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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서울사람의 제주느낌표(!)
"제주 분들은 갈칫국 실컷 드시나요?"[서울사람의 제주 느낌표(5)] 갈치와 고등어가 '국'과 '회'로 ... 특별한 소프트웨어
박헌정  |  portugal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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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8  08: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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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은 처음에는 갈치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지만 일단 한번 맛을 보면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너무 비싼 음식이 되어 아쉽다.

어제 너무 무리했다. 올레길 12코스를 걸어 도착한 용수포구에서 숙소를 잡았어야 했는데 그대로 지나쳐 오버 페이스 하는 바람에 깜깜해진 후에야 모슬포에 겨우 돌아왔다. 11월의 모슬포 방어를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한라산 소주에 방어를 실컷 먹고 잤더니 아침에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 며칠 동안 걸었던 게 몸에 무리가 왔고 포구의 가을 정취에 빠져 과음했나보다.

겨우 기어나와 포구의 한 식당에 들어가 갈치국을 부탁했다. 해장을 위해 국물이나 두어번 떠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상처에 바르는 순간 치지직~ 하면서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퍼런 배추와 노란 호박을 넣고 칼칼하게 맛을 낸 갈치국 국물이 짜르르하게 두어번 식도를 통과하자 신기하게도 몸이 살아났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내게 제주 음식의 신기원은 갈치국과 고등어회였다. 고기국수, 몸국, 보말국, 옥돔, 오분자기, 빙떡 같은 것은 그저 제주 음식이라 하니 ‘그런가?’ 할 뿐인데 갈치와 고등어에는 뭔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갈치와 고등어가 서울 사람에게 낯선 생선은 아니지만 ‘국’과 ‘회’라는 소프트웨어는 정말 특별하게 다가온다.

갈치는 얕은 맛의 생선이다. 부드러운 육질에서 느껴지는 얕고 간간한 고소함이 갈치맛의 정체 아닐까. 그런데 서울에서 접하는 갈치는 소금 뿌린 채 축 늘어져 있으니 토막 쳐 굽거나 빨갛게 조려야 먹을 수 있는, 비린내와 고소함의 경계에 있는 생선이다. 회를 뜨거나 탕을 끓인다는 게 무척 낯설다. 아니, 그런 걸 물에 풍덩 넣고 끓인다고 생각하면 눈을 찔끔 감게 될지도 모른다.

몇 해 전에 제주에 오셨던 어머니도 갈치국이란 말에 표정이 굳어지셨다. 음식이란 게 그렇다. 선입견이 작동하면 애초부터 차단된다. 청국장, 홍어회, 산낙지, 초두부 같은 것은 마음을 여는 사람에겐 행복한 식문화이고 마음을 닫는 사람에겐 음식을 통한 폭력일 수 있다. 어머니는 나의 권유에 못 이겨 국물을 한번 떠먹어 보시곤 어? 이거 봐라? 그러곤 두 번, 세 번... ‘매료’라는 말이 정확하겠다. 갈치국의 재료와 레시피에 크게 관심을 가지셨다. 어차피 서울에선 해먹기 힘들겠지만.

   
▲ 이렇게 예쁘게 모양 낸 고등어회보다는 접시에 수북하게 쌓여 듬뿍듬뿍 집어먹는 게 훨씬 맛있다. 서울에 올라오면 며칠 동안 눈앞에 아른거린다.

고등어회 역시 서울 사람들을 애태우는 별미다. 고등어가 성질이 급해 잡으면 금세 죽는다던가? 또 회를 떠서 바로 먹지 않으면 비린내가 올라오니 산 채로 조심조심 모셔와야 하는가 보다. 그러니 서울에서는 1인당 10만원짜리 고급 일식집에나 가야 주방장이 온갖 생색 내며 1인당 두 점씩 놓아주는 귀한 몸이다. 그러니 치사해서라도 제주에 가서 실컷 먹고 오겠다는 생각이 들 법 하다.

처음 제주 서부두에서 접시에 가득한 고등어회를 듬뿍 집어 간장 찍어먹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기름지고 고소한 생선이 있던가? “한라산보다 고등어회가 더 좋다!”고 호들갑 떨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솔직한 마음은 그렇다. 골프 때문에 제주에 온다는 사람도 있듯이 내게는 이것이 제주도에 올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 박헌정 수필가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갈치국과 갈치구이는 가격대가 꽤 높다. 모처럼 돈 쓰러 온 관광객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명색이 향토음식인데 과연 제주도 분들도 충분히 드시고 있는 걸까? 관광지에서 너무 비싸게 파는 것 같아 ‘현지인 식당’을 검색해봐도 비슷하게 비싸다. 갈치 자체가 워낙 안 잡혀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없을 만큼 비싸졌다고 하니 안타깝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세네갈이나 모리타니아산 수입 갈치만 보다가 제주 갈치를 보니 전부 수작업으로 깎아낸 명품처럼 크고 아름답다. 그렇게 고급스럽고 비싼 거야 없어서 못 먹을까, 몰라서 못 먹을까? 나는 좀 작고 못생긴 놈으로 만든 것이라도 좋으니 제주 주민들이 점심시간에 우르르 몰려가는 골목식당에 들어가 갈치국과 갈치구이를 실컷 먹어보고 싶다.

박헌정은?
= 서울생.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현대자동차, 코리안리재보험 등에서 2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50세에 명퇴금을 챙겨 조기 은퇴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공식직함은 수필가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직장생활 중 대부분을 차지한 기획, 홍보 등 관리부서 근무경험을 토대로 <입사부터 적응까지(e-book)>를 썼다. 현재 중앙일보에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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