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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제육볶음(13) ··· 그 반대일지 모르는 역설

30여 년 전 첫 아들을 잃고 방황하던 부부가 찾은 곳은 제주도였습니다. 잊고자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다 마주친 곳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제주도는 부부를 그러안아줬습니다. 특히 그 때는 그저 우거진 숲으로만 알았던 곶자왈이 부부를 더욱 보듬어줬습니다. 버려진 땅 같이 잡나무로 울창한 수풀에 들어와 있으면 왠지 포근하고 왠지 안정됐습니다. 큰 호흡이 절로 쉬어지는 곶자왈에서 부부는 아들 잃은 가슴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미국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나이 서른 후반에 다시 시작하는 삶, K씨는 서울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 주선으로 신학대학원을 다니게 됩니다. 목사가 된 K씨는 부부를 감싸준 제주도를 잊지 못하고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옵니다. 돌아와 보니 삶을 포기하고 부부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던 곶자왈은 개발로 다 사라지고 잘 다듬어진 인공의 공원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전과 같지 않지만 그나마 곶자왈이 보전돼 있는 근처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K목사 부부에게 제주도는 고마움과 감사함, 바로 은혜의 땅입니다. 이래서 목회라기보다는 제주도와의 동화이자 보은·실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우리는 받기만 합니다.”

 

화가이기도 한 K 목사는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내와 함께 2년에 한 번씩 교회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합니다. 물론 교회 성도들이 중심이 된 미술작품 전시회이며 음악발표회입니다. 여느 교회와는 사뭇 다릅니다. 목사는 어린이를 위한 교인가족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목사의 아내는 바이올린과 기타를 가르칩니다. 그 수준이 무척 높습니다. 30여 년 전과는 달리 무척 발전된 제주도를 보며 목사는 더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이래서 티벳의 오지 산골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일에도 열심입니다. 화가이기도 한 목사의 작품은 물론 비엔날레에 출품된 그림의 판매수익을 그곳에 기부합니다. 제주도와 더불어 더 큰 세상에 희망을 심는 실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우리를 다시 숨 쉴 수 있게 했고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곶자왈이란, 가지와 가시가 많은 덤불이나 잡목으로 우거진 숲을 의미하는 제주어입니다.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원시림과 구별하며 2차림이라고 부르거나 잡목림으로도 불리나, 제주도의 곶자왈은 바위가 들쭉날쭉하고 함몰된 동굴이 많아 다양한 양치식물들이 바위틈을 가득 메우고 있기에 2차림에도 불구하고 원시림다운 면모를 상당히 유지하고 있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허파이며 한반도의 허파이기도 한 곶자왈은 골프장이나 목장, 박물관 등으로 개발되어 많은 부분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다행이도 곶자왈의 의미와 의의가 부각되며 보호·보전의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제주도민들에 의해 버려진 땅으로 취급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그전 독도가 그렇듯이 제주도의 곶자왈은 제주도에 의해서 버려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일본의 야욕에 독도가 그 소중한 의미를 찾았듯이, 곶자왈 역시 가까이 사는 이들로부터 버림받은 땅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곶자왈은 경제적인 수익만 따져드는 개발에 밀려 눈으로만 보기에 좋은 초원이며 공원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K목사 부부처럼 제주도가 다시 숨 쉬게 했다는 말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 후에 얼마나 들을 수 있을까요? 중국자본을 끌어들이는 등의 경제적 논리만이 합리적 타당성으로 대접 받는 작금의 분위기에서 곶자왈은 제주도민들에 의해 제2의 버림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의 진가를 잘 모르고 사는 듯합니다. 절대 필요한 산소의 무관심과 비교해야 할까요. 제주도가 너무 좋아 육지에서 건너온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이렇게 개발된 제주도라면 굳이 여기 섬까지 와서 살 이유가 없다.”

 

 

떠날 생각을 합니다. 이제 제주도도 살만한 곳이 되어 불과 몇 십 년 전과 같이 먹고 살기 힘든 척박한 땅은 이제 아니지 않습니까?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돌아갔던 제주도 태생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제주도답게 하는 것, 이러자면 보호·보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연이든 풍습이든 재래종교든 보호·보존·보전이야말로 제주도답게 하는 것이며 제주도의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이는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미래투자가 될 것입니다. 경제적 타산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가까운 것에만 현혹돼 조금 먼 미래를 볼 줄 모르는 근시안의 맹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제주도로 이주해 오고자 하는 잠재 제주도민 모두에게도 이러한 의식과 사상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주도민이 될 필수자격요건이라 감히 주장합니다. 제주도에 산다는 것 자체가 최상의 자연의 수혜자로 대접 받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만한 대가를 자연에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이것이 주장의 요지입니다.

 

육지사람에 대한 피해의식이 제주도토착민들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십 수 년 후를 미리보기해 봅니다. 또 이런 비슷한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육지것들이 드나들면서 제주도를 다 망쳐놨어.’

 

다른 사람이 아닌 이주민들이 하게 될 말이 아닐까요? 올레길이 서울의 명동길과 같은 저자거리가 되어버리는 현실을 보면 불행한 우려가 기우만은 아닙니다. 남 탓할 게 아닙니다. 제주도는 제주도민이, 그리고 이주해온 제주도민이 그리고 이주해 올 잠재제주도민이 지켜야 합니다.

 

K목사의 말을 들어봅니다.

 

“여기 제주도에서도 할 일이 많을 텐데 왜 티벳이냐? 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30여 년 전이었다면 저희는 당연히 제주도에서 그 비슷한 일을 해보려 했겠지요. 거의 20여 년 만에 돌아와 보니 옛 제주도와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한 것이지요. 살기 좋게 변한 제주도는 저희 부부에게 이보다 더 못한 곳을 더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티벳이 되었지만, 제주도에서 해야 할 일이 저희도 바뀐 것이지요. 온전하고 건전한 정신을 여기 아이들에게 갖게 하는 것입니다. 잘 살게 된 제주도는 무엇보다도 지금 이것이 필요해졌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문화활동을 통해 이곳 아이들을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음악이고 그림입니다. 이제 제주도는 정신의 발전·변화가 절실한 곳이 되었다고 봅니다. 경제로 발전한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힘없는 저희지만, 작은 교회에서지만 저희가 해야지요. 정치인이나 언론 등에 미루는 일도 죄악이 됩니다. 작든 크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큰 다른 것에 미루는 것도 죄악이니까요. 개발·발전과 함께 건너온 풍요가 제주도다운 정신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은 막고 싶습니다.”

 

목사의 아내가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며 기타를 꺼내옵니다. 교회 마당의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들리는 희망의 노래를 합창합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 새 촛불 하나 이렇게 밝혀 놓으셨나요’

 

“미국서 남편이 신학공부할 때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면 늘 떠오르던 곳이 바로 제주도였습니다. 우리에겐 제주도가 이 노래와 같은 곳이지요. 제주도가 사랑을 우리에게 다시 줬으니까요.”

 


 *. 제육볶음은 '제주와 육지가 함께 어우러져 버무린 세상'을 의미합니다./ 편집자 주

 

오동명은?=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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