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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회] 남쪽은 적루(敵樓), 북쪽은 장대(將臺) ... 이층구조인 톡특한 누대

 

제이각은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천연요새인 남수각 절벽 위에 세운 누각이다. 제주성지의 정자 중 하나인 제이각의 복원에서 보듯, 역사적인 유물복원은 후손으로 하여금 유서 깊은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의 계승을 느끼게 한다.

 

다음은 2015년에 복원된 제이각에 대한 설명문이다.

 

제이각: 1599년(선조 32년) 제주목사 성윤문(成允文)이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읍성 남문 동측 치성 위에 건립하였다.

 

지형적으로 매우 가파르고 험한 낭떠러지의 높은 언덕 위에서 제주읍성을 내려다보면 성안은 물론 주변의 언덕과 하천, 그리고 해안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가 적의 동태를 관찰하며 유사시에 왜적을 무찌르기 위한 장대(將臺)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제이각은 남쪽으로 n자 형을 이루고 있는데 남쪽은 적루(敵樓)이고 북쪽은 장대(將臺)의 구조로 되어 있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아 이층구조로 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누대이다.

 

1555년(명종 10년) 6월 을묘왜변으로 제주읍성이 포위당하는 등 위협을 느끼자, 방어책으로 1565년(명종 20년) 12월 제주목사 곽흘은 제주읍성의 동성(東城)을 동쪽으로 옮겨 축성하였다.

 

임진왜란 직후 1599년(선조 32년) 제주목사 성윤문은 성곽을 높이고 격대(擊臺)와 포루(砲壘)를 설치하였으며 남성(南城)의 제일 높은 곳에 제이각을 세워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제주목도성지도(濟州牧都 城地圖)에는 청풍대(淸風臺)로 기록되어 있어, 1850년 전후의 평화로운 시대에는 관리와 선비들이 경승을 감상하기 위해 즐겨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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