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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동양(東洋)산책(4) 새 대통령에 바란다 ··· 통령의 약속

우리는 늘 ‘약속’ 속에서 살아간다. 어쩌면 삶 자체가 약속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영국에 “말은 행동보다 쉽고 약속은 실행보다 쉽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약속을 이행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다. 실상 말만하고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쉬이 떠벌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개인적인 약속이야 속상함을 털어버리고 잊어버리면 되지만 삶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약속이라면 어떨까?

 

먼저 ‘약속約束’이란 뜻부터 보자. 어디서 유래됐을까? 한자어이기에 한자의 연원을 보자.

 

한자 자체만 보면 ‘約’은 형성자로 멱糸(mì)과 작勺으로 돼있다. 가는 실로 둘둘 말아 묶는 것이다. 본뜻은 밧줄이라 본다. ‘束’은 회의자로 위囗(weí)와 목木으로 돼있다. 밧줄로 나무를 묶은 모양이다. ‘줄로 묶다’ 뜻이다.

 

그렇다면 한자 ‘約束’은 원래 뜻은 무엇으로 풀이하는가? 실로 둘둘 감아 한 묶음으로 만드는 동작을 ‘約’이라 하고 다 감은 덩어리를 ‘束’이라 본다. 곧 실로 둘둘 감아 만든 다발인 셈이다. 묶여 있는 것이란 뜻에서 제약․규제․통제 등으로 인신․파생되었다. 한어에서는 둘둘 묶다, 속박․제한․통제․단속, 규장․법령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원래 한자 풀이만 보면 실로 꽁꽁 묶는 것처럼 사회나 개인을 제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약속은 언약言約하여 정하는 것, 서로 언약한 내용이라는 뜻(그래도 구속의 의미는 내포하고 있다. 강제성이 있다는 말이다)을 가지고 있다.

 

 

 

 

약속은 사회의 기본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서로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는 것이 순리다. 그렇게 미리 정하여 두거나 그렇게 정한 내용이 ‘約束’이다. 어쩌면 삶을 엮는 벼리가 약속일 터이다.

 

약속을 중히 여긴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말이 ‘계포일낙季布一諾’이다. ‘계포가 승낙한 한마디의 말’로 한번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다.

 

중국 진秦나라 말기 초楚나라에 계포季布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지식할 정도로 성정이 강직했으며 협기俠氣있고 남 돕기를 잘했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툴 때 항우의 부하로 유방을 괴롭혔다. 나중에 유방이 천하의 주인이 되자 계포를 괘씸히 여겨 천금의 현상금을 걸고 잡아들이라 명령했다. 추적의 손길이 뻗치자 스스로 노예가 되어 전전했다. 초나라 사람들은 그런 그를 “황금 백 근을 얻는 것은 계포의 일낙을 얻는 것만 못하다(得黃金百斤,不如得季布一諾)”고 하여 지켜줬다. 나중에 하후영夏侯婴의 추천으로 사면을 받고 한漢나라에 종사한다. 처음에는 낭중郎中이 되었고 혜제惠帝 때에는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다. 『사기史記』「열전列傳」에 보인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일낙천금一諾千金’이란 말이 이 ‘계포의 일낙(季布一諾)’에서 유래하였다. 한 번 승낙한 약속은 천금과 같다는 뜻으로 약속을 중히 여김을 비유한다. 지금은 이것이 ‘확실한 약속’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굳이 ‘남아일언중천금’을 떠올릴 필요까지는 없지만 한번 한 약속은 확실히 지켜야 한다. 아니 최소한 지키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

 

약속이란 서로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약속을 저버린다는 것은 서로의 믿음을 깨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 신뢰가 없는 사회가 어디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만큼 더불어 사는 공간에서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반드시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약속은 상대적이며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약속은 지키되 상황의 변화를 주시해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자莊子·도척盗跖』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인다. “尾生與女子期于梁下,女子不来,水至不去,抱梁柱而死.(미생여여자기우량하,여자불래,수지불거,포량주이사.)” 풀이하면 “미생尾生은 여자와 다리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여자는 오지 않았다. 물이 불었는데도 떠나지 않고 기둥을 붙잡고 죽었다”가 된다. 전해오는 말은 다음과 같다.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미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여자는 약속 시간이 됐지만 오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물이 불어 허리까지 찼는데도 사랑에 푹 빠져 있어 다리를 잡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급물살에 휩쓸려 죽었다는 것이다. 고지식하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이를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 한다.

 

 ‘미생의 약속’, 이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미련한 것이다. 그래서 ‘미련하고 우직하게 지키는 약속’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 쇠붙이나 돌같이 굳게 맹세하여 맺은 약속을 의미하는 ‘금석맹약金石盟約’이나 ‘금석상약金石相約’이라는 말이 있지만 아무리 쇠처럼 돌처럼 굳은 약속이라 하더라도 ‘미생’처럼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하지만 ‘식언食言’해서는 안 된다. 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신뢰를 할 것인가. 신뢰가 없는 공동체나 사회는 존재할 수 없는 법. 그래서 영국에 “즉시 거절하는 것은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키지 못할 약속은 거절해야 옳다.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상대를 속이는 일이다. 속이면서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달성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다. 속인다는 것은 거짓이다.

 

 

반드시(이 말은 꼭 들어 있다) 지키겠다고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것은 거짓부렁이다. 거짓은 삶을 파괴하고 사회를 무너뜨리며 모든 존재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이는 미생의 약속보다도 더 한 파렴치이며 사회의 악惡이다.

 

프랑스에 “사람은 자기를 기다리게 하는 자의 결점을 계산한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맞다. 반드시 지키겠노라고 했으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자마자 내팽개쳐버리면 약속한 자의 오류를 찾고 보복은 아니더라도 결과에 책임을 묻게 된다. 개인이 이럴진대 사회나 국가의 책임을 맡고 있는 자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지도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지도층’이나 이끈다는 뜻을 가진 ‘통령’(최고라는 의미의 大자를 더 붙인다)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런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다. 틀린 약속이라면 모르지만(국민이 어찌 틀린 약속인지 아닌지 판단도 없이 받아들였겠는가? 약속의 내용이 옳기에 받아들인 것이다!) 약속하여 오른 자리기에 지켜야 한다. 거짓으로 자리만 보전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면 더 큰 거짓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니 스스로 초야에 묻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결과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거짓으로 우리를 우롱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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