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는 조배죽 전성시대가 지나간 이후 그들의 흔적을 보면서 혹시나 선(善)한 일이라도 있겠지 생각을 하였으나 포기하였다. 조배죽들은 자신의 충성심을 총독에게 믿게끔하는 면에서는 실력을 발휘하면서 매우 유능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랑할만한 정사(政事)가 없다. 그럼에도 지도자가 다르니 달라질 줄 알았으나 조배죽 시대 6년 동안 몸에 배인 행태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배운 습관대로 새로운 지도자의 취향이 어떠한지 ‘의중’을 파악하려 든다. 지도자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동물적인 감각이 필요하고 조배죽들은 그 감각을 타고났다. 그러나 혁신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혁신하여야 한다는 구호만 난무한다. 그렇게 몸에 배인 습관이라면 혁신을 기대하지 못한다. 조배죽들은 사무의 문제점이나 개선방향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대신에 기본적인 문제가 아닌 문제를 문제라면서 직원들을 닦달하려 든다.
김철수는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상급자인 우지질(吽疻螲)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한번 있었던 일에 서너번 반복하면서 훈계하고 있다.
“(소주를) 반 잔만 받으니까 기분이 나쁘더라고‼” 우지질은 김철수가 술잔을 받으면서 약간 손목을 올려버리니까 술잔이 반 밖에 채워지질 않아서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군주가 신하에게 술잔을 따라 줄 때처럼 윗 사람이 술을 따르면 잔이 가득 찰 때까지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가 부하들에게 “까라면 까‼” 하는 모습이다.
참다못해 김철수는 우지질에게 거칠게 항의하였다. “그래서‼ 배울 것이 없어서 술 잔에 (소주를) 가득 받는 것을 배우라는 얘깁니까?”
우지질은 여전히 우두머리 모습의 진지한 표정으로 “술 잔 받을 적에는 두 손을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려 들었다.
“그게 지침에 있습니까? 법규에 있습니까? 당신이나 많이 배우세요‼” 김철수의 험악한 반박을 받고 우지질의 간이 쪼그라들었다. 조배죽 전성기였으면 우쭐대었을 테지만 예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웃어 넘길 일이다. 그러나 공무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우지질은 배워도 그만이고 말아도 그만인 술잔을 이리저리 돌리는 관습을 특별한 교훈인양 가르치려 든다. 아마도 상대방에게 술을 많이 먹여 바보로 만들어 자신보다 퇴보시켜 버리겠다는 발상인 것 같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쉽게 하여야 한다.'
피터의 법칙(Peter's Principle)에 따르면 '능력 있는 상급자는 부하를 성과로 평가한다. 반면에 무능력한 상급자들은 조직 내 부수적인 문제를 기준으로 부하들을 평가한다.' 부수적인 문제란 부하들이 관습을 잘 따르는지, 별 말썽 없이 현재의 체제를 잘 유지하는지, 부하직원들이 상급자를 깍듯이 대하는 태도 등을 가장 우선 고려하게 된다.
조배죽 전성기 프로빈스에서는 ‘성과’가 없어서 유능한 상급자라도 부하를 평가할 수단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지질의 평가 기준은 부하직원이 (소주) 한 잔을 받았는지 반 잔을 받았는지는 중요한 평가 요소다. 부하직원이 (소주) 한 잔을 가득 받으면 만점이고 반 잔을 받으면 낙제다. 피터의 법칙과 같이 상급자를 깍듯이 받들어 모시고 있는지에 대하여 평가를 하는 중이다.
딜버트의 법칙(Dilbert's Principle)이 묘사하는 만화의 주인공 ‘보스(boss)’는 세부적인 (buzzard) 규정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들들 갈구어대고, 사무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똥구리처럼 하루 종일 ‘윙윙’ 거리면서 소음을 뿜어댄다. 그러면서 사무실의 권력을 장악하려 들어 악명이 높다. 말똥구리는 ‘윙윙 소리를 내는 벌레’로 ‘비뚤어진 놈’이라는 다른 뜻이 있다.
그가 부하직원들을 통치하는 철학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쉽게 하여야 한다(Anything that I don't understand must be easy).'이다. 부하직원들은 보스보다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보스가 이해하는 수준이 높다면 부하 직원들은 열심히 따라가야 하지만 보스의 수준이 낮다면 부하직원들은 자신의 수준을 바닥까지 내려놓으면서 바보가 되어야 한다. 시시콜콜 바닥까지 수준을 내려 놓아야 한다.
'끈 떨어진 갓' ... 낙동강 오리알 조배죽
갓에서 끈이 떨어지면 바람이 불 때 모양이 잡히질 않아서 그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끈이 없으면 흔들리는 갓은 쓸모가 없다. 들고 다니기에도 거추장스럽고 쓰고 다니려면 흔들거려서 거북하다. 어디 모셔 놓을 장소도 마땅치 않아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믿었던 배경이 없어져서 기대할 곳이 없이 외로운 신세가 '끈 떨어진 갓'이다.
조배죽 전성기 시절 자칭 외자유치 전문가로 귀빈 대우를 받던 우길태(楀銡鮐)는 총독이 떠나갔는데도 프로빈스에 기웃거렸다. 썩은 고기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냄새를 맡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나는 썩은 고기는 안 먹어‼”이다. 여러 차례 강조하길레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머리의 윗부분은 가만히 있는데 아래턱 부분을 좌우로 흔들흔들거렸다. 닭이 빨간 벼슬을 곧추 세우고 목 아래에만 움직이듯이 기형적인 모습으로 거만을 떨며 유난히도 강조를 하였던 말이다. 총독이 재임하던 시절에 튼튼한 배경을 믿고 목에 힘을 주다가 너무 힘을 주어서 목에 이상이 생겨 버린 듯하다.
새롭게 취임한 도지사는 우길태의 코메디극이나 다름없었던 외자유치 공작은 들은 바대로 못마땅하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조배죽들도 그를 모른 척 등을 돌려 버렸다. 그런데도 또 다른 프로젝트를 들고 프로빈스에 들락날락 거렸다. 그러나 그의 설계도면은 유치원생들이 낙서하듯이 그려진 유치하고 조잡한 물건인데 '환상적(Fantastic)'인 사업이라 떠벌였다.
프로빈스에 어느 누구도 이 사업을 사업이라 보아 줄 수가 없었다. 김철수는 우길태를 마주치자 “외자를 유치하는 모양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우길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몇 년 후에 버릇처럼 내뱉는 말과는 달리 사고를 치고 대가를 치렀다. 먹다버린 고기를 주워 먹던 실세 조배죽과 같이 불명예스럽게 프로빈스에서 사라졌다.
김철수는 이 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과거를 되새겼다. “썩은 고기를 먹으니 목에 걸릴 수밖에 없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