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현재 육상교통과 수송을 위한 도로 건설에 있어서 5.16도로(제1 횡단도로) 이외에도 일주도로 중산간 도로 및 1100도로 등 총 4개 국도가 박정희 정부에 의해 건설되고 개통되어 전국 15개 시도 중 교통망이 가장 잘 발달 된 지방자치단체라는 평을 듣는다.
1962년, 군사정부는 건설장비와 국토건설단 인력을 지원해, 너비 6m, 포장 너비 4m, 길이 41.6㎞ 제주도 횡단 포장도로 공사에 들어가 7년 만인 1969년 완성했다. 이 횡단도로는 3시간 반 걸리던 제주와 서귀포 간 이동시간을 한 시간 반으로 줄여 제주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지금 개념으로 보면, 한라산 남쪽 서귀포시 지역과 한라산 북쪽 제주시 지역 균형발전 시초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제주도 도로 인프라가 경제발전 발전 주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한강의 기적에 연결되는 성공 경로를 제주도라는 테스트베드에서 증명해 보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제주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물이다!
1970년 7월 25일 박정희 대통령 제주도민의 식수 문제 어승생 시찰영상 [출쳐=e영상역사관]
1965년 3월 4일 박정희 전 대통령 3박 4일간 제주를 방문했다. “제주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물이다. 성판악과 어승생 수원을 개발해서 산남, 산북 지역에서 식수 공급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65년 8월 18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돌연’ 제주를 방문했다. “한라산 수맥을 찾아서 대규모 저수지를 개발하여 농촌 마을에 급수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당시 제주도청에서 ‘돌연’ 방문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예정에 없던 대통령 방문이었다. 방문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만나는 제주 사람마다 물 문제 해결을 소원하는바, 그 해결을 위해 손수 어승생 수원지 구상도를 그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한욱 전 제주도 부지사 증언에 의하면, “박 전 대통령이 제주도에 오면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주무셨는데 그 호텔방에 놓인 종이에 한라산을 그려놓고 펜으로 손수 어승생 도면도 그린 다음 이렇게 어승생 수원지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제주도는 용천수에 의존해 생활했기 때문에 상수도 공급이 안 된다. 상수도 공급을 하려면 고지대 물을 개발하면 자연 유하 방식으로 내려가니까 동력이 없어도 수도 공급이 가능하다.”, “해안지대는 용천수가 있으니까, 물이 없는 중산간지대에 용수를 공급해라.”, “특히 축산 용수를 공급해라.”는 등의 지시를 내리고 그 진행 상황을 직접 점검했다고 했다.
그런 노력에도 막바지 단계에서 제주도의 특수한 지질 환경 탓에, 어승생 댐이 무너졌다. 주변에선 다들 포기할 것을 권유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동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지질학 전공 교수의 자문을 받아, 당시 큰 금액인 10억 이상을 추가 투입하여 끝내 제주도 산간마을 물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경우를 추진력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문제해결력이라 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제주도에서는 이런 사연이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산업육성과 기반 조성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민생에도 관심을 보였다. 1977년 1월 2일 연휴 휴양차 제주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방문하여 마을의 새마을 사업에 대한 현황을 청취하고 1천만 원을 하사했으며, 마을 공동 목장 초지 개량 사업을 권장하기도 했다. 이 마을 어른들은 지금도 그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꺼내 보이며 자랑스러워했다.
덕을 베푸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
지난 주말, 박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제주를 방문했던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를 찾았다. 아무도 알진 못하지만, 48년 전 내가 박 전 대통령님과 악수했던 곳이다. 드문드문 관광객들과 도민들이 보이기는 했으나, 그들은 대부분 주위에 있는 수국, 백일홍, 해바라기, 코스모스가 심어있는 꽃밭에서 사진 촬영하기에 바빴다. 정작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가 있는 유적지 경내에 들어가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거의 없었다. 抗蒙殉義碑 휘호를 박 전 대통령이 썼다는 걸 아는 사람은 더욱 없어 보였다.
한 시대를 신뢰와 증오 안에 살았던 지도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대별, 세대별, 개인별, 이념별, 지역별로 극명하게 나눠진다. 특히 경제적 성과와 정치적 역정은 정확히 구별되어 인식되고 있다. 산업화에 공과와 정치적 성향이나 의식 역시 명확히 구분되어 나타난다. 제주 지역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육영수 여사 사망 1년 뒤인 1975년 7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는 휘호가 난, 무척 마음에 와닿는다. “덕을 베푸는 사람, 덕이 있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항상 깐깐하고 엄격해 보인 그 역시 내면으로는 항상 덕(德)과 포용을 추구했구나! 아, 그랬었구나!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