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배죽들은 총독을 받들어 모시면서 권세를 누리던 전성기가 사라지면서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프로빈스에는 조배죽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누리던 권세가 그립다. 프로빈스의 권세는 자신들의 물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사(政事)는 사치품이고 그들이 독점하여야 하는 장식품이다.
우공설(隅蛩碟)은 새로운 지도자가 못마땅하다. 좋은 시절 향수가 그리워 “이 X이 총독이 되든지 저 X이 되든지 받들어 모시면 그만인데 조배죽들의 권세를 누리게 해주어야 충성하지 ....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지‼”라며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우태만(雨怠慢)은 오랜기간 버티고 있는 김철수가 못마땅하다. 김철수를 마주치자 “아직도 살아있네‼”라며 비아냥 거렸다. 김철수는 조배죽들이 뭐라고 하던지 상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조배죽들이 ‘과연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목들인가?’ 의문을 품기로 했다.
우박철(楀狛餮)은 김철수가 해외 연수를 다녀 온지 오래되어 잊어버릴 시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못마땅하다. 상급자로 처음 만나면서 뱉은 말은 “놈도 그마니 허주(다른 사람도 그 정도 한다)‼”이다. 저주와 혐오가 가득 배어있다. 김철수는 해외연수라는 최악의 선택을 후회하며 주변의 미움을 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렇지만 끝없는 압박을 받으며 천길 벼랑 끝까지 밀려 날 줄은 미처 예상하질 못했다.
우박철은 김철수와 같은 나이임에도 직급의 차이가 크다. 우박철은 배경이 튼튼한 지연과 혈연을 바탕으로 성장을 해왔다. 재산도 넉넉하여 봉급은 용돈으로 쓰기에 알맞다. 봉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김철수와는 애초부터 유능과 무능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여도 상급자로서 깍듯이 모셔 볼 생각이다.
우박철은 눈에 힘을 주며 “관광산업이 70%니까 관광산업을 위한 정책이 필요해‼”라고 강조하였다. 김철수는 “관광산업은 25% 정도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설명을 하였다. “이걸 보란 말이야‼”라는 우박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6년 전에 자신이 총독에게 보고했다는 서류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총독의 임기 초기에 우박철은 “프로빈스의 관광산업 비중이 70%입니다.”라고 보고하여 귀여움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의 표준으로 작성되는 공식통계는 관광산업을 70%라고 분류한 적이 없다. 다만 농림어업과 광업 및 제조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70%인데 여기에는 건설업과 공공서비스 분야가 포함된다. 숙박업과 음식업과 같은 관광 관련 산업을 기준으로 추정한다면 25% 정도이다.
우박철은 김철수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상태에서 오른쪽 엉덩이 뒤로 종이를 넘겼다. '노-룩 패스(no-look pass)'이다. 노-룩 패스는 농구경기에서 공을 던지는 방향과 시선이 다른 경우이다. 관료사회에서 자신을 양반으로 착각하는 자들로부터 나온다. 물건을 받는 사람은 엉겹결에 허리를 숙여 상전을 받들어 모시는 하인 모습이 연출된다.
오랜기간 동안 잘못 이해되었던 관광통계는 이후 10여년이 지나서 교정되었다. 조배죽들에 의하여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정책이 유지되었다. 몇 년이 지나서 만난 우박철은 “내 밑에 있을 적에 건방지게 굴어서 (잘못된 통계를 지적해서) 앗아불젠 해나서(자르려 했다.)‼”라고 거만을 떨었다.
김철수는 '내 밑에?'란 말이 크게 거슬렸지만 무시하고 이 '모지리' 조배죽이 ‘기본이라도 갖추었으면‼’하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프로빈스에는 '내 밑에'라며 거들거리는 은퇴한 조배죽들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파킨슨의 예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영국의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되어 식민지를 관리하는 정부기관의 공무원들은 할 일이 없어지거나 업무가 크게 줄어들었다. 파킨슨(C. N. Parkinson)이 식민지를 관리하는 정부기관의 공무원 숫자를 파악하여 본 결과 줄어들어야 함에도 오히려 늘었다. 공무원의 업무량과는 상관이 없이 공무원들이 늘어난다는 점이 파악되었다.
파킨슨의 지적에 따르면 일이 많아서 공무원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많다보니 일거리를 만들어야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공무원들은 끝없이 부하직원을 만들려하고, 부하직원이 많으면 이들을 관리하는 업무와 공무원이 필요하게 되고, 공무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보고를 받는 절차만 반복되고 늘어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김철수가 한 달에 한번 한 장짜리 보고서를 만드는 단순초보적인 사무이다. 한사람의 사무를 반으로 나누어 쪼갠듯 하다. 문제는 이 한 장짜리 보고서를 기다리는 목 마른 공무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료를 요구하는 부서는 대여섯 군데이다. 꼭 같은 내용인데도 부서마다 약간씩 서식을 달리하여 요구한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자료 내라”는 독촉이 쏟아진다.
자료 제출을 요구받는 부서는 약간 달라진 서식으로 각각 따로따로 제출하고, 보고서를 수합하는 부서에서는 보고서를 짜깁기하여 활자체를 다듬어 꾸미는데 집중하게 된다. 한 개의 부서에서도 보고서를 요구하는 공무원이 서너사람이다. 다른 부서에 자료를 제출하면 왜 자신에게는 자료를 안주느냐는 시비가 일어나게 된다.
관료들은 스스로 행정의 수요를 창출하지는 못하면서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자료를 수합하는 것을 권력으로 인식한다. 총괄하는 끗발이다.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공무원들 간의 내부의 문제로 바쁘다면서 허덕거린다.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이 예언처럼 필요한 사업을 하기 위한 공무원이 아니라 공무원들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의 숫자가 많아졌다.
'참을 수 없는 법'
1774년 영국은 식민지였던 미국을 강압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법을 만들었다. 그 법은 보스턴 항구를 폐지하는 보스턴 항구법, 식민지에서 주민자치를 폐지하는 메사추세츠 통치법, 영국 군인에 대한 재판을 본국에서 하도록 하는 재판권법, 그리고 영국 군인이 주둔하기 위한 숙소를 주민들에게 강제로 할당하는 병영법이다. 이 법들로 인하여 당시 식민지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s)'이라는 항의를 불러 왔고 미국의 독립전쟁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그 중에 메사추세츠 통치법은 당시에 주민자치 형태로 식민지 주민들 스스로 운영해 왔던 ‘타운미팅(town meeting)’을 폐지하여 직접 통치하겠다는 법이다. 타운 미팅은 주민자치의 초기 형태로 주민총회로 이를 통하여 주민들 스스로 자치의 영역을 확대 해 왔다. 이 주민총회는 1808년에 시작된 독일의 지방자치, 1835년에 시작된 영국의 지방자치에 비하여 상당히 앞선 주민자치 제도이다. 통치자들은 피지배자들이 스스로 잘하는 것은 눈뜨고 못 봐준다.
프로빈스에서는 기초자치단체 폐지가 추진되고 있었다. 이것은 국제자유도시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조배죽들이 시작하였던 정책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