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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⑭
영화 속 빌런들 비참한 최후 ... 그리스 문학 ‘비극의 회로’ 따라
대한민국 이끈 지도자의 말로 ... 비극의 회로 끊어낼 수 있을까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2명의 빌런은 모두 ‘성공’을 맛보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들의 행적은 그리스 비극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비극의 회로’를 따르고 있다. ‘성공>포만>오만>망상>파멸’이 그것이다. 건국 이후 80여년간 우리 정권의 집권자들도 같은 행적을 따랐다. 

 

 

영화 속에서 오하이오주州의 쇠락하고 권태로운 촌락들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2명의 빌런이 등장한다. 교회 목사 프레스턴(로버트 패틴슨 분), 마을 보안관 보데커(세바스찬 스탠 분)가 그들이다.

■ 프레스턴 목사 : ‘콜 크릭(Coal Creek)’이라는 폐광촌 작은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유난히 신앙심 충만한 마을 사람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는 ‘성공’을 거둔다. 일단 담임목사라는 권력을 확보하자 프레스턴의 사소한 잘못은 모두들 눈감아주고 넘어간다.

프레스턴은 점점 방자해져서 자제력을 잃고 동네 처녀들을 농락하기 시작한다. 첫번째 희생자 레노라의 자살 이후에도 멈추기는커녕 점점 대담해진다. 결국은 아빈의 총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 보데커 보안관 : 쇠락한 공장지대 작은 마을 노컴스티프의 보안관에 당선되는 성공을 거둔다. 마을의 유일한 보안관이 휘두를 수 있는 권한에 취해 오만에 빠진다. 얼마나 심했는지 눈도 멀고 판단력도 마비돼 여동생 샌디의 연쇄살인행각까지 직권으로 덮고, 마을 조폭 일당의 뒤를 봐주고 정기상납도 챙긴다. 결국 조폭 일당에게 샌디와의 관계를 들키고 위협을 느끼자 조폭 일당을 살해한다. 그렇게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제 발로 기어들어간다. 

문득 이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솔론’ ‘헤로도토스’ 등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이 그리스의 비극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비극의 회로’를 ‘olbos(성공·번영)>koros(포만·과잉)>hybris(오만·월권)>ate(치명적 착각·망상)>nemesis(파멸)’로 정리한 공식이 떠오른다. 비극적 영웅들만 이 공식을 따라 안타깝게도 파멸하는 게 아니라 프레스턴 목사나 보데커 보안관 같은 악마들도 이 공식에 따라 파멸한다는 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비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극작가 아이킬루스(Aischylus)의 「페르시아인들(The Persians)」은 무척 특이하게도 그리스의 영웅들이 아닌 그리스의 주적主敵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Xerxes·BC 518~465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 연극은 기원전 472년에 아테네에서 초연했는데, 이는 아테네가 살라미스 해전(BC 480년)에서 크세르크세스 1세가 직접 이끈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기적과 같은 승리를 거둬 나라를 지킨 지 불과 8년 후다.

아이킬루스의 이 희곡이 놀라운 점은 그리스의 관점에서 자신들을 위협했던 ‘대마왕’ 크세르크세스의 패배와 파멸을 마음껏 조롱하고 가슴 웅장해지는 ‘국뽕’ 충만한 승리담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저 거대한 제국이 무너졌다.

 


그렇다면 저들의 몰락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고대 그리스 문학 연구자들은 그래서 「페르시아인들」을 아테네가 페르시아와 똑같은 ‘오만에 빠져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진지하게 경고했던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처럼 아이킬루스의 불길한 예감은 불과 50여년 만에 현실로 나타난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번영의 꽃을 피운 아테네는 아이킬루스가 두려워했던 ‘성공>포만>오만>망상>파멸’의 비극적 회로에 빠져 무모하게 국력을 쏟아부은 ‘시칠리아 원정(BC 416년)’에서 재앙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nemesis(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5장에서 ‘정체政體의 변동’을 논하면서 ‘사람은 쉽게 망가진다(nemesis). 모든 사람이 번영(olbos)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다(Men are easily spoiled; not everyone can bear prosperity)’라고 적는다.

‘정치공학의 대부’라고 할 만한 마키아벨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군주론(The Prince)」에서 아예 ‘오늘 행복(성공·만족·오만)한 군주는 내일 반드시 몰락(망상과 파멸)한다’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Toynbee·1889~1975년)는 그의 12권짜리 방대한 「역사의 연구(1936~1961년)」에서 이 그리스 비극의 공식을 아예 역사의 법칙으로 공식화한다. 현자들의 거듭된 경고와 역사적 교훈에도 인류사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처럼 왕조나 국가, 문명의 흥망사로 채워진다

이쯤 되면 헤겔이 남긴 ‘황당한 역사철학’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헤겔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역사철학 강의(1837년)」 서론에서 탄식한다. “경험과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모든 국민들과 정부들이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으며, 역사에서 얻을 수 있었던 교훈에 따라 행동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건국 이후 80여년간 명멸한 우리의 수다數多한 정권들도 ‘거의’ 예외 없이 ‘성공>포만>오만>망상>파멸’이라는 그리스 비극의 공식에 따라 집권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고 탄핵당하거나 살해되기도 하고 스스로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불행한 역사가 무한반복된다’는 헤겔의 탄식이 공연한 탄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스트리아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1926~1973년)의 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무척이나 중의重義적이다. 날개가 있어 높이 날아올랐으니(성공·오만·망상), 추락은 ‘필연’이라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으니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주식시장으로 치면 사이드카나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의 우리 대통령 지지율 추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부디 전임자들의 비극에서 교훈을 얻어 다시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의 철저히 망가진 주인공이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했던 절망적인 독백이 떠오른다.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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