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 구름많음동두천 17.4℃
  • 구름조금강릉 21.9℃
  • 맑음서울 17.0℃
  • 맑음대전 17.6℃
  • 맑음대구 17.4℃
  • 맑음울산 17.3℃
  • 맑음광주 17.5℃
  • 맑음부산 17.8℃
  • 맑음고창 17.6℃
  • 맑음제주 18.7℃
  • 맑음강화 16.1℃
  • 맑음보은 15.8℃
  • 맑음금산 16.2℃
  • 맑음강진군 18.5℃
  • 맑음경주시 18.4℃
  • 맑음거제 18.3℃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강민수의 영어진단(2) ··· 국제적으로 웃겨선 곤란

외국인 다섯 명과 한국인 다섯 명에게 물었다.

 

“다음 중 영어를 가장 잘 할 것 같은 기관은?” (Which of the followings do you think has the best command of English?)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주관광공사 하여 네 곳을 제시한 결과, 일곱 명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를, 세 명이 제주관광공사를 골랐다.

 

아쉽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인지도가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1위를 차지한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공식 홈페이지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몇 달 전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장이 바뀌었다. 그는 “아시아 최고의 명품 국제자유도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취임사(inaugural address)를 낭독했고, 그 내용이 3개 언어로 번역되어 홈페이지에 실렸다. 영어 제목은 이랬다.

 

We will make “Asia's Best Luxurious Free International City”

 

그런데, 직접인용부호까지 달아가며 강조를 거듭한 최고의 명품(名品)을 best luxurious라고 하지도 않거니와 문법에 맞게 most luxurious라고 고쳐 쓴다 하더라도 이건 아시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고 사치스러운 도시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거리에 즐비한 명품 브랜드 매장(luxury brand outlets), 카지노(casinos), 요트(yachts), 초고층 빌딩(skyscrapers), 넓은 정원이 딸린 저택(luxury houses with a broad garden), 롤스로이스 같은 차량(vehicles like Rolls-Royce)이 연상되는 이 표현대로라면 미래의 제주는 소수의 부자들만 위한 곳(a city only for wealthy few)이 될 거라고 들린다. 동시에 비싼 물가와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며 부자들 집에 가서 청소하고 잔디나 깎는 제주 토박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Luxurious에 질적으로 뛰어나다(superior in quality)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여기서 명품은 masterpiece를 써서 “We Will Make Jeju Free International City into Asia's Masterpiece” 정도로 표현했으면 좋았겠다.

 

이 연설도 듣는 사람들에 대한 호칭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제주도민 여러분!”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To Jeju Free International City Development Center staff and to the residents of the province”

 

이를 다시 한글로 옮기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직원과 이 행정구역의 거주민 여러분께” 쯤이 되겠다. 제주에 주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residents를 쓴 것이 아니라면 주권을 가진 주체인 citizens를 사용하는 게 나았다. 또, ‘To 누구누구’는 옛날 연애편지에나 쓰던 콩글리시인데다가, 대신 Dear를 썼다고 해도 연설문 호칭으로는 맞지 않다. 그리고 이 연설문의 청중이 누구인지 분명하므로 기관의 긴 이름을 나열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이 긴 호칭은 “My fellow staff and Jeju citizens!” 정도로 충분했다. 참고로 취임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My fellow citizens!”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라 시작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My fellow Koreans and seven million fellow compatriots overseas!”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7백만 해외동포 여러분!) 라고 시작했다.

 

 

그럭저럭 취임사를 읽어 나가다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대목이 나왔다.

 

“However, the eyes that see our development center are not always friendly. We have received the lowest grades on the government’s various assessments, and we cannot deny that we are not successfully giving the residents of the province the impression that our center is ‘an organization for the Jeju residents’.”

 

(그러나 우리 개발센터를 보는 눈이 우호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정부의 각종 평가에서 하위권의 성적을 받는가 하면 제주도민들에게도 ‘도민을 위한 기관’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어법의 잘 잘못을 떠나 정부 평가 최하위 기관임을 공식 홈페이지에 버젓이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완료형을 쓴 것은 한두 번이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그랬다는 말이다. 솔직해도 지나치게 솔직했다. 이사장이 취임식에서 직원들 정신 차리라고 한 말을 전 세계에 알릴 필요는 없었다. 위 대목을 굳이 써야 한다면 대안은 다음과 같다.

 

“However, the odds have not always been in our favor. We should have done better in the central government evaluations. Also, we should have tried more to be seen as an organization for Jeju people."

 

(그러나 상황이 우리에게 늘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중앙정부에서 내준 각종 평가에서 더 나은 성적을 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주도민을 위한 기관으로 인식되도록 더 노력했어야 함에도 이 또한 그렇지 못했습니다.)

 

영문 홈페이지를 주마간산으로 훑어보니 프레젠테이션 자료 수준의 콘텐츠는 오류투성이에다 그 마저 거의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부분이 나왔다. 영어교육도시(Global Education City)의 사업개요를 설명하면서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사업비를 엉망으로 표기해 놓고 있었다.

 

한글 홈페이지를 보면 ‘사업비 1조 7,806억 원’이라 밝히고 있다. 이 액수를 숫자로 나타내면 1,780,600,000,000 원이고, 영어로 읽을 때는 1 trillion 780 billion 600 million won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문 홈페이지에는 이를 1 billion 7,806 million won이라 적고 있다. Billion은 십억이고 million은 백만이니, 10억 78억 6백만 원이라는 엉뚱한 숫자가 탄생한 것이다. 억지로 이를 합친다 해도 영어교육도시에 들어가는 총예산이 88억6백만 원 밖에 안 된다. 이렇게 엉터리로 홍보하고 있는데도 그럭저럭 영어교육도시가 개발되고 외국학교 분교들이 운영되는 걸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신화역사공원에 가면 다시 엉뚱한 숫자가 등장한다. 사업비 1조 5,945억 원이 영어판으로 가면 1조 1,101억 원(1.101 trillion won)으로 삭감된 것이다. 1,594,500,000,000 원은 1 trillion 594 billion 500 million이고 반올림하여 1.595 trillion won으로 표기했어야 한다. 사태가 이러하니 누가 공식 홈페이지를 보고 투자 매력이 있다 할 것인가.

 

사실 원화를 즉석에서 달러로 바꾸어 말하는 것은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한국 사람은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일억과 같이 파악한 다음 만 단위로 읽어 나가지만 영어는 천 단위로 끊기 때문에 체계 자체가 다르다.

 

영어 숫자만 읽기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 방법은 쉼표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1,780,647,584,324 라는 숫자에는 쉼표가 네 개 있다. 맨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각각의 쉼표를 천(thousand), 백만(million), 십억(billion), 조(trillion)라고 기억해 두면 된다. 따라서 이 숫자는 1 trillion 780 billion 647 million 584 thousand and 324라고 읽는다. 백만장자를 millionaire, 억만장자를 billionaire라고 한다고 해서 billion을 억이라고 착각하는 수가 있는데, billion은 10억이다.

 

개발센터는 영어로 development center이다. Development이라는 단어는 ‘개발’ 뿐만 아니라 ‘발전’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반드시 토목공사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開發)은 새로운 것을 연구하여 만들어 냄, 자원 따위를 개척하여 유용한 것으로 만듦, 산업이나 경제 따위를 흥하도록 발전시킴, 재능이나 능력 등을 살리어 더 나아지도록 함 따위로 정의된다. 발전(發展)은 사물이 보다 낫고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때도 develop(발전하다)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예를 들어, “He developed cancer by smoking two packs of cigarets a day.”라는 문장은 매일 담배 두 갑을 피워 암을 악화시켰다는 말이다. Jeju should not be developed into an internationally funny city. It is the wish of all Jeju people. 제주가 국제적으로 웃기는 도시로 개발, 발전, 또는 악화되지 않는 것, 모든 제주도민의 소망이다.

 

강민수는?

 

=잉글리시 멘토스 대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며 영자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대기업 회장실과 특급호텔 홍보실장을 거쳐 어느 영어교재 전문출판사의 초대 편집장과 총괄임원으로 3백여 권의 교재를 만들어 1억불 수출탑을 받는데 기여했다. 어린이를 위한 영어 스토리 Rainbow Readers 42권을 썼고, 제주도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관한 제주문화 콘텐츠 전국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ELT(English Language Teaching)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