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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의 시론담론(時論談論)(3)...무질서가 던져준 감성

 

   
 
나는 아이돌의 음악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가끔 학생들과 교감하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받지만 사실 텔레비전에서 댄스음악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기는커녕 재미있게 듣다가 귀에 잘 들어오는 것이면 음원을 구매하기도 한다. 물론 가을 낙엽을 바라보거나 겨울비가 구슬프게 내리는 분위기면 영락없이 40대 아저씨로 돌아가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마음이 쓸쓸하면 블루스 음악을 듣다가 골치가 아프다 싶으면 10대 시절 즐겨 듣던 록음악을 듣는다. 요즈음의 아이돌 음악 역시 이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니 거부할 이유도 싫어할 이유도 없다.

 

다만 HOT에서 Miss.A에 이르기 까지 K-Pop이라 일컬어지는 아이돌 음악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활약하는 현상을 사회과학자의 시각으로 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오랜 기간 우리 사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근대화된 사회는 대중음악을 '딴따라'의 영역으로 간주하며 천시하였다. 권위나 위엄을 세우는 궁정음악이나 일상과 결합된 노동가요와 달리 20세기의 대중음악은 근대사회가 애써서 만들려고 했던 규칙과 질서에 기반한 규율사회내의 일종의 일탈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상징하기도, 생산을 독려하지 못하는 대중가요는 대체로 규율로 가득 찬 교실과 직장에서 적응할 수 없는 타고난 예술감을 가진 ‘딴따라’들이 그 생산을 담당하였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즉흥적인 감성의 산물이자 버릇없는 무질서의 산물인 대중음악은 대중들의 삶에서 일탈의 영역을 담당하며 그 반대인 일상, 즉 무표정하게 질서 잡힌 노동현장에서 뭉쳐진 근육을 이완하기 위해 소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중가요에 의한 일상과 일탈의 구분 짓기와 역할분담은 나라를 막론하고 근대사회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돌 음악은 대중음악의 역사 속에서 또 다른 일탈이다. 10대 후반에 데뷔하는 어린 가수들은 자신의 자질을 발견한 10대 초반부터 대기업을 방불케 하는 기획사에서 일종의 인턴사원이라 할 수 있는 연습생이 되어 춤, 노래, 외국어, 그리고 각종 매너를 연습한다. 철저한 규율과 질서를 따르며 수십 대 일이 넘는 연습생들 사이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중고생들이 속칭 'SKY대학'을 가는 것 보다 더 많은 노력과 규율을 따라야만 연습생은 비로소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출 수 있게 된다. 결국 대중음악의 인재양성 과정은 다른 모든 분야의 엘리트 양성과정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대중가수는 결국 모범생이 되어야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었다.

 

일탈의 분야로 이해되었던 대중문화의 영역에 질서와 규율은 깊게 생각하면 현대의 비극이다. 쇠락하던 영국 리버풀의 뒷골목에서 비틀즈의 음악은 탄생하였고 파산해버린 미국 인디아나 게리의 빈민가에서 마이클 잭슨의 천재적 영감이 등장하였다. 한국사회의 주변부라 할 수 있는 미8군의 클럽에서 신중현을 비롯한 한국 대중음악의 거장들이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아이러니하게도 주변부 무질서의 영역은 무표정한 ‘질서의 세계’에 감성을 제공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 음악이 여타 산업과 같은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는 사실은 수백 년간 근현대 사회가 인정하였던 새로운 감성의 생산지였던 무질서의 영역을 부정하는 것이다.

 

수년 전 마이클 잭슨이 숨지고 그의 음악세계를 조명한 TV특집을 지켜봤다. 30년 전 선보였던 그의 음악성은 지금도 빛이 났다. 며칠 전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폴 매카트니의 ‘Hey Jude'는 지금도 영국민의 자부심이었지만 개막현장을 지킨 세계의 선수와 관객들도 함께 따라 부른 명곡이었다. K-POP이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처럼 시공을 초월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형화된 질서의 영역에서 찍어대듯 나온 연출은 그런 생명력을 얻기 어렵다. 안타깝다.
 

 

☞서정민은? =부산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마쳤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과에서 6년 간 교수로 생활했다. 현재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자 정치외교학과 학과장으로 재직중이다. 연세대 언론미디어 주간교수도 맡고 있다. 중국정치와 민족주의를 전공,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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