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남긴 교훈 ... 제주는 과연 안전한가?

  • 등록 2018.01.15 10: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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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제설차와 46명 인력으로 버틴 제주 ... "그저 속수무책 재연"
1년여 전 내건 재난대응시스템은 과연 제대로 작동했나?

 

 

 

역대급 폭설·강풍·한파가 이틀째 제주를 덮쳤던 지난 12일. 제주도민은 침착했다.

 

승용차를 아예 집에 뒀다. 출근길 시민들은 애당초 마음을 비우고 버스로 향하는 발길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고립’을 자초하고 생업을 포기한 사람도 많았다. 덕분에 폭설로 인한 교통사고는 드물었다. 우려했던 ‘출근길 대란’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해마다 반복된 ‘학습효과’에 힘입은 제주도민들의 재난대처 방식이다.

 

기습적인 폭설로 교통사고로 1명이 사망하는 등 수십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던 전날 11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제주도정의 재난대처는 무능했다. 도지사를 중심으로 대책본부를 꾸려 재난대응을 진두지휘했다고 하지만 제대로 제설작업을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책본부의 관심은 제주공항에만 쏠렸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2016년 1월 3일간의 폭설대란에 등장한 8만9000여명의 제주 체류객, 또 공항 노숙사태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여론이 집중된 항공운항 정상화에만 맞춰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반면 정작 도민의 안전과 직결된 제설작업은 거의 방치됐다. 11, 12일 제주 도로 곳곳을 살펴보면 눈이 쌓인 산간도로나 경사가 급한 도로 곳곳에선 널브러진 차량을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길은 여전히 눈길이었고, 기어가듯 엉금엉금 통행하는 차량을 보는 것도 다반사였다. 물론 도심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책본부에 접수되지 않은 수많은 미끄럼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폭설에 동원된 제주도 전체의 제설차량은 23대에 불과했다. 그중 1대는 고장 나 실제 투입된 제설차량은 22대다. 더욱이 투입된 인력은 겨우 46명이다. 이런 장비와 인력으론 이번 폭설같은 상황을 대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실제 제설작업 동원상황도 이를 여실히 증명해줬다.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 평화로 등에 15대(30명)가 배치됐다. 그리고 제주시에는 단 3대(6명)이 배치됐다. 서귀포시엔 5대(10명)가 할당됐다. 제주도 재난시스템의 현주소다.

 

제주도청의 제설작업 방치는 고스란히 도민들의 불편으로 연결됐다. 집 주변의 눈을 치우는 일은 도민들의 몫이 됐다. 서귀포시에 사는 서모씨(42)는 “재난문자는 그렇게 열심히 보내면서 대로변에 쌓인 눈은 수십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며 “제설작업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소리냐”고 따져 물었다.

 

또 “눈이 오면 제주도는 고립무원이 되고 만다”면서 “도청이나 시청은 날씨가 풀릴 때만을 기다리니 우리가 직접 눈을 치울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모씨(58·제주시 영평)는 “이틀 동안 제설차량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위험천만한 도로조차 모래나 염화칼슘을 뿌리는 차량을 볼 수 없는 것은 명백히 제주도청의 직무유기”라며 핏대를 세웠다.

 

제주도 재난안전대책본부가 12일 오후 5시에 집계한 상황은 이렇다. 인명 피해는 사망 1명 포함 79명. 이중 병원 치료 후 귀가조치한 사람은 14명이다. 또 미끄러짐으로 인해 병원에 이송된 이는 65명(20건)이다. 빙판길 차량 고립 등으로 안전조치를 취한 것은 78건으로 집계됐다. 버스는 20여대가 파손됐다.

 

그만큼 도청의 제설작업 부실에 대한 비난여론은 빗발쳤다. 12일 도청과 시청을 향한 도민들의 항의전화는 빗발쳤다.

 

제주도 대책본부는 “너무나 갑작스런 폭설에 당황했다”며 주요 도로 외에는 제설작업을 거의 못했다“고 시인했다. 또 “계속 휘날리는 눈보라에 소수 인력으론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첨단제설차량 10~20대를 상반기중으로 구입해 제설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또 “중산간 지역 내 트랙터 등의 차량을 갖고 있는 농민들과 협의, 지역자율방재단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강원도의 방재시스템도 벤치마킹하겠다”고 덧붙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판은 이래서 나온다. “도민의 세금으로 도로를 파헤치는 공사는 빈번히 하지만 재난장비와 재난안전대책은 꽝(?)이다”는 비난이 지난 11일과 12일 SNS상에서 들끓었다. “서울 등의 대도시는 더 많은 눈이 와 도로가 꽁꽁 얼어붙어도 밤샘작업을 해서라도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다. 제주도청은 아예 모르냐”는 비야냥도 가세했다.

 

2016년 1월 폭설대란이 벌어졌을 무렵 원희룡 지사는 “재난 매뉴얼을 제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또 제주웰컴센터 간부워크숍에서 “이번 공항사태에 대해 나부터 뼈저리게 반성한다. ···(중략)··· 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도지사 사표 내야 한다”고 했다.

 

그해 12월 제주도는 '겨울철 재난대응 총력체계'를 가동시킨다고 밝혔다. 도로제설 특별상황실을 설치, 제설취약 구간 17개 노선 803km에 대한 제설담당책임제를 시행한다고 공식화했다. 한파대책상황실을 도와 양 행정시에 설치, 24시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한다는 것 역시 당시 나온 ‘폭설대비 완전무장’ 방안이었다.

 

 

 

 

고작 1년여가 흐른 지금 그 공언이 얼마나 실현됐는지 의문이 든다.

 

13일 기온은 크게 올랐지만 중산간 도로에 쌓인 눈은 그저 녹기만 기다릴 뿐 여전히 제설작업은커녕 안전점검조차 하질 않았다. 물론 여전히 통행은 불편이다.

 

다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5년 11월 16일에 직접 쓴 글이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바로 폭설대책, 제설대책이 필요한 겨울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시는 오늘 제설상황실 개소식을 열었고 제설대책에 들아갔습니다. 11월 15일에서 내년 3월 15일까지 제설대책 기간 동안 24시간 가동됩니다. 이 기간중 25개 자치구, 6개 도로사업소, 시설공단 등 총 33개 기관은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동시 가동해 폭설에 따른 피해 예방과 신속한 복구 지원에 나섭니다.

 

 

 

폭설에 대비하여 인력 4만585 명, 차량 881대, 제설제 7만1000톤 등을 준비해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고 고갯길 등 취약지점 282개소는 제설담당자를 지정 별도 관리하고 제설 차량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는 자동염수 살포장치를 확대 설치합니다. 친환경 제설제 사용을 15%로 늘리고 대설 특보 발령시 지하철 시내버스 증차 및 연장 운행됩니다.

 

시민 여러분도 내집 앞 눈은 스스로 치워주시기 바랍니다."

 

‘안전불감증 제주’란 오명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치열한 자기혁신으로 원희룡 도정이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라는 마음이다. [제이누리=권무혁 기자]

 

권무혁 기자 km6512@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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