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넌렘(Non-REM)수면과 렘(REM, rapid eye movement)수면이 교대로 나타납니다. 아이가 곤히 자고 있을 때 조용히 그 녀석 눈꺼풀을 들고 눈동자 움직임을 관찰해 보세요. 엽기적인가요? 시기가 맞으면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때가 렘수면이죠.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많은 렘수면을 보이기 때문에 쉽게 관찰할 수가 있죠.
꿈이 곧 렘수면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꿈은 거의 대부분 렘수면(REM sleep) 때 일어납니다. 꿈을 먼저 이야기해 보죠. 프로이트는 꿈을 ‘소망성취’라고 했습니다. 꿈은 소망을 성취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대게 소망은 거창한 게 아닐뿐더러 소망의 성취도 위장된 만족에 불과합니다. 사례 하나를 들어보죠.
“개꿈을 꿨어요. 진짜 개꿈. 어제 밤 꿈에 옆집 개가 졸졸 따라오면서 으르렁 왈왈 자꾸 짖어 대서 화가 나 실컷 발로 차버렸어요. 이놈의 잡종 ㄸ개! 깨갱깨갱. 속이 다 후련하더라고요.” 사실 옆집에는 개가 없다. 여기로 이사 오기 오래 전엔 옆집에 개가 있긴 했지만 족보도 있는 진돗개였고 A씨를 보고 짖어댄 적도 없다. 명견이었다. A씨는 열쇠공이다. 내용은 이렇다.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몇 달 전 문손잡이를 설치해 줬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싼 값에 말이다. 어제 동네에서 그를 만났는데 손잡이가 얼마 쓰지도 않아서 쳐지고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다른 동네 사람들도 옆에서 듣고 있는데. A씨는 화가 났지만 제대로 반박하지도 못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A씨는 그날 밤 꿈은 통해 ‘소망 성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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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소하지요? ‘동네사람들 앞에서 날 망신주고 욕한 그 놈을 실컷 패 주고 싶다.’ 꿈은 이 소망성취를 위해 여러 비유와 위장을 했습니다.
악몽은 어때요?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 공부는 정말 많이 했는데 시험지를 받는 순간 아무리 읽어도 문제가 안 읽히는 꿈. 미치죠. 식은땀 줄줄. 군 제대 하루 앞두고 무슨 일인지 법이 바뀌었다면서 군대생활 다시 해야 한다네? 환장하겠네요. 이런 꿈은 소원성취하곤 관련 없어 보이잖아요?
악몽 꿈은 위험하고 힘들었던 상황을 꿈 특유의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과거 유사한 감정을 느꼈던 사건이 있었겠죠. 무섭고 놀라고 힘들었던 사건이요. 그럼 넘어가지 왜 그걸 재현하는 걸까요? 그 감정을 극복해 보려고요.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의연하게 잘 헤쳐 나가려고요.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모의훈련이란 말입니다.
극단적 상황, 강한 감정일수록 반복해서 훈련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악몽 꿈도 당장의 소망성취는 아니지만 벗어나고 싶다 혹은 극복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프로이트 체면을 세워주려고 제가 너무 억지 쓰나요?
물론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불안 꿈’을 다른 방식으로 역시 소망 성취라고 설명합니다. 더 깊은 무의식에 자리 잡은 소망의 성취지요. 그 소망은 아무리 위장하고 변형한다고 해도 불안합니다. 가령 친부살해 소망 같은 거라면 어떨까요?
앞서 말했다시피 꿈이 곧 렘수면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꿈은 거의 대부분 렘수면 때 일어납니다. 신경생물학이 발달하면서 관심의 중심이 꿈보다는 렘수면으로 이동했습니다. 의도적으로 렘수면만 박탈시키는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뇌파에서 렘수면이 나타나려고 하면 깨우는 거지요. 맨 위에 사진에서 보다시피 다시 잠이 들 때는 넌렘수면부터 시작하거든요.
시간이 지나 다시 렘수면이 나타나(려)면 깨우는 거죠. 이렇게 인위적으로 렘수면을 박탈한 다음 날엔 더 많은 렘수면이 나타나는 걸 관찰했습니다. 이걸 렘반동(REM Rebound) 현상이라고 해요. 우리 몸은 적정한 렘수면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보상하려는 걸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렘수면을 갈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렘수면은 학습과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시험공부하고 잠을 자면 평소보다 렘수면이 증가했습니다. 정리 학습할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반대로 렘수면을 박탈시키면 학습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기억의 통합과 저장에 손상이 왔습니다. 수험생에게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잠은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학습 면에서만 말해본다면 잠에서도 렘수면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포유류 등 동물들도 렘수면이 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동물에서 ‘렘수면 학습’은 주로 절차기억을 향상시키는 것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싸우느냐 도망가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을 자는 동안 뇌가 연습하고 학습하는 거지요. 잠을 자고 있지만 뇌는 이런 연습과 학습을 통해 신경회로를 강화시킵니다.
어린 동물보다 잠을 여러 번 잔, 다시 말해서 렘수면 학습 총기간이 훨씬 많은, 성인 동물들은 생존과 관련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뇌는 충분히 연습했고 신경회로도 강화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네요.
어릴 적 집 가까운 동네에 크고 오래 된 나무가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한 저녁 그 나무 곁을 지나가려면 커다란 귀신이 두 팔을 벌리고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요. 덜컹, 두근두근.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죠. 아, 나무 맞구나. 같이 걷던 할머니께 물었죠. 할머니는 저 나무가 귀신으로 안 보이세요? 늘 귀신으로 보이지. 안 무서워요? 사람이 무서운 거지 귀신은 무서운 게 아니란다. ...보세요. 내 글쓰기 맹점 중 하나가 뭔지 이제 아시겠죠? 마무리에 가서 내내 앞서 한 이야기와 별 관계없는 이야기로 끝맺는다는 겁니다.
이범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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