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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청진 고향인 100세 할머니의 망향가(望鄕歌) … "친정 가족과 생이별 63년"
1985년부터 이산가족 상봉 신청했지만 번번이 탈락 … "그리워도 못보는 신세"

 

 

“이젠 안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도 희망이 없으니 그냥 생각을 안해요.”

 

한 할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아니 나오던 눈물도 이젠 메말랐다. 그저 넋 놓고 기다린 세월이 한이건만 가족과 생이별한 고난의 세월을 그렇게도 숱하게 보냈건만 이번에도 생이별한 가족을 만날 기회를 놓쳤다.

 

함경북도 청진시가 고향인 황도숙 할머니. 1913년 태어난 그는 올해로 꼭 100세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가족을 못본 '망향살이'가 63년. 1950년 말 1.4후퇴때 제주도로 내려왔다. 그땐 가족과 영영 못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말 그대로 '이산가족 1세대'. 그렇게 가족과 생이별한 지 숱한 세월이 흘렀건만 상봉 가능성은 아직도 없다.

 

5일 제주시 외도동의 한 주택에서 만난 황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을 보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 쳤다. 그립고 그리운 가족이지만, 볼 수 없는 탓에 상처를 덜 받으려 체념하게 된 것.

 

덤덤한 황 할머니의 모습이 아픔으로 전해져 오는 이유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외손녀 이은희(40)씨는 “이제는 연세가 있어서 귀도 안 들리고 말씀도 잘 못하신다”며 “만나고 싶고 그리워도 못 가는 상황”이라며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전했다.

 

할머니는 북에서 남편 박창훈씨와 만나 결혼한 뒤 만주에서 생활했다. 아들, 딸 낳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남편이 제주 외도경찰서로 발령이 나면서 가족들은 서로 따로 지내던 처지였다.

 

그러나 얼마 뒤 남편이 제주로 갔는데 그만  6.25전쟁이 터진 것이다. 전쟁이란 난리 통에 다음해인 1951년 1.4후퇴가 벌어지자 오누이를 품에 안고 무작정 남으로 향했다. 남편이 있는 제주도로 내려왔다. 물론 친정에 소식을 전한다는 건 언감생심.

 

당시 황 할머니에게는 아버지 황윤보씨와 어머니 김재순씨, 다섯살 터울 남동생 충군씨와 10살이 어린 막내 운산씨 등의 가족이 고향에 살고 있었다.

 

남과 북이 갈라지며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길은 아예 사라졌다.

 

황 할머니는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니 머리가 둔해져서 기억이 잘 안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나마 기억하는 것은 남동생 둘 뿐. “큰 동생은 장가도 가고 취직도 했다. 막내 동생은 더 어린데 철도전문학교에 다녀서 서울역에 근무도 한 적이 있다”며 흐린 기억을 끄집어 냈다.

 

 

 

제주도로 내려와 사는 삶도 순탄치 못했다. 전쟁통에 떠밀려 남편을 따라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내려왔지만 정착하고 몇 년 뒤 남편이 세상을 떠나버린 것. 황 할머니 홀로 어린 오누이를 키워야 했다.

 

그나마 북에 있을 때 고등학교 나온 학력을 바탕으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먼 타지에서 여성의 몸으로 홀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가족이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1985년이 돼서야 다시 가족 찾기에 나섰다. 기네스에 기록된 최장시간 방송인 KBS의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처음 열린 해였다.

 

당시 74세였던 황 할머니에게는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였다. 그러나 찾기는커녕 상봉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적십자의 추첨에서 그는 탈락했다.

 

이후에도 수 십 년 동안 여러 차례 상봉을 신청했지만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가족들의 생사도 확인된 적이 없었다.

 

황 할머니의 나이는 이제 백수(白壽)를 넘어 ‘상수(上壽)’. 이제 기대를 품기엔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오는 9월25일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3년만에 열린다. 제주 지역에서는 576명의 생사확인 의뢰자가 나왔다. 이중에 물론 황 할머니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는 또 무너졌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남측 이산가족 생사확인 의뢰자 추첨 중에서 제주지역에서 뽑힌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희망이 무너진 것이다.

 

할머니도 이제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잊은 지 오래다. 그저 ‘그리움’으로 버티는 수 밖에.

 

외손녀 이씨는 “찾으면 좋지만 이산가족이 7만명이나 되는데 가능하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명절이 되면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외할머니와 함께 봤던 기억이 난다. 내색을 안해서 모르겠지만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며 “담담하시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가슴 아프겠느냐”며 할머니의 심경을 전했다.

 

황 할머니는 이제 가족을 찾는 것을 포기하려 한다. 황 할머니는 “이제 포기 상태”라며 “괜히 기대했다가 또 실망하면 어쩌냐”며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한편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90대 이상의 이산가족 1세대는 전국에 6763명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 상봉을 가질 확률이 낮아지면서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 1세대 대부분이 고령자가 많아서 현재 돌아가시거나 건강문제로 상봉이 힘든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분들을 위해 가정위로 방문이나 영상편지를 남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이누리=이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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