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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의 영어진단(10) ... 대통령의 영어 실력

MB라는 대선주자가 있었다. 2007년 5월 어느 날, 대전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를 찾아 갔다. 스승의 날을 맞아 1일 명예교사로 나선 참이었다. 그는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던 도중 자기를 닮으면 못할 게 없다며 칠판에 글을 적었다.

“Be a MBtious!”

재치 만점이었으나 아뿔싸, 문법이 틀리고 말았다. “Boys, be ambitious!”(소년들아, 큰 뜻을 품어라)라는 말에 MB라는 닉네임을 바꿔 씌운 것은 좋았다.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를 사용하여 말을 재미있게 재구성하는 어법을 pun(말장난)이라고 하여 재치가 생명이다. 그런데, 형용사 앞에 부정관사(a)를 잘못 써버림으로서 기초 문법이 형편없음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는 틀리게 쓴 줄도 모르고 열심히 강의를 이어갔다.

 

그 해 겨울 그는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많은 외교사절이 찾아 축하했다. 미국 대사가 왔을 때 그는 악수를 청하며 영어 실력을 발휘했다.

“Oh, you're welcome!”

취재를 하던 외신 기자단 사이에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대통령은 "환영합니다" 또는 "어서 오십시오"라는 뜻으로 말했으나, “You're welcome!”은 “천만에요” 또는 “언제든지요”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Thank you.”에 대한 공식적인 응답으로 “You're welcome!”은 ‘당신은 제가 원해서 언제든지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 분이니 굳이 감사할 필요 없다’는 뜻을 품고 있다.

그냥 “Welcome!”(어서 오세요), 또는“Hello!” (안녕하세요) 정도로 충분했고, “Good to see you again.”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면 충분하고도 남을 인사였다. 그는 기자들이 왜 웃는지도 모르고 미국 대사에게 계속 영어를 쏟아냈다.

 

당시 그의 영어는 잘 봐줘서 생존 영어(survival English)라는 게 중론이었다. 현장에서 배운 회화 가능 수준의 ‘노가다 영어’라고도 했다. 몇 가지 사례로 보아 기본적인 문법과 어법이 약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대통령이 영어로 말 하겠다는 데야 누가 말릴 수 있었으랴.

당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혀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다. 영어 잘하면 군대 안 간다느니, 영어로 수업하면 기러기 아빠 안 생긴다느니, 영어 수업을 강화하면 사교육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니 등을 강조했으나, 반대 여론이 들끓자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2008년 11월 어느 날, 그는 미국 대통령과 전화로 통화를 나누었다. 오바마의 당선을 축하하는 전화였다. 청와대 발표에 의하면 두 사람은 12분간의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아뿔싸, MB가 통화도중 통역을 물리쳤다는 보도였다. 통역 시간을 아껴 더 많은 대화를 직접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청와대 쪽에서는 통역 없이도 오바마와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우리 대통령 만세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렸다.

걱정이 된 나는 며칠 후 서초동 단골집으로 김세택 대사님을 모셨다. 36년의 외교관 생활 중 여러 나라의 총영사와 대사를 지낸 제주도가 낳은 최고의 외교관이신데, 이 분의 아드님 김일범 씨가 바로 대통령 통역관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3대에 걸쳐 통역을 맡고 있었다. 동시통역사 출신이 아니라 외무고시를 패스하고 외교통상부 직원으로서 발탁된 드문 경우였다. 소위 ‘잃어버린 10년’의 인물인데도 계속 중용이 된 것은 그이만한 실력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사님께 간청을 드렸다.

“대사님, 우리 대통령 호쏠(조금) 말려 줍서게.”
“대통령이 무사(왜)?
“경(그렇게) 통역 어시(없이) 막 말을 해도 될 정도우꽈?”
“게메(그러게), 그 정도 되민 좋주만은...”
“그 정도 안 되는 거 맞지 예?”
“설사 영어 실력이 아명(아무리) 좋댄 해도 통역 쓰는 게 좋지. 실수를 막을 수 있고, 통역하는 시간에 다음 말을 준비 헐 수도 있고...”
“경헌디(그런데) 무사 경(왜 그렇게) 영어로 말을 허고싶어 허는 거꽈?”
“게메, 무슨 콤플렉스가 있는지도 모르주...”
“아드님께 말씀해 주십서. 노가다 영어 제발 마구 쓰지 마시라고. 통역 쓴댄 체신 깎이는 거 아니라고...”
“가이도(그 아이도) 잘 알암실거라. 다만 말리지 못햄실 거라.”

대사님께서 덧붙이셨다. 외국어를 배우는 단계에서 MB와 같은 저돌성은 꼭 필요하다고. 그러나 지도자들은 신중해야 한다고. 특히 외교무대를 자신의 외국어 실력 테스트하는 곳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대사님은 한 때 조약국장을 지내셔서 말 한마디 토씨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과해선 안된다고 하셨다.

 

어쨌든 그 후로 대통령이 어디 가서 영어 자랑한다는 보도는 보지 못해서 다행이구나 하긴 했다. 다만 누가 썼는지 패러디 사전에 ‘MBtious’의 정의를 ‘MB스러운, 저돌적인, 삽질하는, 뻔뻔한’ 등의 형용사이며, 동의어는 ‘2MB’인데 컴퓨터 속어로 ‘저용량의’라고 풀어 놓아 한참 웃고 지나갔다.

 

“Boys, be ambitious!”

이 말은 오래 전 일본의 대학교수이던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라는 사람이 학생들과 헤어지면서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세계 명언사전 같은 데는 잘 나오지 않고, 일본과 한국에만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Boys, be ambitious.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that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소년들아, 큰 뜻을 품으라. 돈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사리사욕의 확장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명성이라는 허망한 꿈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어떤 인간으로서 삶의 성취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큰 뜻을 품으라.)

MB의 일생에서 미루어 짐작 컨대, 첫 문장만 자기 목적에 맞게 갖다 사용하고, 나머지 문장은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aggrandizement(권력이나 지위 등의 확대), evanescent(덧없는), attainment(성취) 같은 어려운 단어들 때문에 번역을 못했던 건 아닐까?

MB를 이은 박대통령의 영어는 느리지만 깔끔하고 격조 있게 들린다. 취임한 후 미국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갈 때마다 그 나라 말로 연설을 해서 큰 호음을 받았다고 한다. 패션도 시의 적절하게 잘 연출해냈다는 평이다.

문제는 한국말 장애다. 국민들에게 한국말로 대화를 잘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다고 해도 어쩐 일인지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앞으로 대국민 연설이나 기자회견은 영어나 프랑스어로 해보시면 어떨까?  많은 국민들이 외국어로라도 하루빨리 그리고 자주 대통령의 말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통역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듯하다. 어차피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이때의 패션은 갈옷이길 제주도민의 한사람으로서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강민수는?

 

=잉글리시 멘토스 대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며 영자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대기업 회장실과 특급호텔 홍보실장을 거쳐 어느 영어교재 전문출판사의 초대 편집장과 총괄임원으로 3백여 권의 교재를 만들어 1억불 수출탑을 받는데 기여했다. 어린이를 위한 영어 스토리 Rainbow Readers 42권을 썼고, 제주도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관한 제주문화 콘텐츠 전국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ELT(English Language Teaching)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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