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강도 긴축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원ㆍ달러 환율이 1430원을 뚫었다. 1400원대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3년 만이다. 시장에는 1450원선에 이어 1500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원화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 매도에 나서며 주가도 속락하고 있다. 급기야 국제 금융가에서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위험한 국가로 한국과 태국, 필리핀이 지목됐다. 아시아 경제의 양대 축인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의 가치 급락이 리스크 요인으로 꼽혔다. 두 화폐의 가치 하락이 지속되면 아시아에서 자본 이탈이 가속화해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위험한 국가로 지목된 가장 큰 이유는 경상수지 적자 우려다. 무역수지 적자가 4~9월 여섯달 연속 이어져도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해 왔는데 8월부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 소득수지 등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과 외국에 지불한 돈의 차이인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 외환보유액을 감소시키는 쪽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뜩이나 금융시장이 불안한 판에 실물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래 어느날’ 영국은 극악한 ‘전체주의 국가’가 돼 있다고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영화 속 영국 시민들의 일상은 일견 자유롭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시민들은 깨끗하고 질서 잡힌 런던 거리를 자유롭게 왕래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독재자 ‘슈틀러’가 장악한 영국은 평온하다. 노숙자는 없고 쓰레기도 없다. 너절한 광고 전단도 없다.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무장경찰이나 계엄령 치하와 같은 탱크도 보이지 않지만 질서정연하다. 시민들은 카페와 식당에서 자유롭게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눈다. 또한 자유롭게 TV를 시청한다. 히틀러나 스탈린이 그토록 꿈꿨던 ‘전체주의 지상낙원’이 마침내 슈틀러 총통이 지배하는 영국에서 실현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평온해 보이는 거리 곳곳에는 ‘핑거맨(fingerman)’이라고 불리는 사복 비밀경찰들이 섞여 있다. 카페나 식당에도 어느 자리엔가 섞여서 태연하게 식사를 하면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을 터다. 언제든지 불온한 대화를 나누는 시민들을 발견하면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뽑아낼 준비가 돼 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시청하는 TV는 정부가 보여주고
지난 회차에 이어 시각 관련 영화 세 편을 준비했다. 모두 독특한 구성으로 만들어졌으며, 시사하는 바가 있는 영화, 스릴러, 액션 각각 골라보았다. 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곳 2008년 제작되고 산드라 블럭이 주연한 ‘버드 박스(Bird box)’는 시력을 잃는 것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무언가를 보게 되면 자살충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일부러 눈을 가려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이 또한 엄청난 전염력을 지녀서 전 세계가 심각할 지경에 이르고, 말로리(산드라 블록)는 두 아이의 눈을 가린 채 보트를 타고 강물을 따라 도망을 친다. 이틀을 꼬박 극한의 공포와 위험을 겪으며 도착한 곳은 시각장애인 학교. 눈이 안 보이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은 무엇을 볼 염려가 없기 때문에 안전하다. 두 아이와 말로리는 평온을 찾고 시각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된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장애인이 대부분인 사회에서는 주류가 그들이고, 비장애인들은 이방인이 되거나 비주류로 살게 되지만, 반대의 상황에서 비장애인이 안전하고 도움을 받으며 산다는 것..... 버드 박스는 새장을 뜻하는데, 제목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좋다. 어둠 속에서 보게 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가 2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예고한 대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3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다. 한국은행이 8월 기준금리를 올려 2.5% 기준금리 상한을 맞춰놨는데, 한달 만에 한국-미국(3.0~3.25%) 간 금리 격차가 0.75%포인트로 벌어졌다. 그 여파로 22일 원ㆍ달러 환율이 1400원을 뚫었다. 장중 한때 141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미 초강세인 미국 달러화를 찾는 손길은 더 많아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킹(King) 달러’로 불리는 배경이다. 문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계속 줄기차게 올리겠다는 초매파적 방침을 예고했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의 금리인상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는 연말 금리 수준을 4.4%로 예상했다. 올해 2차례(11월, 12월) 남은 FOMC 회의도 자이언트스텝이나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해야 그 수준에 이른다. 게다가 점도표는 내년 말 기대금리도 4.6%로 예상했다. 미 연준의 통화긴축 의지는 확고하다. 경제 위축을 감내하면서라도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것이다. 연준은 올해
지난 겨울, 직장의 임기를 마칠 즈음,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머리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호랑이 장가가는 날에 햇빛 사이로 비가 쏟아지면, 집에 두고 온 우산을 잠깐 잠깐 떠올리는 것처럼. 그런데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는 이성이, 가슴을 스칠 때는 감성이 움직였다. 올해로 103세를 사시는 김형석 교수님께서 ‘백년을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까지’라고 하신 점에 비추어 보면, 실제로 나는 매우 심각하게 이성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지점에 있었다. 그런데 정작은 심도있게 생각하고 다양하게 살펴봐야 할 인생 3모작의 과제를, 마치 말을 타고 달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대응하고 말았으니...., 왜 그랬을까?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가슴으로 결정해 두었던 답이, 현실적으로는 이성적인 판단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그 답을 묵살하고 넘어간 듯 하다. 제 3자적 입장에서 나의 형편과 처지를 바라보면, 좌고우면 할 필요도 없이, ‘바보야, 직장이 우선이야!’가 답이 되어야 할 터다. 하지만 내 가슴은 ‘아니야, 새해가 되면 백세가 되시는 어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무정부주의를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의 공동제작사 이름이 아예 Anarchos Production Inc.이다. ‘anarchos’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다. 무정부 영화사가 작심하고 제작한 무정부주의 영화인 셈이다. 400년 전 영국 국회의사당 폭파를 시도했던 가이 포크스처럼 ‘미래 어느 날’의 V 역시 ‘무정부주의자’다. 인간들이 국가라는 제도를 발명한 이래 그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는 뿌리가 깊다. 국가와 정부라는 건 사실 ‘필요악(必要惡)’이다. 수술의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술대에 오르는 것과 같다. 국가와 정부의 간섭과 자유의 제약을 원하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 물리적 강제력을 맡기고 자신의 재산과 자유의 일부를 신탁(信託)한다. 그 ‘물리적 강제력’이 무서워서 내기 싫은 세금도 내고, 가기 싫은 군대도 가고, 지키기 싫은 법도 지킨다. 국민들은 국가에 신탁한 물리적 강제력을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사용해 주기를 바란다. 그 믿음이 깨지면 국가나 정부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무정부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진
한 일본인이 미국의 도로 한복판에서 파란 신호등이 켜져도 차를 운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차문을 열게 하고 들여다보니 그 사람은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부르짖는다. 겨우 안과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는다. 의사(마크 러팔로)는 혈액검사나 눈 검사를 모두 해봐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신경 이상으로 인한 실인증(Agnosia)이라고 추측할 뿐. 그 사람을 진료한 안과 의사도, 처음 일본인과 접촉한 사람들도 하나둘씩 같은 증상으로 시야가 '우윳빛'으로 하얘지면서 눈이 멀어져간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백색 질병(White diseases)’은 삽시간에 도시 전체를 뒤덮어버리고, 정부는 무기력하게 대응하다 강제 수용을 결정한다. 환자들을 잡아다가 과거 병동으로 쓰던 건물을 수용소로 쓰면서 가두고는 방치해버린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딱히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장 군인들로 하여금 봉쇄를 하고 통제권을 벗어나면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수용된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혼자 다닐 수 없어서 앞 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다녀야만 한다. 이런 모습은 1, 2차 세계대전 당시 포탄 파편이나 화학전 때문에 눈을
추석이 지나자마자 가격표가 바뀌는 물건이 많아졌다. 15일부터 라면과 과자 값이 줄줄이 올랐다. 농심이 라면 값을 평균 11.3% 인상했다. 한 봉지에 900원이던 신라면 편의점 판매가격이 1000원으로 높아졌다. 새우깡값(6.7%)도 올랐다. 9년 동안 오르지 않았던 초코파이값도 12.5% 인상됐다. 편의점에서 한 개 400원이던 것이 450원으로, 12개들이 한 상자 가격은 4800원에서 5400원이 됐다. 비빔면 등 팔도라면값도 10월부터 평균 9.8% 인상이 예고됐다. 가공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배경에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져 밀과 팜유 등 원부자재 가격이 올랐다. 게다가 환율이 뛰자 달러로 지급하는 원자재 대금과 물류비용 부담이 더 커졌다. 수입 곡물 가격이 3분기에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식료품 가격 상승도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원·달러 환율은 9월 14일 1390원을 넘어섰다. 머지않아 1400원은 물론 1450원, 1500원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달러화가 ‘강强달러’ 넘어 ‘킹(King)달러’로 등극한 뒷배에 미국의 강도 높은 통화
100년 만에 가장 크고 둥근 보름달이 뜬다는 추석. 정작 제주도에서는 구름 때문에 달을 보기가 어려웠다 한다. 나 또한 마음으로는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달이건만, 어머니를 보러 온 형제들을 치르느라 그만 하늘을 잊어먹고 말았다. 어쩌면 달에 대한 나의 마음이 진정으로 간절했다기보다는 지치고 고단한 심신이 막연하게 달이 뜬 밤하늘, 그 정겨움과 한가함을 동경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름달을 놓치고 보니,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 휴식도 명절도 아니게 어정쩡하니 되어버렸다. 하지만 추석날 형제들이 해 온 음식으로 아침을 먹으며, 나와 어머니는 ‘매일이 추석이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마주보며 서로에게 환한 웃음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소중해서 어머니를 꼬옥 안아드렸다. 나야 아침 상차리기가 거저먹기라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겠지만, 어머니는 왜 저리도 눈부시게 웃으실까?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추석의 못 다한 선물일까.... 이런 시간이 내년에도 다시 올까.... 이 시간, 어머니는 대문 앞에 앉아서 졸고 계신다. 어쩌면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 앉았으니, 파도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리라. 오늘부터 어머니는 요양원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그린다. 그런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주요국은 영국뿐이다. 영화는 핵보유국 중에서 영국만 살아남은 이유를 영국이 미리 핵폐기를 선언하고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라고 설정한다. 핵전쟁 후 혼란의 시대. 영국의 실권을 잡은 ‘슈틀러’는 생존과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극단적인 파시스트 정책을 펼친다. ‘슈틀러 정권’은 모든 인권과 자유를 유보하고 개인을 국가에 종속한다. 국가가 독점한 언론 매체는 국가의 선전기구로 전락한 채 끊임없이 단결과 복종을 주입한다. 영화는 슈틀러 정권을 최악의 독재정권으로 묘사하지만 민망할 정도로 ‘저렴’하거나 ‘저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왜일까. 슈틀러라는 최악의 독재자는 자신과 정권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단결을 부르짖는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적어도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해야 한다’는 일관된 신념과 원칙이 있다. 또한 슈틀러 총통과 그가 이끄는 ‘노스파이어’당은 적어도 핵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소련에 암담한 현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 사태를 막지 못한 영국의 전임 집권자나 집권세력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다는 것만 강조한다. 자신들이 저지
‘타투(tattoo)’는 인류의 아주 오래된 문화이다. 과거에는 싸움에서 상대방을 겁주려고 새겨놓은 것부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징표로 하는 등 다소 제한해서 이용했다. 조직폭력배나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많이 인식하기 때문에 ‘문신(文身)’이라는 말 보다는 ‘타투'로 쓰자는 주장도 있다. 요즘은 개성의 표현으로 누구나 할 정도로 대중화되어서 연인끼리 짝으로 하기도 하고, 팔뚝이나 배, 등에 귀엽게 표현하기도 한다. 타투라는 말은 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에서 쓰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영어권에서 사용하고 있다. 의학에서 문제시 되는 것은 타투를 할 때 오염이나 감염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지울 때 몸에 상처를 낼 수 있고, 그것 또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여러 나라에서 의료법 등으로 제약을 가했고, 사람들은 몰래 타투를 새기기도 하였다. 타투는 과연 의료 행위일까? 한국에서 타투 관련 활동은 의사 면허 소지자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의사들 중 과연 몇 명이 ‘타투잉(tattooing)’을 하고 있을까? 위생이나 감염의 문제는 의료법이 아닌 관련법으로도 얼마든지 주의할 수 있는데..... 얼마 전 일본에서 타투
‘미드나잇 선(Midnight Sun, 2017)’은 어렸을 때부터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케이티(벨라 손)라는 소녀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를 담았다. 영어 제목인 ‘한밤중의 태양’은 무슨 의미일까? 어두운 밤에만 활동해야 하는 케이티에게 태양과 같은 존재라는 것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느낌으로 되새겨보면 좋겠다. 케이티의 아버지 잭 프라이스(롭 리글)는 딸이 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 낮에는 밖으로 나오면 안 되고, 집은 자외선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특수 유리창으로 둘러쌌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1인 2역으로 딸 케이티를 보살펴야 한다. 낮에 밖으로 못 나가는 케이티의 유일한 낙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만드는 일과 창밖을 내다보면서 좋아하는 찰리 리드(패트릭 슈왈제네거)라는 학생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9학년이 될 때까지,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다니는 찰리를 보는 것은 케이티의 행복이었다. 그러한 케이티에게 친구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그가 심한 병을 앓아서 낮에 못 논다고 하니까 자기도 햇볕에 오래 못 있으니 밤에 놀러 오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