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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어 퓨 굿맨(1)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an)’은 미군의 해외 주둔지 중 하나인 쿠바의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발생한 어느 일병의 ‘의문사’를 다룬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추정되는 1960년대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휴전선과 같은 곳이다. 안보 목적상 밝힐 수 없는 비밀도 많고, 군기도 ‘빡센 곳’이다.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1992년작 ‘어 퓨 굿맨’은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법정 드라마’라 하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법정이 아니라 ‘군대’라는 폐쇄된 사회에서의 법정 이야기라는 점이 특이하다. 영화의 시점(時點)은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거리에 돌아다니는 자동차들의 모습으로 추정하건대 아마도 1960년대쯤 되는 듯하다. 건물이나 복장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매년 ‘부분 변경’이 진행되고 있고, 3년마다 ‘풀체인지’가 이뤄지는 자동차 모양은 비교적 정확히 시대를 추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영화는 미군의 해외 주둔지 중 하나인 쿠바의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발생한 산티아고 일병의 ‘의문사’를 다룬다. 영화의 배경이 1960년대가 맞다면 미국에 의한 쿠바의 피그만(Pig’s Bay) 침공(1961년)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일 것이다. 쿠바의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당시 미국에게는 ‘주적’ 쿠바의 카스트로와 총부리를 맞댄 최전선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휴전선과 같은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안보를 이유로 비밀도 많고, 군대 기강도 센 곳이다. 그 엄중한 곳에서 ‘관심사병’ 하나가 죽었으니 아마도 대강 뜯어 맞춰 끝내고 잊힐 사건이다. 군사재판이라면 조금은 무지막지하리란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영화 속 법정 다툼은 정교하고 치열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살벌한 관타나모 해군기지의 사령관 제섭(Jessup) 대령을 잭 니콜슨이 연기한다. 미남이지만 자존심 강하고 안하무인에 심통 맞은 ‘꼰대’역 전문배우다. 그에 맞서는 ‘뺀질이’ 군법무관 캐피(Kaffee) 중위는 톰 크루즈가 맡았다.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한 캐피 중위는 탱자탱자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자마자 세상으로 나가 돈을 삼태기로 쓸어 담을 궁리만 한다.

 

리즈 시절의 톰 크루즈는 역시 뺀질이 미남에 제격이다. 꼰대 중년 미남과 뺀질이 젊은 미남이 법정에서 제대로 한판 붙는다. 여기에 데미 무어(Demi Moore)가 사명감과 정의감에 불타는 법무관 조앤 소령으로 등장해 캐피 중위를 달래기도 하고 쥐어박기도 하면서 영화에 양념을 뿌린다.

 

원제 그대로 극장에 올린 ‘어 퓨 굿맨’은 아무래도 발음하기 어설프고 적기에도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우리말로 번역할 적당한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소수정예’쯤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그도 썩 적합하진 않다.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은 미국해병대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그들만의 상징과 같은 말이다. 해병대 모집공고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쓰는 카피가 “We are looking for A Few Good Men”이다.

 

여기서 ‘굿맨’이란 구글번역기 그대로 ‘좋은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우리들끼리 똘똘 뭉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특별한 놈’쯤을 의미하는 듯하다. 조폭이 공개적으로 신문에 모집공고를 낸다면 써먹을 만한 카피다. 해병대가 평화봉사단이 아닌 다음에야 ‘착한 사람’을 찾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어 퓨 굿맨에 우리말로 제목을 붙인다면 ‘내부자’이거나 ‘우리가 남이가’쯤이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화면에 배우들의 이름이 하나씩 지나갈 때, 배경화면으로 관타나모 해군기지 의장대의 일사불란한 총기사열 모습이 한동안 흐른다. 그 일사불란한 묘기에 홀려 배우들의 이름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수십명의 의장병들이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렵게 똑같은 복장을 한 채 일렬로 늘어선다.

 

모두가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시선이 허공만을 응시한다. 당연히 ‘인간’의 표정이란 없다. 오직 약속된 순서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총기를 돌린다. 누구라도 어떠한 ‘개인적 이유’로 작은 오차라도 발생하면 그 모든 ‘아름다움’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총기 열병’ 장면은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지탱하는 기본 축을 암시한다. 사령관의 지시를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약속된 행동’만 해야 하는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산티아고 일병이 ‘개인적인 이유’로 그 일사불란함을 깼다. 총기 사열의 생명인 일사불란한 아름다움이 깨진 것이다.

 

사령관인 제섭 대령은 분노하고 장교들도 분노하며, 사병들까지 자신들의 긍지였던 일사불란한 아름다움을 무너뜨린 동료에게 분노한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그들 사이에 ‘남’이 하나의 쭉정이처럼 낀 것이다. 산티아고 일병은 ‘왕따’가 되고 ‘공공의 적’이 된다. 그리고 죽음에 이른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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