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 사태가 터진 지 나흘 만에 카카오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다. 복구가 늦어진 이유가 데이터와 프로그램 등을 다른 곳에 복제해 두는 ‘이중화’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구체적으로 데이터와 서비스 응용 프로그램의 이중화 조치는 했는데, 개발자들의 작업 및 운영 도구는 이중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화재가 발생해 전원이 차단된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내에 있는 3만2000대 서버를 일일이 수동으로 부팅하느라 복구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이다. 또한 트래픽 폭증에 대비하는 훈련은 했지만, 데이터센터 셧다운 사태는 대비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과 누적 가입자가 3800만명에 이르는 카카오페이를 운영하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위기관리치곤 너무 허술하다. 또한 사태의 원인을 설명하고 사과하는 데 나흘이나 걸린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카카오는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 등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4600억원을 들여 내년 중 경기도 안산에 자체 데이터센터를 완공하고, 시흥에도 2024년 데이터센터를 착공하기로 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 시기가 늦어 기회가 없었음을 아쉬워하는 한탄)이 아닐 수
오늘은 교회에서 전교인 체육대회를 하는 날이다. 100세 어머니가 가실 수 있을까? 아니, 가도 좋을까? 아침부터 이 생각이 갈까와 말까 사이를 방황하게 한다.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이 가을이 생애의 마지막 운동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소풍도 아니고 운동회인데....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죽어도 교회에 가서 죽겠다’고 하신다. 언제나 일요일이 되면 교회로 앞장서시는 분이 아니신가. 반쯤 긍정의 문을 열고서 어머니에게 가을 코트를 입히려는 찰나, 핸드폰이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전한다. 각 구역별로 장소를 정해서 점심을 먹는데, 우리 구역은 돗자리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그러니 집에 있는 비닐 깔판을 들고서 빨리 달려오란다. 구역(성도들의 주소지별로 적정 인원을 그룹지어서 편성된 구역의 책임자)의 장을 하는 아빠의 저음이 오늘은 높은 음자리의 테너 목소리다. ‘와아〜 잘 됐다. 명분이 생겼네!’ 하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매트리스를 찾았다. 혹시나 싶어서 담요도 챙겨 싣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장으로 달린다. 어디 좋은 데 가나 보다 싶은 어머니의 얼굴이 아침햇살을 받고서 한 살 아기처럼 빛난다. 하기야 백 세 할머니는 한 살
영화 속 슈틀러 총통의 전위조직들은 전제적인 통치의 견마와 수족이 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모두 슈틀러와 똑같이 생각하고 슈틀러와 똑같이 말한다. 슈틀러의 복제인간들이다. 집권당 ‘노스파이어’는 슈틀러 총통과 ‘당정 일체’가 돼 돌아간다. 아무도 슈틀러의 시정施政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슈틀러 총통은 도미노가 쓰러지는 패턴을 구상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워놓은 도미노의 첫 패에 해당하는 ‘노스파이어’당의 대표를 쓰러트리면 모든 패가 일사불란하게 같은 방향으로 어김없이 쓰러져야 한다. 모든 게 슈틀러 맘대로, 형식은 단일대오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북한 조선노동당의 구호가 이곳에서 실현되고 있다. 당정이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최고지도자의 구상대로 일사불란하게 넘어진 도미노 패들은 파시즘의 거대한 ‘F’자를 만든다. 영화 주인공 V의 꿈은 일사불란한 슈틀러의 전제정치를 타도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의 꿈을 놀랍게도 도미노 붕괴의 일사불란함으로 설명한다. V가 촘촘히 세워놓은 도미노 패들은 첫번째 도미노 패를 쓰러트리자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것처럼 정해진 길을 따라 무너지면서 ‘A’자를 만들어낸다.
시각장애를 가지면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영화가 있다.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가 그런 영화다. 뉴잉글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찰리 심스(크리스 오도넬)는 집이 가난해서 학교 도서관 사서 일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가기 위해 긴 부활절 연휴 동안 돈을 모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 마침 적절한 보수를 주는 임시 일자리를 찾기는 했는데, 완고한데다가 입이 거친 퇴역 중령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를 맡아주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수류탄 핀을 뽑았는데 터지면서 실명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를 돌보는 조카의 가족 여행을 거부하고 혼자 집에 있겠다고 해서 조카가 며칠 돌봄을 부탁했다. 찰리에게는 첫 만남부터 영 마음에 안 든다.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너를 자세히 보고 싶으니까.” 보이지도 않으면서 슬슬 떠보질 않나, 선생님(Sir)이란 말 싫어하니 중령님이라고 부르라고 겁을 준다. 프랭크는 조카 가족이 떠나자마자 부리나케 짐을 싸서는 가기 싫어하는 찰리를 억지로 데리고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 미리 준비라도 했다는 듯 전광석화로 떠난다. “여성의 머리칼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 또 입술 닿는 기분은 사막을
한국은행이 12일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3%로 올리는 ‘빅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3%대 기준금리는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4, 5, 7, 8월에 이은 다섯 차례 연속 금리인상도 한은 역사상 최초다. 금리인상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상승이 수입물가를 자극해 물가의 추가 상승을 압박하고 외환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하지만 가계와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증대시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기침체를 유발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문제는 이번 빅스텝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금리인상을 주도하는 미국은 11월 초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태세다. 이 경우 현재 3.25%인 미국 기준금리 상단이 4.0%로 높아진다. 한은의 10월 금리인상으로 0.25%포인트로 좁혀진 한미간 금리차가 1%포인트로 벌어진다. 게다가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11월, 12월 두차례 남은 반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월 한번뿐이다. 미국이 11월 자이언트스텝, 12월에 빅스텝을 밟으면 기준금리 상단이
아침마다 기저귀를 갈면서 가만히 살펴보면, 어머니의 다리가 많이 가늘어진 듯 하다. 그래도 장딴지 만큼은 다른 어르신들보다 튼튼하시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죽만 남아서 탄력 없이 헐렁거린다. 엉덩이 부분도 볼기의 두둑한 살이 많이 빠져서 마치 바람 빠진 공처럼 쭈글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 오래 사시느라 너무 수고가 많으셨다. 이 두 다리로 한라산 중산간과 오름을 누비면서 얼마나 많은 고사리를 캐셨던가. 물질하러 바다를 오갈 때는 산지동산을 오르내리고 고닥고닥 돌짝길을 걸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2남7녀를 키워내시느라 동새벽에 일어나서 물항아리 가득 물길어 놓고,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빌레왓으로 내달리실 때는 얼마나 마음이 다급하셨을까. 100년을 사시면서 얼마나 힘겹게 땅을 밟고 버텨내셨으면, 이렇게도 힘살들이 녹아들었을까. 깃털처럼 가볍게 말라버렸을까. 이게 어머니가 지나온 삶의 흔적이구나.... 아, 제주도 여인의 일생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 온다. 코로나19의 격리기간이 닥치기 전에는 교회 여성들이 토요 봉사모임을 만들어서 독거노인을 방문하곤 하였다. 주로 말벗이 되어드리는 게 목적이지만, 혼자 사시는 분의 경우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도미노가 붕괴하는 모습을 동원해 극적인 결말을 극대화한다. 주인공 V는 영국 국회의사당을 폭파할 날로 정한 D-day에 그의 지하 아지트에서 도미노 패들을 쓰러뜨린다. 수만개에 달하는 듯한 도미노 패들이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 같은 장관을 연출하며 쓰러진다. 그 쓰나미가 지나간 자리에 무정부주의(anarchism)를 상징하는 이니셜 ‘A’가 신의 계시처럼 드러난다. 도미노 패를 쓰러뜨린 V는 자신의 승리를 예감하는 동시에 죽음도 예감하고 있다. 지하 아지트 바닥 가득 펼쳐져 완성된 ‘A’를 굽어보는 V가 쓰고 있는 가이 포크스 가면의 ‘미소’가 참으로 신비롭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환희 같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부처님의 미소처럼 평온하기도 하다. 도미노 패들이 일사불란하게 쓰러진 후 통행금지령으로 인적이 끊긴 어두운 런던 밤거리에 V와 똑같이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친 시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내 수십·수백명으로 불어나 런던의 밤거리를 점령한다. V의 아지트에서 도미노 붕괴가 완성된 것처럼, 런던 거리에서 시민들 하나하나가 기꺼이 한개의 도미노 패가 돼서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그림
2022년 늦가을, 인플루엔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2020년, 2021년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할 때 공포에 떠는 전세계 보건의료 책임자들은 '트윈데믹(Twindemic)'이 우려된다며 사람들에게 주의를 강조했다. 즉 쌍둥이라는 Twin에 어려운 의학 용어인 팬데믹(Pandemic)을 합쳐서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가 동시에 유행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두 해 가을과 겨울에 인플루엔자는 유행하지 않았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들이었을까? 인플루엔자 이야기 인플루엔자는 우리 말로 독감(毒感)이라고 부른다. 한자말로 보면 독한 감기라고 보여질 텐데 사실은 전혀 다른 놈들이다. 바이러스들이지만 전혀 다른 집안이다. 감기는 인두염, 후두염 등 상기도 부근에 감염을 일으키면서 증상을 일으키는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원인이다. 지금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감기를 일으키고, 전문가에 따라서는 200여종의 바이러스가 감기를 일으킨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인플루엔자는 같은 증상을 나타내지만 그 바이러스들과 급을 달리 한다. 걸리면 감기라고 하지 않고 인플루엔자, 즉 독감이라고 따로 부르는 이유는 감기가 고양이라면 인플루엔자는 호랑
정부가 늦은 밤 택시를 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1973년부터 50년 동안 유지돼온 개인택시 부제를 해제한다. 파트타임(아르바이트) 택시 기사가 허용된다. 심야시간 택시호출료(3000원→5000원)가 비싸진다. 택시기사 취업을 원하는 사람에겐 먼저 일할 수 있게 하고 나중에 자격증을 따도록 절차를 간소화한다…. 그동안 이용자 부담 증가와 택시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추진하지 못한 방안들을 모아놓은 듯하다. 이런저런 대책을 망라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하고, 맞춤형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 대책의 방향을 기존 업계의 이익보다 택시 승객, 즉 소비자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심야 택시 승차난이 발생한 건 택시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불일치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자 저녁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택시 승객 수요도 늘어났다. 반면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택시기사들은 택배나 배달 서비스 등으로 빠져나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10만2000명이었던 법인택시 기사가 올해 7만4000명으로 감소했다. 임금 수준이 열악한 택시 운행을 포기하
아침이 되면 마당으로 나가서 대문을 지키듯 앉아 계시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대문 밖으로 나가서 집 주변의 길가를 살펴보아도 계시지 않는다. 이럴 수가.... 발끝을 올려서 시야를 더 넓혀 사방을 휘둘러보지만, 안 보인다. 이 정도면 어머니의 걸음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최대치인데.... 덜컥 겁이 났다. 지난번에 어머니를 잃어버렸을 때 119가 가르쳐준 어머니의 가능한 동선을 훑어봐야 할까 싶다. 자동차를 끌고 그 당시 어머니가 쪼그려 앉아 계시던 동쪽으로 향했다. 세상에! 어머니가 한 집 건너 이웃해 있는 펜션 앞에 동그마니 앉아 계시지 않은가. 마치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초췌한 모습이다. “어머니! 무사 여기 왕 이추룩 앉안 이수광? 어머니 잃어부러시카부덴 막 걱정되연, 애가 타게 촞아댕겸수게!” 그러자 어머니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 나왔다. “나, 이제는 죽어지민 조키여! 무사 나만 영 오래 살아점신고 이?” “어머니, 그게 무신 말이우까? 이제 백살이난 막 오래 살아진 거 닮아도, 요양원에 가민 백 다섯 난 할망도 이수다. 대포 부택이 어멍은 백두 살이라도 막 정광해영, 동네 이디저디 돌아댕기멍 재미나게 살지 안 햄수광? 경 허난, 어머니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V는 마침내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던 영국 국회의사당 폭파를 마무리 짓는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파시즘과 전체주의를 홍보하는 국영방송사를 폭파하는 것까지는 수긍할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날려버리는 장면은 뜻밖이다. V는 영국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지하를 통과하는 지하철 열차에 화약을 가득 실어 출발시킨다. 영국 국회의사당이 폭발하는 순간 밤하늘을 덮은 폭죽은 그대로 아름다운 축제의 불꽃놀이가 된다. 런던의 밤거리에 모여 영국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린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얼굴엔 기쁨의 미소가 번진다. ‘빅 벤(Big Ben)’ 시계탑으로 유명한 영국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누가 뭐래도 워싱턴의 미국 국회의사당과 더불어 세계 자유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양대 기념물이다. 마블에 등장하는 최악의 빌런이 아니고서야 인류의 오랜 염원을 담은 숭고한 자유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저토록 증오하고 조롱할 수 있을까. 빌런이 아니라 ‘우리들의 영웅’으로 그려진 V가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을 날려버리고, 시민들은 그 모습에 비로소 안도하고 새 희망의 미소를 짓는 영화 속 장면은 자못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공포와 불안감을 나타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해주는 영화가 있다. 31분짜리 짧은 상영 시간이지만 완성도와 감동이 100% 충전된, 허진호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Two Lights: Relúmĭno, 2017)’다. 제목에서 말하는 두 개의 빛은 감독이 의도한 것도 있겠지만, 관람자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예술 작품의 주제와 감동은 감상하는 자의 것이니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잘 쳤으나 점점 시력을 잃어 ‘저시력장애’를 가지게 된 서인수(박형식)는 현재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청년이다. 그와 달리 장난기 넘치고 밝은 성격의 안수영(한지민)은 냄새로 일하는 조향사(아로마 테라피스트)다. 7살 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해서 현재 한쪽 눈은 아예 안 보이고, 다른 쪽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뿐이다. 수영이 사진동호회에서 함께 출사(사진 찍으러 나가는 일)를 다니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해도 인수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점점 잃어 가는 시력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수는 동호회에서 만난 시각장애인들이 한결같이 밝은 척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안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