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마법과 실증주의의 교차로’ ... 과학기술의 필연적 결과

  • 등록 2025.09.19 13: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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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44) 굿 의례는 영화와 어떻게 닮았을까? ①

 

1938년 가을 아도르노는 친구인 발터 벤야민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내용 가운데 영화를 정의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언급돼 있었다.

 

“자네의 연구서는 마법과 실증주의의 교차로에 섰군. 그 장소는 사람을 홀리는 곳이지. 그 주문(呪文)은 이론만이 깨뜨릴 수 있을 걸세.”

 

아도르노의 편짓말인 ‘마법과 실증주의의 교차로’는 이후 영화를 정의하는데 가장 적합한 표현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도르노는 왜 영화를 ‘마법과 실증주의의 교차로’라고 했을까?

 

영화의 역사적인 등장은 과학기술의 필연적 결과였다. 1826년 프랑스의 화학자 니셉호레 니엡스(Nicephore Niepce, 1765~1851)가 사진을 발명하면서 새로운 예술의 전조를 내비쳤다. 특히 그의 제자였던 화가 출신 다게르(Louis J. M.Daguerre,1789~1851)가 1837년에 실용적인 사진을 발명하고, 1939년에 최초의 인물사진을 찍음으로써 세계는 더욱 고무되었다.

 

거듭되는 사진실험으로 연속사진을 넘어서 급기야 1895년 최초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탄생 11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극장 수는 줄었지만 비디오, 텔레비전, 상영관을 통해 영화를 접하는 영화의 관객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이제 영화는 대표적인 문화산업이 되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기술을 바탕에 둔 자본집약적 매체로서 테일러-포드적인 전형인 실증주의의 적용에 강렬하게 끌리는 하나의 산업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즉 대량생산(복제), 표준화된 설계(35mm, 70mm필름), 전체 생산과정을 단일 장소에 집중시키기(세트, 녹음, 편집), 철저한 분업체계(조명, 감독, 배우, 의상, 스턴트맨), 고용된 인원들을 관리하기(배우 사생활 등), 출연자들의 인지도와 능력에 따라 성과급을 차별하여 지급하기 등 대규모 공장 제조업 시스템인 테일러-포드식 노동 관리 체계가 도입되면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영화의 실증주의가 영화 산업의 형식이 되었다면, 영화의 ‘마법성’은 관객을 사로잡는 내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본 집약적인 기술력과 만나는 다양한 주제들은 나열하기가 벅찰 정도로 많은데 무협, 판타지, 섹스, 애정극, 공포, 코미디, SF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흔히 영화를 ‘드림박스나 마법상자’로 비유되는 것은 관객을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게 하는 강렬한 주술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주술성은 도취, 오인, 가짜 신념 체계를 만들어 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단지 현실과 무관한 흥밋거리, 아니면 오락의 한 부분으로서 놀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관객들은 결국 영화가 생산하는 이데올로기를 흡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됨으로써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결국 아날로그(굿 의례) 대 디지털(영화)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문화적 본질 면에서는 서로 유사하다는 것, 두 유형 모두 꼭 퍼포먼스를 통해서 신념 체계를 전파한다는 점이 의례와 영화를 보는 중요한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 jci6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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