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를 둘러싼 제반 상황을 보면 제주는 바람 앞의 등잔불 신세다. 앞으로 우리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성장은 둔화되고 공동체적 유대감은 내분과 갈등의 덫에 갇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해지고 있다.
제주 도민은 이러한 암울하고 혼란스런 상황에서 제주의 명운을 가르는 중차대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이들의 염치없는 탐욕이 저지르는 말잔치와 정치 놀음으로 제주 사회가 온통 정치꾼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포퓰리즘을 보는 듯하다.
조만간 화려한 포장지로 치장되었지만 내용이 건성건성 대충인 무수한 ‘사기성 날림 공약’들이 선거판을 휘젓고 다닐 것이다. 포퓰리즘에 편승한 일탈적 선심 공약들이다. 도민 혈세로 선물 돌리겠다는 얌체성 약속이나 다름없다. 지방 선거에서의 무지갯빛 사기성 날림 공약은 필연적으로 해당 자치단체에 치명상을 안기게 된다. 용인 경전철, 인천 월미 관광철도, 태백 오투리조트,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등 자치단체 부실사업의 대표적 사례는 대부분 선거 과정에서 돌출한 인기영합 및 치적쌓기용 엉터리 공약 때문에 생긴 것이다.
특히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여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장밋빛 약속을 내걸며 수조원대 사업을 벌였다가 지역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난개발과 부동산 투기로 쑥대밭이 된 경우도 많다. 한쪽에선 대형 개발사업 추진 공약이, 다른 쪽에선 부숴버리자는 공약이 동시에 나온다. 제주 도정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출범 초기부터 공약 불이행 시비로 시끄러웠다. 표심 잡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재정소요 규모 등 공약 점검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에 있어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소요 및 조달 방안을 명확히 밝힐 의무가 없기 때문에 공약 부풀리기 경쟁은 더욱 심화된다. 빚더미는 다음 세대에 넘겨지고 그 빚을 쓴 현 세대의 귀엔 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낙선 후보는 공약 실천의무가 자동적으로 소멸되기 때문에 공약 불이행 시비는 당선자에게로 국한되며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간다. 선거 때 마다 사기성 날림 공약이 남발되며 고질화되는 이유이다.
우근민 공약이행률이 51%와 98% 어떤 게 맞나요?
얼마 전 도의회 정례회에서 우 지사를 상대로 한 공약이행 관련 질의 내용이다. 질의 의원은 “우 지사 공약이행률이 도정이 도의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51%, 도정의 보도 자료에는 98%로 각각 나왔는데 어떻게 이틀 만에 이렇게 차이가 나느냐”며 우 지사의 공약이행률이 턱없이 부풀려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도정이 인용했다는 단체가 발표한 자료 어디에도 우 지사의 공약이행실적이 98.5%라고 명시한 수치가 없다고 반박하며 도민을 현혹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조작한 실적 부풀리기라고 꼬집었다. 우 도정 출범 이후 매듭 하나 제대로 푼 게 없고 오히려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기에 부풀리기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터이다.
2010년 7월에 출범한 임기 4년의 민선 5기 우 지사의 임기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레임덕과 함께 도정의 낙제 성적표에 성난 도민의 회초리를 온 몸으로 막아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우 지사가 제시한 10대 전략, 50개 과제 중에서 상당수가 경제관련 공약이다. 당초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규모가 축소 또는 폐지된 경우가 허다하다. 불가능해 보였던 것도 널브러져 있다. 핵심 경제공약들이 면밀한 타당성 검토나 실효성 분석 없이 표만을 의식해 급조되는 바람에 실제 추진 과정에서 적잖은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예상된 귀결이다.
얼마 전 임기 절반을 넘긴 민선 5기 전국 시·도지사들의 공약 이행 여부를 분석․평가한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었었다. 우 지사의 공약이행률은 전국 16개 시·도지사 중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일자리 2만개 창출과 해외수출 1조원 등 일부 핵심공약의 경우 억지로 숫자 맞추기를 하면서 실적 부풀리기에 나서 웃음거리가 되는 사례도 있다. 숫자에 대한 의욕만 앞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약을 내세워 도민을 기만한 셈이다. 결국 우 지사는 가장 낮은 C등급으로 평가됐다. ‘도민이 행복한 국제자유도시’의 슬로건을 무색케 하였다.
이처럼 우 지사의 일탈적 기행은 선거공약에서 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도난 기업의 어음처럼 나뒹굴고 있는 자신의 선거공약을 보고 있는 도민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우 지사는 제대로 헤아리고나 있을까.
(왜 일탈적 ․ 퇴행적 현상이 고질화 되고 있을까?
유권자에 대한 이러한 모독 행위가 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독점적․폐쇄적 '수퍼갑질'을 즐기는 제주 정치인들의 유권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정치적 정향과 이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밀실․탁상 행정에 길들여진 이들은 공약의 공유 등 도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기본적 과정을 무시함으로써 공약을 무용지물로 전락시켜 버리고 있는 것이다. 패거리끼리 닫힌 책상머리에 앉아서 짜내는 얄팍한 공약은 가치가 있을 수 없다. 이런 치명적인 결함은 성공적인 도정을 위한 연착륙을 어렵게 하여 도정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한다.
얼마 전 정부는 임대 소득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침을 일주일 만에 수정, 영세한 집주인에게 2년간 과세를 유예하기로 했다.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과세 정책을 시장 생리를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시장과 교감 없이 책상머리에서만 만들다가 시장의 역풍을 맞고 낭패를 본 것이다. 작년 월급생활자의 소득세가 늘어나는 구간을 늘렸다가 거센 반발에 직면해 사흘 만에 번복한 세제개편안 파동의 판박이다. 정부가 하는 말을 국민이 믿고 따를 때 경제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현 도정에는 애당초 도민의 생활에 신명과 감동을 확산시킬 수 있는 가슴 설레는 비전과 공약이 없었다. 게다가 도민을 설득하고 협력적 동반자로 이끄는 데도 소홀했다. 이로 인해 제주 사회가 주요 사업마다 갈등의 늪에 빠져 방향타를 잃고 헤매는 것이다. 제주를 둘러싼 엄중한 상황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성찰을 담고 범도민적 역량결집과 경제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미래비전과 공약이 시급히 재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4년은 지사 선거를 계기로 제주 사회의 새로운 미래상을 그려야 하는 중차대한 해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체제, 새로운 비전과 공약에 대한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도민들의 참여와 공감 속에서 실질적이고 살아있는 대안을 담은 제주의 미래 비전을 그려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제주 도민들은 스스로의 역량으로 잠재된 제주의 미래가치를 극대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 비전의 올바른 결정의 바탕에는 지도자의 창의적인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의 창의적인 판단은 지속적인 소통과 끊임없는 통찰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격변적 중차대한 시기에 일탈적 기행을 일삼는 현 도정에 제주의 비전을 기대하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또 다시 맡겨 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공약은 도민과 약속의 교환,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박 대통령이 불통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근간에는 박 대통령의 약속 이미지가 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5.2%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소통(43.6%)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민주 사회에서 선거 공약은 약속의 교환을 의미하며 신뢰의 최소 요건을 이룬다. 상황과 유불리와 편의주의에 따라 말 바꾸기를 거듭하며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다면 그 사회는 불신의 늪으로 빠져 퇴행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우 지사는 지난 선거에서 마지막 출마라면서 읍소하며 표를 구걸해 당선됐다. 최근 무슨 생각에서인지 재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공약 실천이 불가능한 상황을 알고도 약속했다면 이는 허위 또는 사기 계약이 된다. 도민의 기억을 우습게 아는 행위다. 자신도 정상배 정치꾼으로의 전락과 함께 끝없는 고통과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허황된 기만의 말로 도민을 기망하려는 행태를 멈추어야 한다. 밀양 송전탑과 강정 사태를 보라, 불신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제주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창조적 파괴가 절실하다
이처럼 제주 지도자의 일탈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일탈을 넘나드는 지도자의 언어는 패거리 울타리 안을 맴돌 뿐 도민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도정과 도민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역 사회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제주 상황에 대한 낙관은 갈수록 줄어들며 도정에 대한 기대 심리도 낮아지고 있다. 도정 정책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요즘 제주 지역에서 치러진 일련의 선거과정을 보면 포퓰리즘 공약이 흘러넘친다. 함량 미달 패거리들의 유유상종 관행이 한몫을 하며 의기투합한 결과다. 그만큼 실효성과 예산이 검증된 공약보다는 표를 의식해 급조되거나 부풀려진 측면이 많을 수밖에 없다. 도민을 호도하는 포퓰리즘 공약들은 일단 후보의 당선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환상에 빠졌던 제주 사회는 선거 이후 각종 불화와 갈등이 확산되면서 상당 기간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금과 같이 포퓰리즘 공약이 유권자와 선거를 포획해 제주 사회를 갈등과 혼란, 재정위기로 끌고 가는 퇴행적 관행을 반복하게 둬서는 안 된다. 허구성 공약으로 공약이행률 전국 꼴등이란 수모를 받고 있는 지금의 제주를 보면 더욱 그렇다. 공약 검증을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면 제주의 공약은 어떻게 그리고 현실화시킬 것인가
첫째, 지금까지의 지사 후보들의 공약들을 보면 대부분 단기적인 현안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집중돼 있다. 단기적 문제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특별자치도를 4년간 이끌 지사 후보들이라면 당선된 후 4년 간 변화시킬 제주 사회 위상에 대한 중장기적인 비전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약은 도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약을 잘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공약은 도민이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생생하고 현실감이 있어야 한다. 일방적인 공약 제시가 아니라 도민과의 협의와 참여를 통해 공동체 현실에 부합하는 공약 및 실천전략을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 도민 사회의 참여와 몰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고 합의된 절차에 따라 실천이 이뤄지고 성공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셋째, 무지갯빛 날림공약을 차단해야 한다. 향후 지사 후보가 공약을 내놓을 경우 그저 화려하고 솔깃한 사탕발림 청사진만 두루뭉술하게 공개할 게 아니라 자금조달 방법 등 구체적인 공약 실천 방안이 담긴 견적서를 먼저 내놓도록 해야 한다. 그걸 토대로 학계, 사회단체 등 중립적인 전문․검증기구에서 공약 평가 및 이행 점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넷째, 최근 날림 공약이 지방 재정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지자체 파산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2012년 전국 244개 지자체 빚은 27조원이다. 여기에 지방 공기업 부채까지 합치면 100조원이나 된다. 1년 예산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 되는 곳도 10곳이 넘는다. 재정 자립도가 50% 미만인 곳도 216개다. 중앙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대주지 않으면 지자체 상당수가 당장 부도날 판이다.
파산제도와 함께 주민들이 단체장의 책임을 직접 물을 수 있도록 주민소환제 등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후보들이 주민 세금을 허투루 쓰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됨을 인식하여 보다 신중한 현장 접근과 재정에 대한 책임의식 제고를 통해 감당하지 못할 선거 공약은 내놓지 않을 것이다.
창조경제·일자리창출·경제민주화·한국형 복지 등 온갖 좋은 정책 목표는 다 담고 있는 근혜노믹스는 힘이 분산돼, 양적완화와 엔 약세를 집중적으로 밀어 붙이는 아베노믹스에 밀리는 형국이다. 날림 공약을 마구 만들어내는 제주 정치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날림 선심성 공약의 남발 등 제주 지도자들의 일탈의 끝이 어디일지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끝을 내야 한다. 지방선거의 개혁은 유권자의 자각에 달렸다. 금년 지사 선거에서 유권자인 도민이 철저한 검증을 통해 엉터리 후보와 가짜 공약을 가려내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제주 공동체에 제시할 미래비전과 공약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의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의 비전이나 가치관을 묻지 않고 표를 주는 것은 신성한 주권과 미래의 포기나 다름없다. 일탈을 일삼는 엉터리 정치인들에게 당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지 말자.
☞고운호는?
=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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