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저서 「장미의 이름」의 시대적 배경으로 못 박은 시점은 1372년 11월이다. 이 시점으로부터 약 36년 전, 참혹했던 십자군 전쟁(1095~1291년)이 십자군 최후의 보루였던 이스라엘 항구도시 아크레(Acre)가 마침내 함락되면서 사실상 교황청의 패배로 끝난 상태였다. 십자군 광풍이 남긴 것은 교황청 권위를 향한 의문과 쇠퇴였으며, 교황의 절대 권위와 부패에 항거하는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의 잉태였다. 「장미의 이름」을 모티브로 삼은 이 영화의 배경 역시 11월 이탈리아 북부 수도원을 짓누르는 음산한 기운만큼이나 을씨년스럽고 불온한 시대였다. 기존의 규범과 가치관은 붕괴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도덕적 공백과 혼란을 의미하는 ‘아노미(Anomie)’야말로 14세기 교회가 처한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난세가 되면 항상 자신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흔드는 온갖 세력이 등장한다. 14세기 교회는 교리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라 불릴 만큼 수많은 교단이 난립했지만 사실상 ‘빅4’라 불릴 만했던 4개의 교단이 사상적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 싸움을 벌였다. 수도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베네딕토 교단(
코스피 상승세가 거침이 없다. 지난 1년 새 1000단위 앞자리 숫자를 다섯 차례 바꾸며 6일 7000선을 넘어섰다. 지수 6000을 돌파한 지 47거래일 만이다. 중동전쟁의 불확실성과 고유가 파고도 뚫었다. 올해 코스피 상승률은 75.2%로 세계 주요국 증시 중 압도적 1위다. 6일까지 최근 1년 기준으로는 188.5% 상승했다. 거의 3배가 됐다. 세계 증시 역사상 보기 드문 기록이다. 코스피 상승 주역은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붐으로 반도체가 초호황을 누리는 가운데 반도체 비중이 큰 한국 증시에 AI 랠리 혜택이 집중됐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상법 개정과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도 거들었다. 증시 수급 구조도 달라졌다. 4일 기준 주식거래 활동계좌는 1억552만개로 지난해 말보다 693만개 증가했다. 상장지수펀드(ETF)가 급증하며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주가가 오르자 ETF로 자금이 유입되고, 그러자 다시 코스피가 상승하는 모습이다. 외국인 투자자도 지난 4월 순매수로 돌아섰다. 특히 5월 4일과 6일 이틀 연속 3조원을 웃도는 순매수로 주가를 끌어올렸다. 덕분에 삼
영화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표도르 샬라핀 주니어 분)는 분명 주연은 아닌데 그의 모습은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숀 코너리 분)보다 더욱 강렬하다. ‘신 스틸러’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화면을 씹어 먹는다. 호르헤는 수도원의 자랑인 장서관을 관장하는 수도사다. 요즘으로 치자면 도서관장쯤 되겠다. 호르헤는 용모부터 기괴하다. 족히 80세는 넘어 보이는 노인인데, 시력까지 잃었다. 그런데도 이 노老수도사는 눈동자 없는 ‘눈’을 부릅뜨고 산다. 시력이 없다는 것이 장애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한 능력이라고 과시하는 듯한 느낌이다. 눈동자 없는 눈빛이 그토록 형형熒熒하고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호르헤 수도사의 허옇게 부릅뜬 커다란 눈은 문득 미국 1달러 지폐 뒷면에 그려진 미완성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빛을 내뿜는 강렬한 눈을 떠올리게 한다. 그 눈은 ‘신의 섭리(Divine Providence)’를 상징한다고 한다. 눈 위쪽에는 라틴어 “ANNUIT COEPTIS”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직역하면 ‘신과 함께’인데, 대개 ‘우리가 하는 일(건국)은 신이 승인하신 일이다’란 의미가 깔려 있는 듯하다. 조금 비딱한 시선으로 보면 ‘미국이 무슨 짓을
내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1% 중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 2% 밑으로 하락한 데 이어 2년 만에 1.5%대까지 내려간다는 것이다. 반도체 초호황 덕분에 1분기 성장률이 깜짝 반등했지만,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은 개선되지 않은 채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올해 1.71%, 내년 1.57%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2012년(3.63%) 이후 15년 연속 하락했다. 특히 내년 4분기에는 1.52%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동ㆍ자본ㆍ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다. 한 나라 경제의 구조적 성장 능력을 보여준다. 경제의 기초 체력이면서 성장률의 천장과도 같다.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산출하는 한국은행의 진단도 OECD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은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이 2021 ~2023년 2.1%, 2024~2026년 2.0%, 2025~ 2029년 1.8%로 계속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산업이 발달하고 경제구조가 성숙해지면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 하락
최근 우리 경제 상황을 보면 ‘기승전ㆍ반도체’다. 반도체가 수출입 동향은 물론 국제수지, 증시, 경제성장률 등 거시경제 지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한편에선 고물가와 K자형 양극화, 실업이 심화하는 등 굴곡과 그림자가 짙어진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직전 분기 대비 1.7%로 서프라이즈를 연출했다. 한국은행의 지난 2월 전망치(0.9%)의 두배에 가깝다. 2020년 3분기 이후 5년 반 만의 최고치다.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성장에서 V자형 반등을 이뤄냈다. 깜짝 성장 견인차는 단연 반도체다. 1분기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9% 증가했다. 3월에는 사상 처음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반도체가 주도한 수출은 전분기 대비 5.1% 늘었고, 반도체 설비 등을 포함한 설비투자는 4.8% 증가했다.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 기여도가 1.1%포인트에 이르렀다. 코스피지수가 중동 전쟁의 공포를 누르고 21~23일 사흘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6470대로 올라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분기에만 각각 57조2000억원, 37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초호황을 구가한 데 힘입었다. 그래도 두 대형 반도체주의 증시
영화가 진행되면서 수도원 연쇄살인 사건의 ‘범행동기’는 어이없게도 ‘웃음’이었다는 것이 서서히 밝혀진다. 수도원의 장서관藏書館을 관리하는 호르헤 수도사는 장서관 가장 깊은 곳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희극편)에 독을 발라 봉인해 놓고, 이 문헌을 읽은 자들은 모두 죽게 만든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며 읽으면 독극물에 노출되는 기발한 살인방법이다. 수사망을 좁혀가던 윌리엄은 마침내 호르헤 도서관장이 만들어놓은 미로를 헤치고 「시학」이 봉인돼 있는 장서관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그곳에는 이미 호르헤가 마지막 관문처럼 버티고 있다. 호르헤는 문제의 「시학」 제2권을 죽어도 못 내놓겠다는 듯 품에 부둥켜안고 있다. 여기에서 윌리엄과 호르헤의 웃음을 둘러싼 황당한 논쟁이 벌어진다. 웃음이란 의도적인 ‘비웃음’이나 썰렁개그를 시전하는 부장님 앞에서 가차 없는 리액션으로 날려주는 폭발적인 웃음을 제외한다면 지극히 본능적이고 비이성적인 인간의 반응이다. 윌리엄과 호르헤는 그 비이성적이고 자연발생적인 반응을 놓고 치열하게 ‘이성적’인 논쟁을 벌인다. 이성으로 재단할 수 없는 문제를 이성으로 재단하려 든다. 호르헤는 웃음이라는 것을 금지하고 싶고, 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상승률이 공포스럽다. 3월 수입물가가 16.1% 급등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월(17.8%) 이후 28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1500원을 넘나든 원ㆍ달러 환율이 고스란히 수입물가에 반영됐다. 구체적으로 수입의존도가 높은 원유(88. 5%)ㆍ나프타(46.1%)ㆍ제트유(67.1%) 등이 폭등했다. 특히 원유는 원화 기준 원유 품목 지수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5년 이래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중동 전쟁이 달포 넘게 계속되면서 각종 원자재 가격이 뛰었다. 특히 ‘석유화학의 쌀’인 나프타 등의 중동산 공급이 끊기면서 산업현장에서 문제가 속출했다. 석유화학업체들은 가동률을 낮추거나 공장을 멈췄다. 식품ㆍ화장품 포장재, 일회용 주사기 및 의료제품, 쓰레기 종량제 봉투 등이 품귀 현상을 빚었다. 정유 과정의 부산물인 아스팔트 가격이 급등해 도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중동산 알루미늄, 질소 비료용 요소 공급이 차질을 빚고 가격이 오르자 자동차ㆍ건설자재 생산과 파종기를 맞은 농사도 어려움을 겪었다.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설비가 이란의 공격을 받아 멈춰선 영향으로 국제 가격이 갑절로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가장 참담한 장면은 지적ㆍ신체적 장애를 동반한 민초 살바토레와 몸 파는 이름 없는 소녀, 그리고 수도사 한 명이 ‘이단 재판’에 회부돼 나란히 화형대 틀에 매달려 불타는 장면이다. 윌리엄 수사(숀 코너리 분)가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치고 있던 이 수도원에 느닷없이 교황청에서 파견한 주교와 도미니코(Dominicus) 교단의 이단 심판관 베르나르도 귀도(Bernardo Guyㆍ머레이 에이브럼 분)가 들이닥친다. 도미니코 교단은 이교도들을 개종하기 위해 투철한 교리로 무장한 교단이었는데, 나중에는 이단 심판으로 특화해 버려서 ‘주님(Domini)의 개(Canes)’라고 조롱과 원망의 대상이 됐던 교단이기도 하다. 베르나르도 귀도는 42명을 화형에 처했던 것으로 기록되는 역사상 가장 악명을 떨쳤던 이단 심판관이다. 베르나르도 귀도 정도의 ‘헤비급’ 이단 심판관이 직접 나서는 사건에는 항상 중세교회의 권력투쟁과 교파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제의 수도원은 베네딕토(Benedictus) 교단 소속으로 ‘엄격한 질서와 규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모든 문헌의 보존’을 사명으로 한다. 따라서 중세 최대의 장서관藏書館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7일(현지시간) 가까스로 ‘2주 휴전’에 합의했다. 2월 28일 미국ㆍ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지 38일만이다. 하지만 종전 협상 조건을 놓고 미국과 이란의 해석이 엇갈린다. 최악의 확전은 피했지만, 종전 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재점화할까 우려된다. 미국ㆍ이스라엘-이란 전쟁은 ‘오일 쇼크’를 초래한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4차 중동전쟁에 버금가는 경제ㆍ정치적 충격을 안겼다. 전쟁 전 배럴당 60달러 안팎이었던 국제유가는 100~150달러를 넘나들며 요동쳤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이어 홍해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막히면 150달러도 넘어설 것으로 우려됐다. 세계 경제에 있어 가장 큰 위협 요인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다. 2주 휴전 합의 발표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은 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포격을 가하자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봉쇄하겠다고 맞섰다.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대기 중인 각국 선박이 2190여척이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는 조건으로 공습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유조선 9척을 포함한 한국 선박 26척이 모두 2주 안에 해협을 통과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게다가 이란이 원유 1배럴에 1달러를 받겠다고 밝힌
수도사들의 연쇄적인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문제의 수도원에 도착한 윌리엄 수사修士(숀 코너리 분)는 ‘연쇄 살인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윌리엄이 막 수도원 근처에 다다랐을 때, 피골이 상접하고 남루한 차림의 수많은 주민이 산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한 수도원 아래에 모여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수도원 담장 한편에 뚫어놓은 쓰레기 배출구가 열리고, 음식 쓰레기가 산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거지꼴을 한 주민들은 수도원 음식 쓰레기를 성령이라도 강림하는 것처럼 두 팔 벌려 영접하며 썩은 배추잎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인다. 윌리엄 수사는 혼란스러워진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왜 저렇게 거지가 됐을까. 주민들이 저토록 굶주릴 때 교회는 왜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일까.” 참상의 전모는 곧 밝혀진다. 수도원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아침에 수도원 뜰에 내려간 윌리엄 수사는 주민들이 왜 그토록 굶주려서 수도원 쓰레기나 먹으며 연명하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수도원 앞마당에 기다란 테이블이 놓이고 그 행색만으로 보면 분명 수도원의 구호품을 받으러 온 거지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행색의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 줄지어 서 있다.
영국 작가 T. S. 엘리엇이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묘사했지만, 한국 증시에 있어 잔인한 달은 지난 3월로 기록될 것이다. 2026년 증시 개장과 더불어 코스피는 4300선에서 2월 말 6200선까지 오르며 단기간 수직 상승 신기록을 썼다. 그러나 미국ㆍ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으로 인한 중동전쟁 발발로 코스피는 급등락을 거듭하며 3월 한달 시가총액이 1000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1~2월 두달 새 약 2000포인트 올랐던 코스피가 급락하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급 변동성 장세를 보였다. 중동전쟁 발발 직전 2월 27일 5146조3731억원이었던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3월 31일 4159조858억원으로 987조2873억원 증발했다.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감소다. 미국 증시 침체 여파로 국내 시장도 부진했던 2022년 6월(-278조2908억원),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했던 2018년 10월(-170조2156억원) 감소폭을 압도했다.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가총액 감소분(473조8646억원)이 전체의 48%를 차지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급등하자 원ㆍ달러 환율도 2009년 3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 ‘장미의 이름’. 이 영화의 이탈리아어 원작 제목은 ‘Il Nome de la Rosa(장미의 이름)’이고 영어 제목은 ‘The Name of the Rose(장미의 이름)’이다. 대개 몇 차례 번역을 거치다보면 각 언어권 사정에 맞게 제목이 변주되는 게 다반사인데 장미의 이름만은 초지일관 장미의 이름이다. 그만큼 영화 ‘장미의 이름’은 이 제목이 아니라면 작품을 설명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원작소설이나 영화에 장미는 한 송이도 등장하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란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소설의 제목을 굳이 장미의 이름이라고 붙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작품 의도를 이미 모두 설명하고 있다. ‘장미’는 모든 꽃 중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대표적인 꽃이다. 그렇다보니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장미에 저마다의 의미를 담아 주고받는다. 사랑, 헌신, 명예, 존경, 열정, 순결, 감사, 성모 마리아, 기쁨, 낙원, 아름다움, 순간성. 기쁨과 덧없음이 동시에 있는 상징 등등…. 중세 상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