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물든 5월 <제이누리>의 새 필진이 또 등장합니다. 국내·외 경제와 제주경제 현실에 밝은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주인공입니다.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날카로운 분석과 혜안을 선보였던 인물입니다. 한때 도정과 힘을 합쳐 제주경제포럼 공동대표를 맡으며 제주경제의 혁신과 부흥을 외쳤던 그는 이제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 제주’에 대한 진단과 미래비전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과제와 비전을 화두로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과 타개책을 내놓습니다. 많은 성원바랍니다. / 편집자 주 |
제주 도정신문 ․ 홈페이지의 실패는 집단사고 때문
♯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세계 최고 두뇌집단인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에선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금융기관의 문제는 시장 자율기능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집단사고(集團思考)에 빠져 있었다. 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그들은 금융위기를 예측하는 데 철저히 무력했다. IMF는 스스로의 무능에 대한 뼈저린 반성문에서 “조직 내의 부서간 장벽과 부서 이기주의에 의한 소통의 부재(不在)가 눈을 가렸다”고 지적했다.
♯ 2010년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도요타가 최악의 리콜사태를 겪었을 때 도요타 이사회에는 총 29명의 이사가 있었다. 모두 수십년 동안 도요타 안에서 승진해 그 자리에 앉은 일본인들이었다. 외국인·여성·사외(社外) 이사는 없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2009년부터 터져 나온 가속페달 결함문제에 대해 도요타가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 이사회에 다양성이 없었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 존 F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직에 오른 지 3개월도 안된 1961년 4월,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고 쿠바침공(‘피그스만 침공’)을 감행했다. 미국정부는 쿠바 망명객 1400명을 훈련시켜 침투시켰는데 사흘 만에 100여명이 죽고 1200명이 생포되는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케네디 대통령과 국방장관, 법무장관, 안보보좌관 등 하버드대학 출신들의 집단적 동질성이 내린 침공결정에 그 누구도 반대입장을 밝힐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국제사회 조롱거리로 만든 이 무모한 침공작전은 집단사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 1986년 미국의 챌린저 우주왕복선이 발사 직후 공중 폭발해 7명이 희생되었다. 경험이 풍부한 협력업체의 기술자가 부품결함 가능성을 지적하며 발사 연기를 수차례 요청했지만 자만과 우월감으로 뭉쳐진 미 항공우주국(NASA) 고위 관리자들이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발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 도정의 수장이 지적했듯이 제주 도정과 도민과의 소통의 주요 수단인 도 홈페이지와 도정 신문이 도민은 물론 공무원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을 받은 지 오래됐다.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진 담당자들이 자신들이 자랑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만 일방적으로 실어 내보냄으로써 수요자와의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집단사고는 동종교배 인사가 판치는 관료사회에서 번성한다
위 사례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집단 사고의 오류다.
집단사고(Group Thinking)란 용어는 1972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Irving Janis)가 제시하였다. 아무리 우수한 집단이라도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충분한 소통이 이뤄질 수 없거나, 조직원들의 사회적 배경과 관념의 동질성이 높아 응집력이 커지고 여기에 강력한 리더가 주도하면 자칫 엉뚱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응집력이 높은 동질적 집단에서는 ‘우린 잘못된 결정을 할 리 없다’는 맹신을 바탕으로 문제를 특정한 사고의 틀 안에서만 바라보고,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것을 억제하는 경향이 쉽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자들이 어떤 저의를 갖고 의도적으로 공격만 할 뿐"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관료주의는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의 최적 합리성만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국가나 조직 전체를 위한 종합적인 판단과 포괄적 문제 해결에는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연유로 관료집단에선 어느 집단보다 집단사고가 쉽게 작동하게 되며, 여기에 보다 폐쇄적인 문화와 동종교배(同種交配)적 인사가 접목이 되면 집단사고의 오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폐쇄적이며 진영논리가 강한 제주사회에는 심각한 위험
제주 사회는 세계화 개방시대의 도래로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개방의 물결과 더불어 가혹한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도서지역의 폐쇄적 특성에서 형성된 특유의 강한 배타적 자주 문화는 모든 현안을 배타적이고 근시안적 자기안위라는 가치관 속에 가두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동종교배 인사의 심화와 진영논리에 함몰된 도민의식은 집단사고의 오류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혈통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동종교배는 동일한 형태의 대립 유전자들을 발생케 하여 질적 저하와 함께 개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고, 나르시시즘의 자폐적 성향 때문에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미흡하다. 또한 이질적인 것들을 배척하는 동종끼리의 결합은 타자(他者)와의 공존을 거부하고 ‘닫힌 사회’로 치닫기 일쑤다. 동종교배는 거듭될 수록 열성유전자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나 이질적 요소들이 서로 부딪치며 갈등과 융합의 어려운 적응과정을 거치게 되는 이종교배(異種交配)는 상생(相生)의 지혜를 터득해간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에는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세계를 떠돌면서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명과 부대끼면서 일어선 전형적인 이종교배 민족이라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2009년 명문 옥스퍼드대는 대학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학문적 이종교배를 통한 융합이 필수적이라 보고 라이벌 케임브리지대 출신인 ‘앤드루 해밀턴’을 총장에 임명하여 900년 넘게 이어 온 전통을 깼다.
집단사고의 오류가 제주사회에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첫째, 제주 공직사회의 기회주의와 기득권 유지로 점철된 관료적 보수문화를 더욱 심화시켜 지역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역량은 모자라는데 충성심이 넘치는 선거공신들의 왜곡된 집단사고가 공직사회는 물론 제주사회 전체를 난관에 빠져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관(官) 우월주의에 입각한 공기업 주도 경제체제의 부활을 공공연하게 꾀함으로써 민간부문의 입지가 위축되고 관료중심의 사회가 심화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공기업의 영역은 기본적으로 경쟁의 무풍지대로서 방만 경영과 업무 효율성 저하가 필연적으로 초래되기 때문에 창의와 혁신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그래서 공공부문이 커질수록 민간부문은 위축되고 경제는 피폐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민간부문의 창의성․역동성․다양성이 절실한 상황에서 지금 같은 구조로 선진 제주사회를 구현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과거 저성장의 어려움을 겪던 영국, 브라질, 칠레, 페루는 민영화에서 활로를 찾았다. 이같은 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집단사고는 제주의 기득 정치권으로 하여금 수십 년간 자신만의 아성을 ‘궨당’의 이름으로 구축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막는 폐쇄적이고 패권적인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만을 고수한다.
이는 제주사회의 가장 역동적인 중심세대가 진정한 경쟁의 틀 속으로 진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제주사회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중심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는 사회는 죽어가는 사회다. 집단사고의 오류를 차단하여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는 진정한 경쟁사회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제주사회의 지속 발전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셋째, 집단사고는 제주사회를 배타적이고 근시안적 가치관 속에 깊게 가두어 버리고 있다. 이는 동질성의 집단에 이질성을 야기시켜 지역갈등과 양극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제주발전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제도 개선보다 도민 정신개혁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2000년대 초반 중국 광둥과 제주도는 동시에 개방경쟁을 벌였다.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로의 변모를, 광둥은 중국경제 개방의 상징지역으로의 성장을 각각 목표로 하고 있었다. 결과는 광둥이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로서 중국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반면, 제주도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광둥과는 달리 제주는 토착민들의 텃세와 투정, 반외세 및 반개방 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창조사회 구현, 다양성 확보로 집단사고 오류 방지해야
향후 제주가 선진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제가 있다. 사회 구석구석에 서식하고 있는 집단사고의 오류에서 탈피하여 창의성이 숨쉬는 창조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사회의 핵심은 창조, 융합화, 개방화 그리고 다양화다. 이는 기존의 틀을 무너뜨리는 '창조적 파괴'를 필요로 한다. 창조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개방된 조직과 사회에서 꽃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제주사회의 강한 배타적 자주문화는 이주(移住) 인재는 물론 귀향(歸鄕) 인재들까지도 배척케 함으로써 창조사회의 구현을 가로막고 있다.
이제 집단사고의 오류 차단과 창의성 촉진을 위한 다양성은 제주사회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제주사회는 건전한 생태계의 구축을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위험에 대비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개척해야만 한다.
2011년 포천(Fortune) 선정 미국 500대 기업 중 63%가 최고다양성책임자(CDO, Chief Diversity Officer)를 두고 있을 정도로 조직경영에 다양성이 중요시되고 있다. 다문화 시대인 요즘 세상엔 온갖 인재들이 섞여서 일한다. 세대와 성별이 다르고, 인종과 국가가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재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게 바로 최고다양성 책임자의 역할이다.
국내 기업에서도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다양성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그동안 이공계 전공자 위주로 채용하던 ‘소프트웨어’ 직군에 인문학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융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인문학을 전공한 대학 졸업자들을 채용하는 실험을 통해 인문학과 공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제주사회가 냉철히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의 두 사례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집단사고의 오류를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창조의 성공 방정식을 추출해낸 경우다.
♯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수경재배로 연간 1000t의 파프리카를 대량생산하고 있다. 일본 소비량의 4%나 되는 물량이다. 철강업체 JFE스틸은 양상추를, 경비회사 세콤은 허브를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경작 포기자의 증가와 개방화에 따른 농업 피해를 자본력과 기동력으로 농업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농업 업그레이드의 기회로 삼아보자는 구상이다.
그러나 우리 농민단체들은 토마토를 수출산업화 하겠다는 동부그룹의 유리온실 사업을 불매운동으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개방화 과정에서 20년간 농업피해보상에 200조원 넘게 들어갔지만 우리 농업의 경쟁력은 나아진 것이 없다. 중국 등과의 FTA 체결은 우리 농가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젠 농업이 농민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집단사고에서 벗어나 기업과의 융합 등을 통해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 얼마 전 경기 파주시 공무원들이 '반성 백서'를 출간하고, 그동안 업무 중에 실수했거나 잘못한 사업들을 낱낱이 고백했다. 해당 공무원들의 실명과 전화번호까지 공개했다.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겠다는 것이다. '철밥통' 공무원들이 공개적으로 이런 '반성문'을 펴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백서 출간을 주도한 이인재 파주시장은 "자기 자랑만 담긴 시정(市政) 백서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반성 백서엔 공무원들의 실수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쓴소리도 함께 실었다. 이인재 시장은 “징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설득하느라 백서를 만드는 데 열 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집단사고에 의한 행정의 실패에서 성공방정식을 읽어내는 파주시 공무원들의 지혜와 시장의 리더십에서 제주 도정의 지향점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제주를 창조사회로 만들기 위한 다양성 구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관료사회는 부족한 다양성을 민간부문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확보할 필요가 있다. 민관이 대등한 위치에서 문제를 논의․협력할 수 있는 수평적․집단적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정책의 수립에서부터 민간부문의 창의성․역동성․다양성․효율성을 관료조직에 접목시킴으로써 정책추진의 능률을 높이고 지역내 갈등의 발생을 소통과 포용으로 사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도 당국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정책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게 되고, 도정 수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사회와의 관계성이 넓어짐에 따라 대중의 지식이 공유되고 융합돼 혁신과 함께 보다 큰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둘째,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면서 창조적 사회를 구현하려면 젊고 유능하며 다른 시각과 생각을 가진 인재들을 과감히 중용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제주 공직사회는 개방직을 대폭 확대하여 우수 전문인력의 지속적 외부수혈, 구성원의 인적 다양화, 인재 풀의 저변 확대를 적극 도모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혈연‧지연‧학연 등 전통사회의 특징적 가치였던 연고주의를 공직사회에서 몰아내고 ‘끼리끼리 인사’의 틀을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제주사회가 오랜기간 창조적 사회를 외치는 데도 잘 안 되고 있는 것은 모두에게 기회가 공정하게 열려있는 진정한 경쟁사회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도정의 ‘우리가 남이가’ 그룹의 고질적인 유착과 담합구조에 따른 집단사고의 틀을 과감히 깨지 못하면 제주사회가 공정한 경쟁기회를 바탕으로 한 창조사회로의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소아적 기회독점 관행이 고착화되면 우리 젊은세대들의 좌절감과 이반감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제주사회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제주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녹녹치 않다. 선거 공신들에게 전리품 나누어주듯 자리를 제공하며 한가히 내 사람 심기에 혈안이 되어서는 안된다. 경륜과 전문성이 결여된 아마추어 도정을 만들어서도 안된다. 인사에 대한 불신 탓에 도민 신뢰가 추락하여 임기 내내 레임덕에 시달리며 실패한 도지사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셋째, 창조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정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한경쟁 체제에 들어선 세계화 시대에도 개발연대의 관료제도와 행정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제주도정 운영시스템을 창조적으로 혁신해 나가야 한다. 제주 공직사회의 높은 경쟁력이 경제, 사회, 문화 등 지역사회 발전의 성장동력이 되며 국제자유도시를 완성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낡은 체제에 대한 전면적 혁신으로 도정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제주사회는 퇴행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도정이 혼자서 모든 것을 창조해내는 시대는 지나갔다. 집단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태계와의 치열한 소통과 수많은 토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이 존중되는 문화가 만나야 새로운 시각이 나오고 가치가 창조된다.
"내가 말한 일들이 사내(社內)에서 이견(異見)이 없이 거의 그대로 통과되고 있다. 이는 원맨 독점경영의 폐해가 나타나는 위험 신호라고 본다. 그래서 조기 퇴임을 결정했다"는 가와시마 기요시 전 혼다 사장의 퇴임의 변(辯)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경쟁을 강화하고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공적 영역을 축소시키고 민간 영역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공적 부문은 수익 사업에 취약할 뿐아니라 이들이 민간사업 분야에 뛰어들면 민간업체들의 존망을 위협하게 된다. 자유시장체제보다 국가주도체제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던 공산체제는 이미 20년 전에 붕괴했다.
다섯째, 세계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우리 중심의 폐쇄적 순혈주의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다른 종족과 문화를 포용하고 개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창조적 개혁과 도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주사회의 제도적·문화적 폐쇄성과 사회시스템의 낙후성은 고급인력과 선진문화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혁신창출 측면에서도 상당히 배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작금의 저성장 상황을 극복하고 선진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선 제주사회의 체질과 사고방식의 혁신을 통해 더 많은 개방과 경쟁, 그리고 자기혁신을 지속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외부와의 소통과 협업이 없이는 결코 홀로 혁신을 창출하기가 어렵다.
개방이 국가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로마제국이다. 늪지 언덕 위에 건설되어 제국이 되기에 불리한 입지 여건임에도 불구, 대제국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타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력을 바탕으로 주변에서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전격 사퇴하고 돌아갔다. 우리의 폐쇄성이 그의 좌절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계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에 발탁하고 미국인들이 환영한 것과는 너무 대비된다.
이제라도 눈을 돌려 선진국 국민과 이들 나라의 개방성과 포용적 자세를 벤치마킹하여야 한다.
제주사회에 변화와 혁신이 시급하다
글로벌 저성장의 여파가 제주사회에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에 집단사고로 맞대응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더구나 제주는 폐쇄적 문화의 특성으로 인해 집단사고의 발생이 보다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심히 우려가 된다.
집단사고의 오류를 없애기가 가장 어려운 부문은 공직사회일 것이다. 2012년 세계경제포럼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부정책의 투명성과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세계 꼴찌이자 후진국 수준이다. 특히 제주 공직사회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혁신을 한 적 없이 무풍지대에서 살아 왔다. 제주 관료집단의 정치화를 막고 도민을 위한 조직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변화'나 '혁신'은 나의 일이 아닐 때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며, 당연시 하다가 막상 자기가 대상이 되면 질곡에 채워진 것처럼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겨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한다. 낡은 생각과 가치와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력을 창출하는 창조적 변화의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 몸을 태워야 하는 희생과 껍질을 깨고 허물을 벗는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와 혁신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요구되는, 종착역 없이 가야 하는 여정이다.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 데 있어서 숙명적인 과정이다. 그렇기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가야 되는 길이다. 혁신을 하지 않고서는 선진사회의 대열에 오르기 어렵고, 선진사회라 하더라도 혁신을 지속하지 않으면 언제 쇠락의 길로 빠져들지 모른다.
후손에게 물려줄 영광된 제주의 미래는 지금 이 시각, 우리가 어떠한 사고와 마음가짐으로 만사에 임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 제주사회의 꽁무니에 불을 댕겨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위한 범도민적 성찰과 함께 기존 체제와 사고방식을 부서뜨리기 위한 제주사회 전반의 창조적 개혁을 통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하루빨리 집단사고 오류의 늪에서 빠져나오자. 때를 놓치면 제주도민의 꿈은 허사가 될 것이다.
"창의적 조직이 되어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생태계와의 건전한 소통 속에 다양성이 유지돼야 한다. 특정학교 출신이 많았던 대우와 구성원이 훨씬 다양했던 삼성의 운명도 다양성이 갈랐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말이 묵직한 울림으로 여운을 남긴다. / 전 제주경제포럼 공동대표 고운호
☞고운호는?=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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