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9월 8일, 5·16 후 다른 곳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제주도로 연두 순시 온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제주도는 꼭 한번 오고 싶었던 곳인데, 난생처음으로 제주를 방문하게 되어 감회가 깊습니다”라는 인사에 이어 뜬금없이 “여러분은 잘 살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잘 살 권리? 잘 살 권리라!
그때까지 제주도는 낙후되고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산업도, 교통도, 인프라도 개발되지 못하여 주민 소득이 전국 평균 절반에 못 미쳤다. 갖은 고난으로 육지 사람들에 대한 배타심과 불신감이 팽배해 있었다. 게다가 제주도민 전체가 몰살될 뻔했던 제주4·3으로 인해 더 황폐해져 버린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테스트 베드
지금 돌이켜보면 일종의 테스트 베드라 할 수 있다. 테스트 베드란 “어떤 것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 시험적으로 적용해 보는 소규모 집단, 지역, 영역”이란 의미다. 다시 말하면, “과학 이론, 계산 도구, 신기술에 대해 엄격하고 투명하고 재현이 가능한 테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최대 역점 사업이었던 빈곤 탈출과 국토 건설 가능성을 제주도에서 시험해 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는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1963년 10월 한라산 횡단도로(5.16도로) 1단계 개통식 치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서독은 아우토반을 건설해 일찍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했습니다”, “제주도는 횡단도로 개통을 계기로 한라의 기적을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라며 도로 개발이 경제개발에 중요한 역할이란 걸 강조했다. 이는 서독 방문 전이며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전 일이다. 한라산 횡단도로 완공에 자신을 얻은 박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도전했다면 너무 과장된 주장이려나? 그렇다 해도 제주도가 박 대통령이 구상했던 테스트베드였음은 확실해 보인다. 제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맞본 박 대통령이 이를 발판 삼아 대한민국 빈곤 탈출과 국토 건설, 산업화에 본격 집중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한욱 전 제주도 부지사는“제주도 전역 감귤원 조성과 제주 관광 종합 개발계획 수립, 일주도로 포장, 5.16도로 개통, 지하수개발, 어승생저수지 건설 등은 박정희 제주 개발 시대 성과”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제주도 개발은 관광개발과 감귤, 축산, 수산 개발 등 4대 목표와 도로와 물, 전기 기반 조성 등 3대 혁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주력산업, 특화산업, 전략산업, 성장유망산업 등을 선택하고 이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인프라(R&D) 구축 전략은 경제개발에 있어 교과서적 실천 경로다.
1964년 2월 연두순시 차, 제주도를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제주도는 여건이 다른 지역인 만큼 전국 공통 사업인 식량 증산은 염두 말고 수익성이 높은 감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이를 계기로 1965년부터 재배 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감귤증식 사업을 1968년부터 농어민 소득 증대 특별사업으로 책정하여 저리 융자로 감귤원 조성 자금을 지원함에 따라 1969년부터 획기적 증식이 이루어졌다.
1969년부터 1973년까지 5년간 식재된 나무는 1016만 그루로 연간 평균 203만 그루다. 1964년 413ha에 불과했던 감귤재배 면적이 10년 후인 1974년 1만1200ha에 달하여 27배라는 전례 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급진적 발전은 감귤이 어떤 작물이나 다른 과수보다 월등히 수익성이 높은 데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장려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우리 부모님이 감귤 과수원을 조성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야간 통행금지 없는 제주도
제주도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없었다. 1982년 이전 서울로 간 제주 사람들은 야간 통행금지로 애 많이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야간 통행금지는 1945년 9월 7일부터 1981년 12월 31일까지 실시되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결단으로 1964년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1960년대는 제주도가 본격적으로 국내외 관광지로 발돋움하던 시기였으므로 관광객들 편의를 위해 제주도만큼은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해 주자는 특혜 혹은 배려였다.
김한욱 전 제주도 부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제주라는 특정 지역을 정하고 제주를 개발하여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그 자본을 갖고 국가 발전을 시키자는 기본구상 하에서 제주에 관심이 높았다”, “관광 개발을 위해 3개 관광단지를 만들라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시했다. 그래서 속초 설악단지, 경주 보문단지, 제주 중문단지 개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1972년 2월 연두 순시 차 제주도에 들른 박 전 대통령은 내국인 신혼여행지로 인정받는 제주도를 외국인 상대로 한 국제 관광지로 개발할 결심을 하고 청와대 비서실에 제주도 관광 종합 개발 계획 입안을 지시했다. 그 이듬해인 1973년 대통령 재가를 얻어 제주도 관광 종합 개발 계획안이 확정되었다.
이 개발계획에 따라 중문관광단지 조성 1차 공사, 육지에서 모래를 운반해서 공사한 해수욕장 정비 등 관광지 개발과 제주국제공항과 제주항 확장 및 카페리 취항, 도로포장, 통신망 확충 등 각종 기반 시설 확충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지금 중문골프장 포토 존 부근에 우리 할아버지가 경작하던 유채밭이 있었다. 유채 수확 철에 할아버지 따라 그 밭에 가서 ‘꿩 독새기(꿩 알)’ 줍기도 했다. 1976년, 그 밭은 중문관광단지로 편입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