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첫 4연속 고지에 올랐다.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총선 기간 내내 상대후보와 초박빙 승부를 벌였다. "이제 뿌린 씨를 제대로 된 결실로 거두라"는 준엄한 도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일 시점이다.
"야만의 역사 앞에서 뜨겁고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왔다. 온몸을 던져 싸우고 저항했다. 그 때마다 내 몸은 처절하게 부서졌지만 정신만큼은 더욱 단단하고 옹골지게 변해갔다."
제주 갑 선거구 더민주당 강창일 당선인(64).
그의 자서전<인생과 정치>에서 그는 스스로의 삶을 그렇게 적었다.
그는 박정희 유신 독재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유신 반대와 독재타도'는 그의 청춘을 아로새긴 슬로건이었다.
서울대 출신임에도 '민청학련'이라는 낙인이 찍힌 그는 대학원 진학은 물론 취업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일본 유학길로 올랐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한 아내의 내조도 대단했다. 부부의 피나는 노력으로 그는 배재대 교수가 됐다.
그 과정에서 정치스승도 만났다. 고교(오현고) 선배이자 대학선배인 현경대 의원을 잠시 보좌관으로 모시기도 했다.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그 스승의 배려이기도 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우여골절을 거쳐 2004년 열린우리당이 창당할 무렵 그는 제주도당 위원장으로 추대됐고, 비운(?)인지 행운(?)인지 현경대 의원과 일전을 치렀다. 그렇게 그는 여당 또는 무소속 간판으로 나선 스승과 운명 같은 선거전을 내리 3번이아 치르며 이겼다.
매번 초박빙 승부였고,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은 솔직히 스스로의 노력보단 막판 여당내 경선에 불만을 품고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 후보의 '20억 후보매수설' 폭로로 의외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정치스승인 현경대 전 의원과의 수차례 접전으로 한 켠에선 "정치도의를 저버린 배신"이란 비판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뚜벅뚜벅 그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스승과의 운명 같은 쟁패전이 그가 평생을 가슴에 안았던 제주의 한이자 나라의 한을 메꾸기 위한 중단할 수 없는 그의 의지를 꺾을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주4·3연구소 소장과 이사장, 광주5·18기념재단 이사를 역임한 그의 이력이 말해주는 자존심이다.
이번 선거판 역시 예나 다름 없었다. 새누리당 본선후보가 확정, 막상 맞서보니 만만치 않았다.
고교후배이기도 한 양치석 새누리당 후보는 처음부터 '초박빙' 승부를 예고했다. 게다가 제3당 후보로 나온 국민의 당 장성철 후보마저 그동안 쌓은 야권표를 갈라 놓는 것 같았다.
심기일전 초심으로 돌아갔다. 3선 의원 재임시절의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솔직하게 털어놨다. 4.3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는 언제나 변함 없는 '결기'이기도 하다.
정책공약을 충실히 알리고자 하는 한편 상대방 약점을 치밀하게 파고 들었다. 캠프 내에서 희소식이 들렸다. 새누리당 양 후보가 후보등록 과정에서 재산누락 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치열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선관위는 받아들였다.
선관위가 직접 고발조치 카드를 꺼내 들었고, 선거 당일엔 투표소 벽보로도 그 사실을 게시했다. 하지만 막판까지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제주출신 사상 최초로 9년 연속 국회 입법 및 정책개발 최우수(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4년 연속 국회헌정대상도 수상했다.
정치인이 된 이후로도 그는 '억울함'에 맞서' 독도수호 및 일본 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와 중국의 고구려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과거사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등에서 활동해왔다. 또 2010년에는 그의 억울함(민청학련 사건)의 한도 풀렸다. 37년만에 무죄란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었다.
"공익을 지키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바라보며 걸어가겠다"는 그가 자서전을 통해 밝힌 정치인으로서의 자세와 일치했다.
이제 그는 그 동안 뿌린 씨를 제대로 된 결실로 맺고자 또 다시 길을 나선다.
강창일 당선인은 "격동의 제주를 위해 정치력과 노련함을 겸비한 대표선수로 다시 나섰다"며 "그 동안 국민을 살피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 오직 민심만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제주를 위해 뛰어왔다고 자부한다. 이제 그 힘을 완성, '그 이상의 제주'를 만들겠다. 더 큰 행복, 더 큰 제주'를 여러분과 함께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강 당선인은 "위대한 제주도민의 현명한 선택과 기대에 어긋남 없이 임하겠다. 정말 감사드린다"며 "이는 개인의 영광이 아닌 도민여러분의 결실이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은 제주를 위한 큰일을 해내라는 임무라 생각하고 더욱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소신을 갖고 흔들림 없이 임하겠다"며 "여야를 넘어 제주의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다른 의원들과도 협력하며 나가겠다. 보리가 익을수록 허리를 숙이듯 더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 하지만 불의 앞에서는 당당히 나서는 모습 잃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도민 여러분의 위대한 한 표, 한 표를 마음에 새겨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 당당한 정치인이 되도록 열심히 의정활동을 해 나가겠다"며 "제주도의 발전과 통합 그리고 대한민국의 변혁을 위한 큰 일꾼이 되어 오늘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드리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제이누리=박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