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중요한 국가자본이다
통계의 홍수 시대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통계는 정보의 핵심이다.
통계 없이는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정책이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령화 등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고 있어 국가 정책과 사회 전반에 활용되는 통계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한 나라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국가통계는 국가운영을 위한 정책수립에서부터 기업운영에 이르기까지 필수적인 기본 소프트웨어다. 하지만 그 왜곡은 치명적이다. 왜곡된 통계는 탁상공론식 부실한 정책을 낳아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함은 물론 국가적 손실까지도 초래하는 독(毒)이 될 수 있다. '통계 마사지'를 걷어내지 못하면 없느니만 못하다.
통계를 보면 그 나라 수준을 알 수 있다. 사회전반에 걸쳐 통계관리가 잘되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통계의 선진화를 통해 통계의 왜곡을 방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2008년 국가자본에 DB(데이터베이스) 자산을 추가하도록 권고했다. 우리나라의 공공 DB를 민간에 개방하면 부가가치가 약 11조원 발생하고, 15만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민간기업들은 정교한 DB구축을 통해 기업활동에 많은 혁신과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DB활용이 기업환경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세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리던 CEO들도 정교한 DB의 활용을 통해 경쟁기업을 앞지를 수 있는 통찰력과 정보를 취득하면서 경쟁력과 서비스를 높여 나가고 있다.
신뢰 훼손된 제주 경제통계, 정책실패를 초래할 수도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통계 활용도는 민간부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다. 방대한 분량의 공공부문 DB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거나 업데이트도 부실해 통계활용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시·도 수준의 소규모 통계만 있을 뿐, 읍·면·동 관련 통계는 전무해 지역주민 삶의 질을 높이거나 고령화ㆍ지방분권화 등 환경변화에 대응해 정책을 수립하는 데 많은 한계가 노정되고 있다.
국내에선 386개 통계작성기관이 904종의 국가승인 통계를 생산한다. 하지만 그 품질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다. 특히 사회분야의 통계는 매우 취약하다. 감사원도 “우리나라의 통계가 아직도 주먹구구식인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하고 있다.
통계 생산기관의 인력부족, 유관기관간 통계자료의 공유미흡, 입맛에 따라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 특히 지도층의 통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족과 정치덧칠의 통계행정 남발이 통계의 선진화를 발목잡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조적 변화를 맞게 된다. 2018년부터는 인구가 줄기 시작하고 노인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다. 2016년부터는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게 된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노동ㆍ금융ㆍ부동산시장에 일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같은 한국사회의 변화의 흐름을 짚어내고, 정책 대응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선 통계의 선진화가 절실하다. 통계가 우리나라 선진화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선 시대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건강·문화·복지·노동·경제 분야에 대한 새로운 통계 개발이 시급하다. 또한 지역주민들의 경제ㆍ사회 현황 분석을 통한 삶의 질 제고를 위해 지역통계 생산을 시군구 단위로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통계를 국민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국민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면 제주의 경제통계 사정은 어떨까?
제주 역시 경제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선진 통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제주의 경제관련 통계는 아직 열악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통계의 관리는 고사하고 필수적인 기초 경제통계 개발도 부진하다. 통계작성에 필요한 기초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아 통계작성 기관별로 중복되거나 부정확한 통계가 생산됨에 따라 통계가 경기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마디로 경제통계의 기반이 매우 부실하고 신뢰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와 같은 경제통계의 부실이 경제 비전 및 전략 부재, 주먹구구식의 진단과 처방, 정치적 편집 등을 초래하여 경제정책의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통계 왜곡이 이루어지면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정치덧칠로 왜곡된 통계가 위선적 권력의 유혹을 부른다
♯ 2013년 2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창설 이래 처음으로 회원국인 아르헨티나 정부에 대해 경제지표 조작국이란 ‘불신임’ 조치 결정을 내렸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국민연금과 복지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 물가상승률 관련 통계를 의도적으로 낮게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IMF로부터 시정요구를 받았으나 만족할 만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불신임 결정으로 아르헨티나는 IMF차관 이용 차질은 물론 국가신뢰도 하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왜곡된 통계가 치명적인 독이 된 사례다.
♯ 얼마전 발표된 중국 수출통계에 대해 외신들이 계속해서 중국정부의 통계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중국정부는 “당시 발표된 통계는 인터넷에서 얻은 것으로, 부정확하고 근거 없는 수치를 발표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사과의 성명을 발표했다. 전망치보다 크게 웃도는 수출통계를 제시하여 경제 회복세를 증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통계를 왜곡한 사례다.
♯ 우리나라는 1983년에 이미 합계 출산율이 1.1 이하로 떨어져 인구감소 신호가 왔는 데도 1997년까지 산아제한ㆍ저출산정책을 펼쳤다. 또한 수요가 없는 곳에 지방공항을 마구잡이로 설립하여 국가재정을 낭비하였다. 통계의 미비와 해석의 오류가 독이 된 사례다.
♯ 제주지역 고용사정을 보면 양과 질이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전국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낮은 제주도가 역설적으로 고용률 전국 상위수준, 실업률은 전국 하위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요산업이 농어업 지역인 경우, 인구가 부족한 가운데 가족이 같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고용률이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의 질과 구조를 뜯어보면 딴판이다.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이 극히 부진하며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 및 무급가족종사자)와 일용ㆍ임시직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6.0%로 전체 평균인 2.2%보다 훨씬 높으며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47.8%로 전국 16개 시도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청년층의 고용률 하락은 제주경제의 신규 일자리 창출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통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극명한 상황 하에서 제주 도정은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만 제시하면서 자신들의 업적을 과장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통계의 오류와 함정을 악용한 사례다.
통계 작성과 이용 과정에서의 왜곡은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권력의 임기 말이나 선거기간 중에는 실적 부풀리기의 유혹에 빠져 기승을 부린다. 수출실적 부풀리기에만 치중하다 통계의 생명인 신뢰성을 상실한 제주특별자치도의 수출통계도 여기에 해당된다.
도정의 출발은 제주사회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도지사가 실적은 부풀리고 손실은 줄여 보고하는 왜곡통계에 휘둘려 빗나간 정책을 펼쳐서는 도정의 신뢰는 물론 도민의 삶도 같이 추락하게 된다. 도지사가 물정을 제대로 모르면 전문가나 올바른 통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제왕적 도지사의 권력 앞에서는 당태종시 위징과 같이 지사에 맞서 진실을 항변하며 대쪽같은 직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나오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다. 올바른 통계의 작성과 공급을 통한 진실의 전달이 필요한 이유다.
진실을 외면하면 민심을 잃고 엄청난 대가를 치룬다
도정은 통계시스템의 개선이 도정 소프트웨어의 개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제주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통계 선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첫째, 통계에 대한 전면적인 검증 및 품질개선을 통해 입맛대로 가공하는 정치적 편집이 이루어 질 수 없도록 함으로써 통계가 진실의 전달 수단으로 선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제주사회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지게 되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도민으로 향하게 된다. 특히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실업률 통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둘째, 대표성과 속보성을 강화한 통계지표 개발과 함께 기관별, 통계별로 흩어져 있는 지역통계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지역통합 통계DB 구축이 절실하다. 통계 활용이 목적인 통계기관 간 자료는 적극 개방해 공유해야 한다.
도지사에게는 지역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일수록 편법과 꼼수가 아닌 정도의 모습을 통해 도민의 마음을 읽고 시대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발군의 능력으로 도민적 단합을 이끌어 낼 막중한 책임이 있다. 진실된 통계를 제시하며 제주의 실상을 솔직히 고백하고 도민 모두의 힘을 모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해야 한다. 또한 진실의 왜곡을 통해 사익 편취를 하고 있지 않은지 재임기간 내내 자기 성찰의 내적 규율을 체질화해야 한다.
도민에 대한 봉사가 일이 아니라 지사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땀이요 혼이요 삶이라는 자세가 돼 있어야만 글로벌 불황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제주사회가 결집된 도민의 역량을 토대로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도정의 정책이 허둥지둥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헛방을 계속 날리면 제주사회는 궁지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제주 도민들도 지사가 주변에 만연한 진실의 부재 상태에서 못 벗어나 '편법과 모사의 정치'를 지속한다면 이들이 벌이고 있는 '저주의 굿판'을 걷어내어, 진실이 선순환되는 선진 제주사회를 세우도록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중국은 4월 무역수지가 예상을 뛰어넘는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중국이 지난달에 이어 어떤 꿍꿍이 속에 통계 조작을 시도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또한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중국의 통계 지표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가나 지도자가 신뢰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면 족하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지도자의 신뢰성 상실은 권위의 추락으로 이어짐은 물론 시민의 가슴에 항거의 불을 지펴 사회 발전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당나라 때 위징은 백성들의 민심을 물에 비유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 이는 민심에 역행하면 언제든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심각한 영국병을 치유하며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대처도 타협하지 않는 제왕적 스타일 때문에 민심을 잃고 물러났다. 제주의 정치 지도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운호는?=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