눈에 보인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내 손이 닿는 곳, 적어도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있고, 내가 닿을 수 있는 곳의 지도 위에 표시된다.” 여기서 지도는 사진 자체이다. 급기야 시간은 그를 사유하는 몽상가로 만들었고, 자신의 유토피아를 찾는데 점점 가까이 이끌었다. 그야말로 그에게 세계(제주)는 삽시간에 황홀함을 경험케 하는 진짜 이어도로 생각되었다. 아니 이어도였다.

 

최남단 마라도는 흑백 작업이다. 마라도는 바다 한가운데 한 척이 배처럼 떠 있어서 환경도 삶도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여느 세상의 사람처럼 사람들은 살아간다. 바다에 의지한 삶이란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조건이 있기에, 어렵고 고달프다. 그래도 마라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서 단잠을 자고, 하루를 위해 일어나 살아가야 할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갑의 마라도는 로드 무비에 비견되는 최남단 그대로의 기록으로. 사진에 표제가 없지만, 그곳의 삶이 어떤지를 한달음에 보여준다. 사진의 역할은 소중한 기록의 가치로, 어떤 때는 미적 가치로 옮겨간다.

 

 

공간과 시간의 합생(合生)

 

보이는 세계와 나의 행동이 투사되는 세계, 이 둘은 대상의 부분이자 총체(partle totale)라고 메를로 퐁티는 말한다. 하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나는(몸), 곧 나의 사진 작업을 통해(행동) 공간과 시간의 총체가 된다. 그것이 작품이다.

 

내가 무엇을 보았다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떤 대상을 만났다는 뜻이다. 현장(field)은 어떤 사물, 혹은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것을 상황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 있는 나는 사전적인 존재가 된다.

 

오름에서 본 섬의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체이다. 모든 생명은 물질로부터 나타나고, 그 생명에서 정신이 나온다. 존재는 정신의 보금자리이다. 존재는 소우주이며 대우주는 이 존재들이 끊임없이 변하게 하는 실체적 공간이다. 공간과 시간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여서 공간이 없이는 시간도 있을 수 없고, 또 시간이 없이는 공간도 없다. 모든 물질은 운동하면서 공간이 시간을 보여주고 시간이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때 시간도 함께 하고 그 시간이 나와 함께 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없으면 세계도 없다. 세계가 있다는 것은 내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공간에는 시간의 질감이 있다. 시간은 보이지 않게 그 질감을 변형시킨다. 지금 보면 김영갑의 오름 사진은 원초적인 형태에 가깝다. 2015년 『오름사진집』이 나온 후 11년이 흘렀지만, 지금의 오름이 너무나 변해있어서 그때 김영갑의 컬러 사진의 오름을 보노라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시대가 그리도 빨리 변해갔다. 물론 변화가 세상을 서서히 바꾸게 하는 운동의 본질이지만, 생각보다 빠른 변화로 인해 덧없게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김영갑의 오름 사진들은 마치 오름 순례자인 양 수행자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오름은 몽골어에서는 ‘작은 동산’이라고 한다. 몽골의 다리 강가 솜(縣)은 화산섬의 지형인 제주와 많이 닮아서 마치 제주를 그곳에 떼어다 놓은 듯한 오름들이 여럿 있다. 오름은 화산 지형의 특성상 둥근 형태의 선(線)적인 아름다움을 보이는데 오름의 속살이 붉은색 스코리아(噴石, scoria, 제주어로 송이)로 채워졌기 때문이고 외피에 잔디가 덮여 마치 초가지붕과 같은 둥그런 형태를 띤다.

 

오름의 현상들은 1)시간:박명(薄明)은 아침 여명과 저녁 어스름, 낮과 밤. 2)계절:4계의 안개, 바람, 눈(잔설, 폭설), 운무, 장마 갠 후. 3)빛:하늘빛, 무지개, 주랑발(부챗살), 아침놀과 저녁놀. 반사광선, 직사광선, 땅거미, 그림자. 4)바람:뫼오리(회오리), 눈보라, 광풍(光風:산들바람).

 

5)구름:적란운, 권운, 고적운, 렌즈구름, 편평운. 6)오름과 오름 사이:유채밭, 메밀밭, 억새밭, 테역밭(잔다밭), 목장, 감자밭, 촐밭(꼴밭), 공동묘지, 산담. 7)색:청색(코발트, 싸이안, 아이스 블루, 프러시안블루) 보라색, 주황색, 적갈색, 회색, 녹색, 삽 그린, 노랑(연노랑), 연두색, 갈색, 흰색. 8)식물과 동물:폭낭(팽나무), 소나무, 멩개줄기, 삼나무, 삼나무숲, 억새, 소

9)장소:근경과 원경-한라산, 용눈이 오름, 다랑쉬 오름, 비치미 오름, 높은 오름, 동거미 오름 등으로 말할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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